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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면 갈수록 높아지는 두려움
누가 깨고 있는 걸까

바라만 보고 있어도 힘겨운 길
따라다니는 나무들의 꿈자리가
오늘 내 곁으로 돌아온다

심심한 사람
산 숲 길 잃은 나는
내가 되고 있는 걸까

산에 오르면
내가 된다.

- 시집 <하늘꽃>중에서 '산의 길'


이렇게 멋들어진 시를 쓴 사람은 누굴까. 시인이 장애, 그것도 정신지체장애우란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파주시보건소와 자연미술학교 박봉택 화백이 5년동안 미술심리치료에 참여했던 정신지체장애우들의 시를 모아 시집을 출간했다. 파주시보건소는 4월 4일 오후 4시 파주 여성회관 대강당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이날 행사에서는 가수 장은아, 김훈씨가 축하공연 후에 이명희(연극배우), 홍성훈(아동문학작가), 이혜정(국악인) 씨 등 전문 낭송인들이 장애우들의 시를 낭송할 예정이다.

파주시보건소는 5년전 박봉택 화백과 그의 아내 윤경애씨의 도움을 받아 정신지체장애우들에 대한 미술심리치료를 진행해왔다. 아내인 윤씨는 도자기, 박화백은 미술치료를 맡았다. 박 화백은 장애인에게 여러 체험프로그램을 시도했고 그 중의 하나로 편지쓰기를 포함시켰다.

"너무 대단한 작품들이 나와서 저도 놀랐습니다. 기량이 아까워서 시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죠."

순수하고 맑은 장애인들이기에 예술적인 감수성이 훨씬 뛰어났고 군더더기없는 작품들이 나왔다. 5년동안 100여명의 장애우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번 작품에는 20명이 참여했다.

비장애인들에게 이들의 작품을 편견없이 알리고 싶어 책출간을 기획하게 됐다고. 그래서 책에는 '장애'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작품으로 봐달라는 의미라고.

"시집을 보고 다들 누가 고쳐줬냐고 물어요. 그럼 내가 원본을 보여주죠. 하나도 안고쳤어요. 원본 그대로라니까요."

박 화백은 그의 교육생들이나 시집 작업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결혼하거나 취업한 이들도 있고 앞으로 사회에서 편견없이 살아갈 이들을 위한 박 화백의 배려다.

이번 작업을 통해 박 화백도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지웠기에 사회에도 같은 부탁을 했다. 내년에는 시화집을 같이 낼 예정이란다. 고양시나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런 사업을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작업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알기에 시를 써놓고 낭독하면서 너무 눈물나서 화장실로 도망가기도 했다. 이런 시집 발표회에는 정말 많은 이들이 가서 환영해줘야 한다. 이런 걸 축하못해주는 게 장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고양신문(4월 2일자에 게재예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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