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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머스가 토코쇼를 진행하고 있는 장면을 보도하는 ABC 뉴스
ⓒ 김명곤
미국의 유명한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돈 아이머스가 뉴저지 럿거스 대학 여자 농구팀에 행한 인종차별적 발언이 연일 미국의 주요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며 파문이 확대되고 있다.

아이머스는 8명의 흑인 학생이 포함된 럿거스 대학 여자 농구팀이 대학농구 결승전에서 테네시 대학에 패하자 지난 4일 WFAN의 라디로 토크쇼 <아침의 아이머스>에서 "저들은 럿거스로부터 온 거친 여자애들이다, (몸에는) 문신을 했고, 포르노 필름의 창녀들, 곱슬곱슬한 머리(흑인을 비하하는 용어)의 창녀들 같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종차별적 막말이 전해지자 흑인 저명인사인 제시 잭슨 목사와 알 샤프턴 목사는 한 목소리로 "아이머스는 인종차별주의자"라며 NBC 방송에 그의 즉각 해고를 요청했다. 흑인 여성 저널리스트 전국연합(NABJ)도 9일 긴급 성명을 내고 아이머스의 해고를 요구했다.

뉴욕시의 스포츠 라디오인 WFAN에서 제작되는 <아침의 아이머스> 쇼는 MSNBC를 비롯한 70개 라디오 채널을 통해 방송되고 있으며 인기있는 토크쇼 가운데 하나로 수백만명의 청취자를 갖고 있다. 그동안 딕 체니 부통령, 존 케리 상원의원, 존 멕케인 상원의원 등을 포함한 미국의 저명 정치인들과 언론인, 작가 등이 출연해 왔다.

아침방송의 망언 "곱슬곱슬한 머리의 창녀들"

아이머스 발언으로 미 전역에서 흑인 인권단체 등 일반 시민단체의 항의가 있따르자 MSNBC는 9일 아이머스에 2주간 출연정지 처분을 내렸다. 아이머스도 잘못을 시인하면서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아이머스는 자신의 토크쇼를 통해 사과의 뜻을 밝힌데 이어 9일에도 "나에 대한 출연정지 처분은 적절한 것이며 결정을 존중하겠다"면서 "내가 했던 짓은 코미디 같은 분위기에서 저지른 어리석고 바보같은 실수였다"고 말했다.

MSNBC 측도 9일 아이머스가 후회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토크쇼 대담 방식도 바꾸겠다는 약속을 했으며, 아이머스와의 관계는 그의 약속 이행 여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머스의 사과와 NBC측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난이 계속되고 있으며 아이머스를 아예 방송계에서 떠나게 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전국여성연합(NOW)은 10일 성명을 내고 방송계에서 아이머스의 추방을 요구했다.

제시 잭슨 목사는 9일 시카고의 NBC 방송국 앞에서 50여명의 시위자들과 함께 시위 대열에 참여하고 아이머스가 정직되었다고 해서 시위를 중단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알 샤프톤 목사도 10일 NBC의 '투데이쇼'에서 "아이머스의 출연정지 처분은 너무 가볍고 너무 늦었다"면서 "대선후보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앞으로 그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침묵을 지키고 있던 럿거스 대학 여자 농구코치도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머스의 발언은) 개탄스럽고 천박하며 파렴치한" 발언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이들 젊은 숙녀들은 고교 우등 졸업자들이고, 클래스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장래의 의사들이며, 음악 신동들로 천부적인 재간꾼들이다"면서 "학업과 스포츠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정상에 오른 이들이 어디에서 왔건 피부 색깔이 무엇이든 무슨 문제가 된단 말인가"고 반문했다.

발칵 뒤집힌 흑인사회 "개탄스럽고 천박하며 파렴치하다"

▲ 1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럿거스 대학 코치 비비안 스트링거 코치
ⓒ 김명곤
아이머스는 비판자들에게 자신의 쇼가 언어구사에 있어 무제한에 가까운 재담성 토크쇼라는 사실을 인지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이머스는 전에도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을 가리켜 '교활한 족제비'라고 불렀으며, 빌 리차드슨 뉴 멕시코 주지사를 '뚱뚱한 겁쟁이', 벤 나이트호스 캠벨 상원의원을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부르기도 했다.

