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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통상 30-40일 동안 선거운동(election campaign)을 한다. 그런 연유로 꼭 41일 동안 진행된 2007년 선거운동을 두고 호주 신문들은 '긴 여정'이라고 썼다. 일부 후보는 "6주가 너무 길다"고 푸념했다.

 

총리가 선거날짜를 결정해서 연방총독의 재가를 받으면 의회해산과 동시에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기자는 지난 41일 동안 호주총선의 현장을 광범위하게 추적했다. 이 리포트 시리즈는 '추적 41일'의 현장기록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터득한 사실은 호주 총선 현장에서도 한국 대선 현장에서 일어나는 좋고 나쁜 상황들이 대부분 목격됐다는 것이다.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습니다'라는 노래가사처럼.

 

물론 호주의 정당들은 경제, 외교, 국방, 교육, 복지, 노사관계, 세금, 환경 등 거의 모든 사안을 놓고 치열한 정책대결을 벌인다. 반면에 '먹칠하기' '흑색선전' '진실게임' '색깔논쟁' 등이 난무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지역정서에 호소하는 것만 빼고.

 

 

'먹칠하기'로 시작된 선거운동

 

지난 6월 20일, 존 하워드 총리의 지역구에 포함되는 이스트우드에서 '그래니 스미스' 사과축제가 열렸다. 선거운동을 하던 정치인들이 그런 축제를 놓칠 수는 없는 법, 하워드 총리와 그에 도전하는 노동당 소속 맥신 맥큐 후보(호주국영 abc-TV 뉴스앵커 출신)가 대대적인 선거운동을 펼쳤다.

 

기자가 20년 동안 호주에 살면서 목격한 가장 큰 규모의 선거운동이었다. 마치 1980-90년대 한국의 선거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았던 깃발이나 피켓 대신에 지지정당을 표시한 수많은 풍선들이 길거리마다 가득했다.

 

연설을 끝낸 하워드 총리가 다음 장소로 옮겨간 직후였다. 10여 명의 젊은이들이 상대의 얼굴과 머리 등에 흰색을 칠하는 이상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무슨 놀이냐고 물었더니 "먹칠하기 게임(smear game)"이라고 하기에, 재차 "왜 이런 게임을 하느냐?"고 물었다.

 

"재미나지 않느냐? 요즘 신문과 TV를 보면 정치인들도 우리랑 똑같은 게임을 한다. 한참 동안 먹칠을 하다보면 모두 똑같아 지는데... 보라, 지금 우리의 꼴을."

 

총선 D-2였던 22일에 믿기 어려운 해프닝이 발생했다. 자유당 소속 후보의 배우자(남편)가 가짜선거전단을 만들어 몰래 배부하다가 들킨 것. 그런데 그 전단이 인종갈등을 부추기는 내용이어서 호주가 경악하고 있다.

 

마치 이슬람극단주의단체가 만든 전단처럼 꾸며서 '우리는 노동당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 이 소식을 접한 노동당은 "이번 일은 엄연한 선거범죄"라고 규정하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내놓을 게(offer) 없는 연립당이 흑색선전으로 선거운동의 대미를 장식했다"고 비아냥거렸다.

 

여론조사기관의 정확도 시험대에

 

11월 23일 현재 D-1, 정확하게 40일(6주) 동안 호주를 뜨겁게 달구었던 호주 총선의 선거운동이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 앞으로 다가온 호주총선의 결과를 예상하는 언론보도는 '예측불허의 접전' '박빙승부 전망' 등 궁금증만 부풀리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노동당이 약 10% 안팎의 리드를 기록했지만 결과는 뚜껑을 열어보아야 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것도 박빙의 승부로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3일 아침에 발표된 '갤럭시 폴'과 'AC닐슨 폴'의 여론조사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유권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둘 다 노동당이 앞서는 결과지만 갤럭시 폴은 52 대 48(4%우세), AC닐슨 폴은 57 대 43(14% 우세)이다. 무려 10%의 차이가 난다.

 

갤럭시 폴은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 리미티드가 운용하고, AC닐슨은 페어팩스 그룹에 소속회사다. 뉴스 리미티드는 호주에서 최고의 발행부수를 발행하는 타블로이드지 '데일리텔레그래프'를 발행하고, 페어팩스 그룹은 최고의 정론지 '시드니모닝헤럴드'를 발행한다.

 

덕분에 어느 여론조사기관의 예상이 더 정확했는지를 따져볼 수 있는 재미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한편 경마방식으로 진행되는 총선결과 맞히기 도박(sportingbet의 일종)에서는 노동당 $1.32 연립당 $3.35로 노동당이 두 배 이상 앞서고 있다.

 

'50%+1표' 얻기와 95%의 투표율

 

호주는 모든 후보에게 지지순위를 기표하는 우선순위투표제도(preferential voting)를 채택한다. 사표방지를 위한 선택인데 1위 표를 가장 적게 얻은 후보를 탈락시키면서 그 표를 2위표를 얻은 사람에게 주는 방식이다.

 

그렇게 해도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또 다시 꼴찌후보의 표를 다음 지지순위(preference)에게 주는 방식으로 개표가 진행된다. 결국 어느 한 후보가 '50%+1표'를 얻기 전까지는 개표가 종결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방식인 다수결주의의 결정판이다.

