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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전 세계에서 반미시위가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을 정도로 반미는 국제사회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반미는 이제 글로벌 이슈이며 세계혁명의 진정한 목적이 됐다. 미국역사상 세계여론이 오늘날처럼 미국에 적대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과거에도 반미주의의 물결이 있기는 했지만 대개 좌익세력과 연계된 것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반미주의는 좌우를 막론하고 전 지구적으로 파급되는 양상이다. 왜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은 역사에 전례가 없는 미국에게도 어느 정도 부합되는 것 같다. 특히 자신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타락한 것일 수 없다는 자기도취적 태도는 또 하나의 위험한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추가한다.

지난 2004년 11월 사실상의 내전이나 다름없이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는 40여 년 전 "예수가 대통령인 한 미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며 미국을 떠난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종교가 정치를 결정하고, 정책보다 교리가 우선하는 '기독교 근본주의 신정국가(神政國家)'(?) 미국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2000년 대선 당시 막강한 사법부가 대통령을 결정하던 이상한 법치국가 미국보다 훨씬 더 악화된 것이다.

특히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대다수가 서로 "상대방후보의 승리를 수용할 수 없는 매우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응답한 것에서 나타난 것처럼 계층, 지역, 사회, 문화, 종교, 가치관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양분현상은 페어플레이를 미덕으로 여기던 미국식 민주주의가 이제 중대한 위기에 봉착한 것 같은 느낌마저 같게 한다.

미국이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평균 소득의 50%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인구의 비율이 25개 선진국 가운데 24위임에도 소위 '슈퍼부자(The Super Rich)'라 불리는 최상위 1%가 부(富)의 47%를, 최고 소득자 10%가 부의 70%를 독점하는 유례를 보기 드문 빈부격차와 이에 따른 빈부의 세습으로 이어지는 빈익빈 부익부현상의 악순환, 그리고 가진 자들만의 체제유지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도덕성 상실과 부패의 확산 등이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최악의 물난리뿐만 아니라 인종 분열, 계층 양극화의 발가벗은 사회학을 목격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2005년 9월 4일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최대 피해지역인 뉴올리언스를 묘사한 말 중 일부다.

얼마 전까지 미국은 태어난 환경이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바탕 아래서 미천한 신분에서 출발해 성공의 사다리를 오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 가장 인기 있는 주제였다. 그러나 이제 세계인들은 물론, 미국인들도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을 믿지 않는다. 세대가 바뀔수록 신분이동은 어려워지고, 중산층은 더욱 고립되고 있으며, 상류층은 "귀족가발만 쓰지 않았을 뿐 루이 14세의 궁정을 닮아가고 있다."

결국 이러한 불균형적인 미국사회의 변화는 불균형적인 대외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은 지금의 미국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5대양 6대주에 걸쳐 미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보니 어느 하루 편할 날이 없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나친 사명감과 욕심이 피로를 부르고 있다.

