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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생기발랄 '생기마을'모습
ⓒ 생태지평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메고, 시내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도착한 곳. 1년 만에 다시 찾은 첩첩산중의 생기마을은 농사 일감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우리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볼수록 넓어 보이는 산과 밭은 농사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팔다리를 후들거리게 한다.

여기 생기마을은 운 좋으면 핸드폰 터지는 곳인지라 그 핑계로 핸드폰을 꺼놓고 일을 한다. 몇 년 전 업무차 어떤 분과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절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그분은 처음으로 하루 동안 편히 쉴 수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도 그런 현대인이 되었나 서글펐던 기억을 이곳에서 만회하고 싶어졌다.

도착한 첫날(5월 12일)은 '나눔과수원'에 거름을 주는 일을 했다. 이 나눔과수원의 아이디어는 참 재미있는데, 이 과수원에서 나온 소출은 찾아오는 사람 누구든지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과일나무를 심어서 나눔의 의미를 실천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웃들과 나눠 먹을 것까지 챙겨 갈 수 있으니, 이러한 세심한 배려 속에 나눔은 배가 된다. 그런데 과실이 맺히기까지는 3년 정도 더 필요하다고 하니, 나눔의 의미는 조만간 금방 퍼져 나갈 것 같다.

우연히도 이날 서울 학생들도 내려와 농사를 짓겠다고 밭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 중학생들도 힘든 농사일보다는 디카로 사진 찍는 일에만 관심을 보이더니만…. 역시나 다음날 생기마을에 비바람이 불어닥쳤는데, 아이들이 심은 토마토만 비바람에 쓰러지는 바람에 모두 다시 심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역시 자연은 들인 정성과 노력만큼 결과물을 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찾아오는 사람 누구든지 나눠먹을 수 있는 생기마을 '나눔과수원'
ⓒ 생태지평
최악의 호미질로 보내는 생기마을의 하루는 48시간이다

새벽 산행에서 우리는 식사 때 먹을 나물을 캐곤 하는데, 도착한 지 이틀째 날에도 산에서 두릅, 칡, 더덕, 곰취, 엄나물, 가시오가피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보물을 만났다. 온갖 나물을 된장에 발라먹으면 마치 초식동물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나물은 자라는 위치가 땅속부터 가지 끝까지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나물을 캘 땐 아래만 보지 말고, 좌우 상하 앞뒤 모두 다 살펴 나물을 찾으라"는 정성헌 촌장님 말씀은 "일상에서도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어야지만 두루두루 혜안을 찾아갈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아침을 먹고, 호미질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최악의 초보솜씨로 밭을 갈고, 작물을 심는 우리의 어설픈 손길에도 자연은 놀라운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심었던 쪽파와 오이도,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 생기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 밥상에서 섭섭하지 않게 대접해줄 정도의 풍성한 소출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찾아오는 계절에 따라 심는 작물도 여러 가지이다. 올해는 방울 토마토와 고구마를 심었고, 넓은 밭에서 번식력 강한 산딸기와 칡까지 뽑아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곡괭이 질을 한 후 찾아낸 칡뿌리로 끓여질 차 맛을 생각하니, 일석이조다.

▲ 생기마을 자원봉사를 나온 도시의 학생들
ⓒ 생태지평
저녁이 가까워져서 농사일의 활력소인 새참을 준비하는 도중에 '쨍그랑' 접시를 깨뜨렸고, 새참으로 만들던 김치전이 홀랑 다 타버렸다. 이렇게 된 것은 마침 촌장님이 오늘은 시내에 나가셔서 생기마을에는 들어오지 않으시기 때문에 명령(?)하신 일감만 대충 끝내면 되겠다 싶어 신이 났다가, 저녁이 되어도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농사일에 지친 일행들이 새참을 재촉했기 때문이었다.

촌장님이 있으셨으면 해질 무렵 그만 들어가자고 하셨을 것을…, 판단 착오다. 절대 내 요리솜씨 탓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런데 농사를 짓다 보니, 서울이 아닌데도 농사일까지도 급하게 해치우려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바쁘게 사는 도시인들의 삶의 관성이 흠뻑 베여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가끔 하는 이런 농사일이 낯설기는 하지만, 농사일이 우리들의 삶의 여유와 자연과 생각의 시간을 가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다행이다.

어중간해서 '중도'가 아니다. 지구환경도 마찬가지

▲ 초보농사꾼들에게 하루는 48시간이다.
ⓒ 생태지평
요즘 같이 대선을 앞두고 있는 복잡한 시기에는 그 사회를 관통하는 이념과 철학이 더욱 중요하게 마련인데, 요즘 유행어 중 하나가 '중도'라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개념은 '어중간'의 '중도'가 되어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저녁식사 이후 이야기의 화두는 '중도'와 '지구환경'이다.

이변비중 비유비공(離邊非中 非有非空). 양 극단을 떠나되 가운데는 아니며, 모든 실상은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한 유(有)와 무(無)의 중도라는 의미로 촌장님은 김지하 시인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정치든 사회활동이든지 중도적 사고를 가지고 진행하되, 어중간함이 아니라 종합적 사고와 대안을 가지고 진행할 때만이 그 가치를 지녀 의미가 더욱 크다는 말씀이다. 슈퍼마켓에서 만나는 '안전한 먹을거리'라고 불리는 것들도 유통과정과 생산과정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나, 농민들의 어려움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또 사회의 원동력인 대중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시민이라는 개념보다는 피지배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일컫는,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지만 고통받는 시민을 대변하는 '민중'이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하신다.

사회변화는 광장을 만날 때 확산되듯이 정치든 사회든 환경운동이든 대중을 떠난 주장은 공허하므로, 대중을 다시 되찾아오자는 말씀이다. 무엇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성찰이 필요한데, 이 과정을 자주 잊어버리거나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광장은 점점 사라지고, 변화는 더딘가 보다.

생기마을이 있는 강원도 인제는 DMZ 접경지역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팽팽한 긴장감과는 달리 자연의 모습을 잘 간직한 아름다운 곳이기에 촌장님과 주민들은 소득은 낮지만, 자연휴식제나 어려운 이웃들과 나눔의 실천을 이어가면서 마을은 '생기마을'이라고 불린다.

앞으로는 아토피 같은 환경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나, 어려운 환경의 시민운동가들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편히 쉬었다 돌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생기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촌장님의 바람이다.

이러한 소중한 공간 하나가 자연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대안적 삶의 방법들을 다양화하는 공간으로 재탄생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작년에 3천평의 배추농사 짓는 것을 놓고, 하느니 마느니 옥신각신하다 결국 놓친 기억이 난다. 올가을 다시 먹을 만큼의 배추농사를 한 번 짓자고 했는데, 어설픈 솜씨로 가능할는지 모르겠지만, 1년에 한 번만큼은 농사를 지어보자.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느껴보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안녕 고구마, 가을에 또 보자.

▲ 인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만난 금낭화(좌)와 엉겅퀴(우)
ⓒ 생태지평

#생기마을#지구환경#나눔과수원#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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