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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퐁> 표지
ⓒ (주)창비
어느 휴일 낮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많은 벌레를 잡아먹지"와 같은 말을 하며 엄마가 나를 깨웠다. 온몸에 가득 묻은 잠 부스러기들을 털어내며 일어난 나는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더 빨리 잡아먹히겠네, 뭐."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와 일찍 일어나는 벌레. 나는 새인가, 아니면 벌레인가? 벌레를 잡아먹는 새와 새에게 잡아먹히는 벌레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존재인가? 세상에는 새가 많은가, 벌레가 많은가? 새가 좋은 걸까, 벌레가 좋은 걸까? 새는 왜 벌레를 먹고 사는 걸까? 벌레는 왜 새에게 먹혀야 할까? 그러는 새 역시 누구에게 잡아먹히지 않나? 따위의 (돈이 되지도 밥이 나오지도 않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핑퐁, 그렇다, 바로 박민규의 장편소설 <핑퐁> 때문이다.

박민규의 데뷔작인 <지구영웅전설>은 내 방 책장에 꽂혀 있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아 아직도 읽지 않은 상태다. 그러면서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고서는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는 소설 속 문장에 감동(!)받았고, <카스테라>가 발간되었을 때는 기다렸다는 듯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러니까 박민규의 책과 나는 그런 사이다. 전혀 모른다고도 할 수 없지만, 아주 친하다고도 할 수 없는 사이. 그러는 내게 <핑퐁>은 <지구영웅전설>과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사이에 있는 책이다.

말하자면 내가 잘 모르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친구 중간쯤에 서 있다고나 할까. 알기는 하지만 친하다고 하기엔 뭔가 어색한, 친한 것도 같지만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는, 친구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더 이상한 뭐 그런 친구 아닌 친구.

가만히, 어느 정도 멀쩡해 보이다가-이상한 망상을 하고, 불을 지르고,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누군가를 찌르고, 한다. 알 수 없다. 나는 지치고 문득 슬펐다. (115쪽)

와 같은 생각을 하는 '못'과(치수가 머릴 때릴 때 멀리서 보면 꼭 못이 박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 못. 못은 기도한다. 다음엔 못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못이라면, 일생에 한번만 맞으면 그만일 테니까, 하고.)

핼리를 기다리는 건, 말하자면 삶의 자세와 같은 거지. 그건 몸을 숙여 저편의 써브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일이야. 나는 탁구를 모르니까 어떤 공도 받지 않겠다, 공 같은 건 오지도 마라-그건 인류가 취할 예의가 아니라고 봐. 마치 우리는 왜 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혜성 같은 건 오지도 마라-그게 아니고 또 뭐냐는 거지. 그래서 우린 매달 한번씩 핼리가 오는 날을 정하고 기다리는 거야. (130쪽)

하고 말하는 '모아이'(항상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큰바위 얼굴이라 해서 붙은 별명이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세계가 <깜박>한 이들은 자신들을 깜박한 세계를 유지할 것인가, 언인스톨(삭제)할 것인가를 놓고 인류의 대표들과 핑퐁 게임을 벌인다. 핑퐁이라니, 이런 중대한 문제를 고작 핑퐁 따위로 결정 내리다니? 이런 중요한 결정을 겨우 열다섯 왕따들인 저 애들에게 맡기다니?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그들은 결정한다. 고등학생 정도로 부패한다면 하지 못할 것 같은, 지금이기에 할 수 있는 그런 결정, 언인스톨. 이미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온 나는, 물론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겁해, 너희들은! 언인스톨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열심히…스푼을 구부리며 살아갈 수 있고, 학교를 열심히 다닐 수도 있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결정내릴 수 있지? 열심히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 생각은 하지도 않는 거야?"

화를 내며 슬픈 표정으로 소리칠 수도 없다.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쉽게, 너무 아무렇지 않게, 열심히 살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들 생각 따위는 하지 않으면서, 다수인 척 나는 살아온 것이다.

내 눈에는 모두 인류가 깜박한 것 같은데, 못과 모아이뿐만 아니라, 그들을 괴롭히던 치수 패거리도, 원조교제를 하는 여자애였던(아, 결국 마리의 존재를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군)-죽어버린 마리도, 건전지를 계속 혀에 문지르다 죽어버린 9볼트도, 실은 모두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하는 허 참 아저씨도, 나도, 너도, 우리 모두……깜박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살고 있다면 그건 좀 너무한 거잖아? 하는 생각이 들다가 그런데 도대체 그렇게 모두를 깜박한 인류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에, 나는 지치고 문득 슬퍼졌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위안이, 그래서 느껴졌다. (108쪽)

하는 부분에 동의하는 나이기 때문에 한 장이 넘는 공간이 핑퐁핑퐁핑퐁핑퐁핑퐁핑퐁핑퐁……만으로 가득 채워진 걸 보면서 내 슬픔은 위안 받았다.

▲ 소설 속 주인공 '못'과 '모아이'. 박민규가 그렸다.
ⓒ (주)창비
이제, 다시. 나는 새일까, 벌레일까? 나는 인류가 깜박한 인간일까, 인류를 깜박한 인간일까? 누군가에게 배제된 인간일까, 누군가를 배제한 인간일까? 다수일까, 다수인 척 하는 다수일까, 개인인 척 하는 다수일까, 다수인 척 하는 개인일까, 개인인 척 하는 개인일까?

어느 정도 멀쩡해 보이던(멀쩡한 게 아니라 멀쩡하게 보이던) 누군가는 다수인 척 살았던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었고,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는 곳에서는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지고, 그러나 '그때 그 자리'가 아닌 '지금 여기'에 있었다는 이유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그러니까 잘하고 있냐고 누군가 물으면 그저 어깨를 으쓱대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사냐건 웃지요'하는 표정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실은, 인류는 애당초 생존한 게 아니라 잔존해왔다. 만약 인류가 생존한 것이라면 60억 중 누구 하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대체, 왜, 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영문도 모른 채, 말하자면 이곳에서 우리는 너무 오래 잔존해왔다. ('작가의 말'중에서)

나는 잔존이 아니라 생존이라고 믿는다고,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나는 이 삶을 생존이라 착각하면서 계속 살겠다고 중얼거려 본다.

잘한 걸까? (251쪽)

벌판의 끝을 바라보며 못이 물었고, 모아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세계를 언인스톨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결코 잘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세계를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려고 하지 않은 그들이 비겁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언인스톨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가 이기적이고 비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내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늘 잘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의 결과들도 그러했고. 그래도 언제나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잘 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 정말로 잘 되지 않을 것이니까.

생각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니까.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처럼 정신이 결코 힘을 이길 수 없는 이곳이라 해도, 이데아(idea)는 결국 아이디어(idea)에 불과하다고 해도 말이다. 정신이 힘을 이길 수 없다 해도, 정신이라도 없으면 힘을 결코 이길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아이디어(idea)라도 없으면 이데아(idea)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 아니겠냐고. 그러니까 정신이라도 있어야, 아이디어라도 있어야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겠냐고. 사는 것은 정신이 힘을 이길 수 있는 세상, 아이디어에 불과할 것 같은 이데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그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냐고. 그래서 나는 소설의 결말을 바라보며 가만히 '스스로의 의지로 스스로를 의지'(208쪽)하면서 오늘도 살아가겠다고.

핑퐁

박민규 지음, 창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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