특히 막대한 자원을 동원해 5년째 수행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은 장기 소모전양상을 띠면서 피로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 본토에서 제2의 911테러를 막는 데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마드리드와 발리, 런던과 바그다드 등 세계 도처에서는 크고 작은 테러가 그치지 않고 있다. 그 부작용으로 불법수감, 고문, 불법도청과 같은 인권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른바 '냉전의 자식들(Children of the Cold War)'과 '냉전의 투사들(Fighter of the Cold War)'은 그들의 진정한 목표가 냉전시대보다 더 확고한 헤게모니장악임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은 미국의 힘은 군사력에서 나온다고 믿는 전쟁참모단으로서 자신과 다르면 '불량'이라고 몰아붙여 선제공격을 주장하고, 타인이 자신을 적으로 삼고 있다는 환각상태에 빠져 '스타워즈'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미사일방어체제'를 강행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종교적 망상으로부터 행동지침을 받을 때 세계가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9·11테러를 경험한 뒤부터 거대한 제국 미국은 분명 이성과 합리성을 잃어버린 채 감정적인 애국주의와 집단히스테리의 물결 속에서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며 군산복합체들에게 국가경영권을 일임했다. 그 결과 내부의 도덕적 힘과 그것을 떠받쳐주는 민주적 가치는 사라져가고 몽골제국이나 스페인제국처럼 세계경제에 대해 상품과 자본을 빨아들이기만 할 뿐 그에 상응하는 재화를 제공하지 못 하는 일종의 블랙홀이자 전 세계를 숙주(宿主)로 하루하루 다른 나라의 부(富)를 약탈하며 연명하는 흡혈제국으로서의 군사적 케인즈주의를 고수하기에만 더욱 혈안이 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 CIA국장을 지낸 제임스 울시는 "우리는 4차 세계대전을 시작했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20세기 내내 1차대전과 2차대전, 그리고 냉전 즉 3차대전에서 우리가 건설하고 지키려고 했던 자유주의문명을 위협하는 아랍과 이슬람권지역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려는 전쟁이다.……이라크 외에도 이란과 시리아·수단·리비아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테러를 후원하거나 지원하고 있다.……전쟁은 중동의 면모를 바꿀 수 있을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라크에서 중동 변화의 서막을 열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과도한 개입에 따른 자원배분의 왜곡 속에 전통적 산업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불어났고 그 결과 수출경쟁력을 갖춘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에 물건을 팔아 번 돈으로 미국의 적자를 메워주는 위험한 돌려 막기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GDP대비 국가 부채율이 300%를 넘고 기존 빚의 이자를 갚기 위해 새로운 빚을 지는 실정이다. 미국은 빚으로 살아가고 있는 "부채의 제국(Empire of Debt)"인 것이다.

이처럼 세계경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미국의 빚 풍선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굴러가고 있다. 2007년 2월 중국에서 시작된 주가폭락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이른바 '차이나 쇼크'는 중국이 뇌관을 당기기는 했지만, 핵폭탄급으로 폭발한 그 불안의 뿌리는 미국으로서 이는 미국이 세계 단일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행동을 남발한데 따른 과도한 군사비지출로 인한 부작용의 한 부분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지금 이라크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미국의 다국적 보험회사인 '월드마켓 리서치센터'가 이라크는 일일 평균 50건, 연간 3만 건의 테러로 월 평균 1000여 명이 숨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라고 세계 위험도 측정결과를 통해 발표한 것처럼, 여러 면에서 1954년부터 '62년까지 8년간 프랑스가 100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고 처참한 철수를 해야 했던 알제리민족해방전쟁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미군 정보당국이 펜타곤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4월 현재 저항세력의 월 평균 공격횟수는 3993건으로 2006년 3601건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라크전 개전 이후부터 2007년 5월 현재 미군은 비전투 인명손실을 포함해 3269명 이상의 사망자와 24569명 이상의 부상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 35000명 이상의 병사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8천여 명의 병사가 명령계통에서 벗어나 사라지거나 예정된 귀대일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순수한 전사자 2715명만으로 볼 때도 이는 미국인들에게 최대 악몽으로 기억되고 있는 월남전 초기 2년간 미군 사망자수의 9배에 이르는 것으로 개전 이후 월 평균 60명 이상씩 숨져간 셈이다.

이와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미군과 동맹국들의 군대를 이라크 전역에서 하루 최저 100회 이상 공격하고 있다. 미군이 통제할 수 있는 곳은 일부지역에 불과한 그린존(안전지대) 뿐 방대한 레드존(위험지대)은 손도 못 대고 있다.

2006년 9월 11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미 해병대의 비밀보고서를 인용해 "현재 이라크 서부지역은 완전히 통제 불능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미 2004년 말 이라크 저항세력들의 근거지를 완전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대규모 공군력을 동원해 팔루자를 집중공습 했지만 "제복을 입은 적군도, 적의 사령부도 없고, 미국이 점령해야 할 중앙사령부 건물도 없으며 결국 어떠한 항복도 없는" 이런 형태의 공격은 "돈을 뿌려 흙먼지를 일으키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은 나폴레옹이 스페인과 러시아에서, 히틀러가 프랑스와 소련 그리고 발칸반도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보이 않는 적을 대상으로 벌이는 출구 없는 전쟁에서 하루하루 소진되고 있다는 사실은 월남전을 경험한 미국에게는 재난과도 같을 것이다.

과연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군사저널 2007년 4월호에 실렸던 것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라크, #이슬람, #반미주의, #문명과 테러, #군사적 케인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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