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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0일 오후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 이병선
"여당으로서는 대단히 엄중한 선거결과가 나왔다. 국민의 심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반성할 점은 반성하면서 계속해서 약속한 개혁을 추진해 나가려고 한다. 민주당이 참의원 제1당이 됐다. 이런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면서 향후 정국에 대응해 나갈 것이다."

일본 자민당의 '역사적 대패'가 확정된 30일 오후 2시, 도쿄 나가타쵸의 자민당 당사 9층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는 사상 최악의 선거결과에도 불구하고 퇴진하지 않고, 정권을 계속 끌고 가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선거를 통해 분명한 국민적 심판을 받은 정권이 왜 물러나지 않는 것일까? 100평 남짓한 기자회견장을 빼곡히 채운 기자들은 아베 총리에게 따지듯이 질문을 퍼부었다.

- 야당은 물론 자민당 내에서도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총리를 계속하겠다는 것을 과연 국민들이 납득하겠는가?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반성할 점은 반성해 나가겠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의를 바탕으로 정치개혁과 경기회복, 지방활성화 등의 과제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 '반성할 점은 반성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반성하겠다는 것인가?
"'정치와 돈'의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대응이 불충분했다. 보다 확실히 하라는 것이 국민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보다 엄격한 규율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연금기록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관청의 입장에서 설명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따지고 개혁해 나가라는 요구로 받아들인다."

- '내각의 기본노선은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는 근거가 무엇인가?
"경기회복 노선의 기본정책은 국민들로부터 이해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에게 다가가는 부분이 부족했다. 이번 선거결과는 이를 더 열심히 해나가라는 뜻이라고 본다."

- 그런 과제들을 왜 총리가 아니면 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앞으로 대단히 곤란한 상황이 닥칠 것도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개혁은 계속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약속한 것을 확실히 추진해 나가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기자회견 내내 아베 총리의 굳은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다. 스스로 '아베냐, 오자와 이치로(민주당 대표)냐를 선택하라'고 말해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임을 분명히 했던 선거인 만큼, 이 정도로 참패를 당했음에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설명하는 논리를 찾는 데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아베 정권 유지' 결정

▲ 30일 오후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열린 아베 신조 총리 기자회견에 모인 내외신 기자들.
ⓒ 이병선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오전 열린 자민당 간부회의에서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승인을 얻었다. 연립정권 파트너인 공명당으로부터도 아베 정권 유지를 지지한다는 입장표명이 있었다.

자민당 내에서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그 세력이 크게 불어날 조짐은 없다. 일단은 아베 정권의 유지가 결정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베 총리를 대체할 인물이 뚜렷이 부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민당으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아베 총리와 맞섰던 아소 다로 외상이나 다니가키 사다카즈 전 재무상은 내심 '아베 다음'을 노리고 있지만, 지지세력이 한정돼 있다. 지금 총리가 된다고 해도 참의원의 '야소야대' 상황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일본 헌정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정국을 맞아 아베 총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정국운영 방식은 두 갈래다. 하나는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 민주당의 협력을 구하는 것. 다른 하나는 민주당과 철저히 대립각을 세워 나가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앞으로 정국을 원활히 운영하려면 민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다. 민주당의 협조를 얻으려면 주요 정책에서 민주당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 일단은 그런 방향으로 노력할 것으로 보이지만,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반면 민주당과 철저히 대립각을 세운다는 것은 결국 '중의원 해산, 총선거 실시'를 염두에 둔 포석을 의미한다. 참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에 막혀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점을 부각시켜 결국 다시 민의를 묻는 절차를 밟는 것이다.

결국은 '중의원 해산, 총선거'로 내몰릴 가능성

자민당으로서는 현재 3분의 2가 넘는 의석을 연립 여당이 장악하고 있는 중의원을 가능하면 해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협력을 얻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결국은 그런 방향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총선거 시기는 내년 3월 새해 예산안의 국회통과 직후나 내년 6월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G8(주요 8개국) 정상회의 직후가 될 것으로 정계 주변에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정국 상항에 따라 그 시기는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가 나온 뒤 '드디어 찾아온 정권교체의 호기'라며 잔뜩 고무돼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은 30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이번 선거는 현 정권에 대한 신임을 묻는 선거였고 국민은 아베 정권을 신임하지 않는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며 아베 총리 퇴진과 '중의원 해산, 총선거 실시'를 요구했다.

이런 자세로 미뤄볼 때 민주당은 아베 총리가 설사 정국 운영에 협조를 요구한다 해도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일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선거로 일본은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등장 이후 7년간 이어진 '강한 리더십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불안정한 리더십'의 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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