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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의 광풍이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처럼 대한민국 천지를 메우는 즈음이다, 농업계의 외침이 메아리 없는 안타까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사는 청와대 앞에 선 시위 군중 속에서만은 아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논물을 가두는 촌노의 얼굴 속에서도 피어나고, 농촌이란 울타리 속에서 소명을 감당하는 목회자의 마음에서 함께 한다.

버릇이 된 아침 일과의 시작으로 이메일을 열었다. 제목을 읽어 보면서 읽을거리를 찾는 순간, 눈에 들어온 이메일 한 통. 보낸 이는 '검은 베레'. 낯선 아이디이다. 누군가? 스팸메일 같지는 않고? 제목을 보니 '15년 만에 말뚝박은 시골목사'.

내용이 궁금했다. 메일을 클릭하고서 읽어 내려가면서 가슴이 울컥거렸다. 읽다가 쉬고, 쉬다가 읽고….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끝까지 읽어 내렸다.

끝 부분에 밝혀진 이름을 보고서야 글을 보낸 이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며칠 전 1박 2일의 농촌 관련 모임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눈 충청도 어느 시골 교회의 목사님이셨다.

그를 생각하고 '안부나 전하자'라고 생각하고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려는 그 시간에 그가 먼저 마음을 담아 보낸 이메일이었다. 그가 훨씬 깊고 빠른 마음씀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심경을 담은 안부 메일이 먼저 도착한 것이다.

글을 읽고 나니 또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모임에서 그와 나눈 대화가 생각나면서 얼굴이 두 가락으로 뜨거워진다. 그의 검디검던 얼굴이 자꾸 생각났다. 그러나 뭔가 애잔함을 보이는 표정 속에서도 믿음을 실천하기 위한 의지를 다지던 그 얼굴이 자꾸 겹쳐진다.

모인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특전사 이야기'가 있었다. 외적 행태나 말투만을 가지고 '특전사' 출신을 구분하기도 했다. 아무도 그를 특전사 출신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가 '검은베레'라는 아이디를 쓰는 특전사 출신 목사님일 줄이야. 의지가 굳기에 오늘의 그를 만들었을까?

"강함이 있다는 건 흔들리는 약함이 곁에 있어 주기에 가능한 거다"란 문구로 시작된 그의 글을 대하니 안부 메일을 먼저 쓴다고 여겼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회답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힘이 모자란 글이 되고 말았다. 상대적인 힘의 강함을 표출하고 있는 그의 글은 사람이 제마다 갖는 소명의 의미를 되새겨주었다.

* 15년에 말뚝박은 시골목사 *

따르릉 따르르릉
다급한 성도의 방문 요청에
맨발로 달려가 보니 기다리는 건
병든 송아지 한 마리.
안타까움에 일그러진 성도의 얼굴
얼떨결에 송아지 머리 잡고 기도했다.
그리고 난 그 교회에 처음으로 말뚝을 박았다.

부임하고 맞이한 첫 주일
고장 난 앰프 끝내 손 못 보고
고래고래 소리 내어 예배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성도들의 전화 전화 전화
"목사님! 온 마을에 소리가 다 나갔어요!"
앗차!
외부 스피커로 온 마을에 생방송된 예배실황이었다.

가난한 성도 가을에 추수하여
방앗간, 가정에 있는 기계에서 처음 떨어지는 알곡 한 말 자루에 받아
어깨에 메고 교회로 달려오는데
성도의 검게 탄 얼굴 사이로 흰 이가 반짝거린다.
그날 내 마음엔 눈물의 강이 생겼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아침
예배당 앞 검은 비닐봉지에 쌓인 취나물과 누룽지 한 봉지
별것 아니어서 드리기 민망해 살며시 두고간 이름 모를 성도의 정성
그 마음이 감사해 내 마음 눈물의 강에 꽃이 피었다.

겸연쩍게 내미는 까만 비닐봉지
그 속엔 파란 풋고추
하나

셋……
중학생 아들 녀석 점심 찬으로 삼기 전에
버선발로 달려가 텃밭에서 딴 처음 열매라고
말끝을 흐리는 성도의 마음에
난 또 하나의 말뚝을 박았다.

까만 얼굴 피곤한 모습
논 일 끝내고 찾아온 예배당
그들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내 얼굴 희지 않고 검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마음의 짐을 조금 벗었다.

부임한 지 육 년 만에
학생회 사라지고
주일학교랑 목사에 자녀뿐
동네엔 아이들의 재잘거림 줄어들고
예배당 빈 좌석은 점점 늘어가는데
이 모두가 못난 목사의 책임인양
교인 보기 민망하고 주님보기 죄스럽다.
죄인이 따로 없는 목사의 마음

아빠가 최고인 양 자라난 아이
어느새 철이 들어 눈치는 빠삭한데
애써 외면하고 어깨에 힘줘 보지만 감출 수 없는
작은 시골교회
아빠 목사의 처진 어깨는
무엇으로 감춰야 할거나.

무더운 피서철의 예배시간
피서 길에 어쩌다 들른 도시 교인
수억의 예배당에 시설은 어쩌구 저쩌구
자랑이 늘어갈수록 내 모습 점점 작아지고
내 얼굴 검음이 부끄러움 되어
쥐구멍을 찾는다

해마다 찾아오는
어린이가 주인공인 어린이주일
주인 없는 시골교회 썰렁함만 더하고
힘없이 내려와 인사하는데
구십삼 세를 바라보는 할머니
집사님 못난 목사 손잡으며 하는 말
"내 죽을 때까지 가지 마세요!"
그 애틋함 내 마음을 적시고
가슴 아린 감사함에 오늘도 하루를 접는다.

내 나이 마흔둘
오늘로 부임한 지 만 십오 년이 되었다.
아직 시골교회에 말뚝을 박기는 이른 나이
도회지에 나가서 목회하고픈 마음
아직 간절하고 이 궁색함 면하고픈 마음 간절한데
어느새 내 손엔
또 하나의 말뚝이 들려있다.
쾅! 쾅!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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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다양성을 인정 할 수 있는 연륜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믿고 싶습니다.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할 때 서로간에 존중과 협력이 가능하리라 여깁니다. 세계의 평화로운 공존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폭이 넓어질수록 가능하리라 여깁니다. 그 일을 위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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