<투데이 쇼>의 알 로커는 10일 그의 개인 블로그에서 "(아이머스의) 제동장치 없는 막말, 다른 사람을 사정없이 매도하는 유머, 재미 때문에 그냥 지나쳐 버리는 잔인한 어투 등에 진절머리가 쳐진다"면서 "이제 아이머스는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잡지 <토커스>의 편집인 마이클 해리슨은 아이머스가 해고된다 하더라도 어딘가 다른 방송에서 일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유명인의 인종차별적 발언이 미국사회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은 이번 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17일 유명 코미디언 마이클 리차드스가 로스엔젤레스 코미디 클럽에서 두 명의 흑인에 대해 인종차별적 폭언을 한 일도 전국적인 논쟁을 일으켰다.

리차드스는 코미디 클럽에서 그의 코미디에 야유한 두 명의 흑인 청중들을 향해 다섯 차례나 '니그로'를 암시하는 'N'자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일부 청중은 리차드스의 충격적인 발언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시트콤의 황제' 제리 사인필드도 리차드스의 발언을 "엄청난 실수"라고 비난했고, 인권단체들도 즉각 리차드스를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비판을 하고 나섰다.

리차드스는 부랴부랴 "흥분한 나머지 무의식 중에 한 실수"라면서 사과했으나, 인권 단체들은 리차드스의 발언이 그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인종차별 의식 때문이라며 일반 미디어에 그의 출연 정지를 요청했다.

"미국사회 인종차별 의식, 아직 뒷무대에 살아있다"

▲ 아이머스 쇼를 소개하고 있는 MSNBC 인터넷판. 옆에 아이머스의 출연정지 처분에 대한 기사가 있다.
ⓒ 김명곤
한편 리차드스와 아이머스의 연이은 물의에 대해 인종문제 전문가들은 "아직도 많은 백인 미국인들 사이에 인종차별 의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수십년 동안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을 연구해 온 텍사스 A&M 사회학과 조 피어진 교수는 백인들의 의식 속에 깊게 뿌리내린 인종차별을 '화이트 레이셜 프레임' 이론으로 설명한다. 대부분의 백인 미국인들은 1600년대 이래 흑인노예들에 대해 가져온 고정관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어진 교수는 "미국은 그동안 정치적 규제를 통해 흑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려 애써왔지만 백인들은 인종차별의 사회화 과정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인종차별은 1살때부터 친구, 친척들에 의해, 미디어와 학교 교사들에 의해 머릿속에 들어와 박히게 된다"고 지적한다.

'화이트 레이셜 프레임'의 전형적인 예는 '흑인은 위험스런 존재'라는 이미지다. 이같은 이미지는 흑인은 해가 지고 나서도 길거리에서 활보할 수 있지만, 백인들은 길거리에 한두 명의 흑인만 눈에 띄어도 서둘러 사라지거나 무의식적으로 자동차 문을 잠근다는 것이다.

피어진 교수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것은 배우지만, 백인들은 술파티 등으로 느슨해진 소그룹 모임의 한켠에서 자연스럽게 인종차별적인 농담을 즐기곤 한다"고 지적했다.

'디스커스 레이스 닷컴'을 통해 미국사회에 숨어있는 인종차별을 불식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는 데이비드 마이어스(45)도 "미국사회에서는 '위협적인 존재'의 순위를 '흑인 남성-흑인 여성-백인 남성-백인 여성'의 순으로 꼽고 있다"면서 "인종차별에 대해 사회적 또는 정치적 사망이라는 형벌을 가해 왔기 때문에 노골화 되지 않고 있을 따름이지 교묘한 형태의 인종차별은 뒷무대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사회과학자들은 주로 설문지 등에 의존하는 여론조사를 통해서는 인종차별 의식을 쉽게 알아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인들이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지 않고 있지만, 정말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무슨 생각이 담겨 있는지는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하튼 오래전 미국 사회에서 대 논쟁거리가 된 인종문제는 시간이 상당히 흐른 오늘에 있어서도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난제임이 분명하다.

#인종차별#방송#출연정지#토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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