 

또한 호주는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는 강제투표제도를 채택하기 때문에 투표율이 95%를 넘나든다. 낮은 투표율 때문에 대표성 시비가 일곤 하는 한국의 선거제도를 생각하면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간접민주주의와 다수결주의 채택하는 민주국가의 국민은 선거로 말하기 때문이다. 호주선거관리위원회(AEC)의 다음과 같은 구호처럼 말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시작되고 선거와 함께 발전한다.'
'선거는 민주주의로 들어가는 입구다.'
'어린이들은 선거를 통해서 민주주의를 배운다.'

 

최대 이슈로 떠오른 노사관계법

 

그럼 이쯤에서 호주의 정당들은 어떤 정책대결을 벌이는지 알아보자. 참고로 호주의 유일한 전국일간지인 '디 오스트레일리안'이 7월 14일에 발표한 '2007 호주 총선 이슈'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노사관계법 42%, 경제 24%, 기후변화 15%, 이라크 전쟁 12%, 교육 8%였다. 그러나 선거막바지에 이른 현재의 현황은 교육 및 환경문제가 더욱 큰 이슈로 부상한 상태다.

 

또한 노동당이 10월 중반부터 내건 "교육혁명(education revolution)을 통해 호주를 개혁하자"는 슬로건이 설득력을 얻었고, 세계적 현안인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등의 환경문제가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편 존 하워드 총리가 선거캠페인을 시작하면서 터트린 '세금 대폭감면 정책'이 한동안 위력을 발휘했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병원관리 시스템과 수돗물 공급 등의 사안이 도마에 올랐으며, 젊은 세대의 주택구매력 증진문제도 큰 쟁점이 됐다.

 

하나 특이한 사항은 호주선거역사상 최초로 선거캠페인 기간 동안 이자율이 인상되어 하워드 총리에게 결정타를 먹인 일이다. 하워드 총리는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낮은 이자율 공약으로 상원과 하원을 동시에 장악하는 대승을 거두었는데, 그후 무려 6차례나 이자율이 인상되어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존 하워드 총리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하워드 총리는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을 던지면 눈을 감거나 입을 꽉 다무는 습관이 있다. 반면에 러드 당수는 항상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자세하게 답변해준다. 기자가 보기엔, 하워드 총리가 분명한 언어선택을 요구받는 변호사 출신이고, 러드 당수는 수사적인 표현을 훈련받은 외교관 출신인 탓으로 분석된다.

 

11월 16일 오후 이스트우드 럭비클럽에서 만난 존 하워드 총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경제발전"이라면서 "국정운영 경험도 없고 노동조합 세력에 영향을 받는 노동당에 호주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존 하워드 총리의 정견을 요약한 것이다.

 

"선거를 통해서 정부가 바뀌면 나라의 진로가 바뀐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처럼 불확실한 시대에 과연 누가 호주 경제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물음이다.

 

자유-국민 연립당은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고, 낮은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을 보장할 수 있다. 특히 33년만의 최저기록인 4%대의 낮은 실업률은 연립당 정부가 거둔 최대 업적이다. 노동당이 툭하면 노사관계법을 들먹이는데 현대경제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반면에 과거 노동당정부는 높은 이자율과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 무능력하기 짝이 없었다. 더욱이 노동당은 야당을 하면서도 경제경책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했고 선거운동 기간에도 무책임한 경제공약을 남발했다.

 

2007년 현재, 호주는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식견으로 경제를 잘 운용할 능력이 있는 정부를 요구하고 있다. 그 요구에 대한 답은 자유-국민 연립당이다. 왜 잘 달리는 말을 바꾸어 타야 하는가?"

 

캐빈 러드 당수 "노동당은 미래를 팝니다"

 

마크 베일리 후보(abc-TV 출신 기상전문가)를 지원하기 위해서 노스 시드니 지역구를 방문한 캐빈 러드 당수에게 "총선 당일 러드 당수는 지역구인 퀸즐랜드에 머물 텐데 지금 승리를 예상한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더니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아직 이르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다음은 캐빈 러드 당수의 정견을 요약한 내용이다.

 

"2007 호주 총선은 호주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리더십을 선택해야하는 선거다. 동북아시아 경제의 활황에 따른 지하자원 붐으로 얻은 국가재원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그 방책으로 교육혁명을 선택했다. 연립당의 공약처럼 대폭적인 세금감면도 좋겠지만 책임 있는 정부라면 그 재원을 활용해서 낙후된 교육환경을 개선해서 세계적 수준(world class)으로 끌어올리고, 고질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병원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무한경쟁의 경제체제에서 탈락한 그룹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교육을 통한 기회균등을 제공해야 하며 호주경제의 큰 문제점인 기술인력 부족현상도 교육혁명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나는 경제 보수주의(economic conservatism)를 지향하지만, 현재 운용되고 있는 사용자 위주의 극단적인 노사관계법(work choice)을 폐지하겠다. 노동시장에서의 공정성을 유지하여 노동계층이 대우받는 경제시스템을 건설하겠다.

 

호주는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희망찬 미래로 전진해야 한다. 선택은 새로운 리더십을 약속한 노동당이다."

 


#호주 총선#하워드 #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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