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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사람도 아니고 일본사람도 아니고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온 올 4월까지는 충북 충주에서 살았습니다. 2003년 9월부터 서울과 충주를 오가며 살았고  2006년 3월부터는 충주에서만 살았습니다. 1995년 4월부터는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만 살았습니다.

 

떠나고 옮기며 살아가는 동안 ‘나는 어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또, 마음을 붙이며 살아가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터전도 찾지 못했습니다.


.. 아저씨는 외삼촌의 친구 분인데, 우리를 예뻐해 주셨다. 일본에서도 케이크는 특별한 것이었지만, 아주 비싸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는 생일이 아닐 때도 그냥 먹는구나’ 하고 단순히 생각했다. 초코케이크가 그 당시 3만 원이나 했던 사실을 그때 우리는 상상도 못했다 ..  (99쪽)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사는 동안, 저는 서울사람도 아니었지만 인천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서울과 충주를 오가며 살던 때에는 ‘반 서울사람’도 아니고 ‘반 충주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충주 산골자락에 깃들던 때에도 시골사람도 아니며 도시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떠돌다가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온 지금,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곳이라 3대째 사는 곳이기는 해도, 제가 뚜렷하게 인천사람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고, 또 인천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머니) 구미야, 학교 선생님이 왜 일본이 원자폭탄 피해를 입었는지 말씀하셨어? 일본제국이 왜 생겨났는지, 그동안 뭘 했는지 말씀해 주셨어?
(언니) 옛날 일본은 전쟁을 했다. 미국은 전쟁을 그만두려고 폭탄을 떨어뜨렸다…가 아냐?
(어머니) 그래……. (104∼105쪽)


생각해 보면, ‘어디 사람’이라고 자기를 못박을 까닭은 없는지 모릅니다. 다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한국에서 살아도 한국사람이지만, 한국 밖에서 살아도 한국사람입니다. 한국말을 하고 살아도 한국사람이지만, 한국말을 몰라서 다른 말을 쓰며 살아도 한국사람이에요.

 

사람도 목숨붙이이고, 길고양이도 목숨붙이입니다. 오리농사 짓는 시골집에 몰래 들어와 오리 모가지를 비틀어 잡아먹는 너구리도 목숨붙이이고, 벼며 보리며 수수며 땅감이며 박이며 오이며, 모두 목숨붙이입니다. 덜 소중한 목숨붙이는 없고 더 소중한 목숨붙이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말을 쓰는 한 사람으로 살고 있을 뿐입니다.


.. 나는 ‘조선’과 ‘일제’의 관계를 몰랐다. 나는 한국 국적. 그것만 인식했고 주변 사람도 모두 일본사람이었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  (130쪽)


우리한테는 역사가 있어서, 지난날 고구려 적, 나라땅을 한껏 넓힌 임금 몇 사람 이름이 여태까지도 남습니다. 그때 임금 명령을 따라 창이나 칼을 들고 두 다리로 달리면서 싸움질을 하며 죽이고 죽어야 했던 백성들 이름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지난날 고구려 적, 그 이름난 임금이 군대를 이끌어 쳐들어가느라 목아지가 달아나고 땅을 빼앗겼던 그 사람들 삶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사람들한테도 역사가 남아서 2007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면, 그들은 우리 나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우리한테는 끔찍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이고 ‘이토오 히로부미’일 테지만, 일본사람들한테도 끔찍한 사람일까요.


(어머니) 네가 지금 흥분해도 그건 과거의 일이야. 우리는 과거를 잊으면 안 되지만 감정대로 행동해서는 안 돼.
(나) 그래도 엄마, 너무한 일이야.
(어머니) 너는 학교에서 그런 역사를 배웠지만, 너의 일본 친구들은 모르지? 진실을 모르는 사람을 무조건 비판하면 안 돼. (141∼142쪽)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 역사를 배우고 있을까요. 한국 역사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어서,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앞서 태어나서 살아갔던 사람들 발자국은 무엇이라고 배우도록 되어 있을까요. 우리가 알아둘 역사란 무엇이고, 우리가 제도권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역사란 무엇일까요. 소장학자들이 몸바쳐서 캐내고 알아내어 한 권 책으로 묶어내는 역사는 또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널리 읽어 주는 역사교양책은 무엇이고, 사람들 눈길을 거의 못 받고 스러져 가는 역사지식책은 무엇일까요.

 

가까운 역사, 그러니까 지난 2000년부터 2007년인 오늘까지 우리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요. 우리들이 몸으로 부대낀 동안 우리 역사는 어떠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굵직굵직한 사건사고가 우리 역사일까요.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정치꾼이 우리 역사일까요. 삼성이나 현대 같은 큰 재벌이 우리 역사일까요. 온나라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이름난 연예인이나 지식인이나 문화예술인이 우리 역사일까요.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우리 역사일까요.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요. 1981년부터 1990년까지는? 1971년부터 1980년까지는? 1961년부터 1970년까지는? 이런 역사는 어떻게 되어 있지요? 우리는 지난날 역사를 얼마만큼 알 수 있으며, 어떤 자료로 살필 수 있으며, 어떤 사람들 증언을 들으며 곱씹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책이나 자료는 무엇이며, 얼마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까요?


(나) 아빠는 2세인데 재일교포를 어떻게 생각해?
(아버지) 애매한 입장이지. 교포는 토마토야. (157쪽)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적어 주는 사람이 없었고, 적어 주는 사람이 있어도 알릴 길이 없던 이 나라 이 땅 보통사람들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민간인학살’ 이야기는 마흔 해 뒤에나, 쉰 해 뒤에나, 때로는 예순 해 뒤에나 알려집니다. 알려지기는 해도 증언할 사람이 거의 다 죽고 없어서 뼈다귀 하나 건져내기 어렵기도 합니다. 뼈다귀 하나 땅에서 캐낸들 어떻게 해서 그곳에 모였는지 알 길이 있을까요.

 

책에 적히는 역사는, 신문에 적히는 역사는, 또 교과서에 적히는 역사는 얼마나 올바를까요. 얼마나 거짓없을까요. 얼마나 틀림없을까요. 아니,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얼마나 알아야 하는 역사이며, 우리들이 얼마나 가슴 깊이 새겨야 하는 역사이며, 우리들이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사무치게 받아들이며 곰삭여야 할 역사일까요.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한국사람도 일본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  (210쪽)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 때에도, 재일조선인한테는 선거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한국땅에서 한국 국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재일조선인이 ‘한국말을 잘 못하거나 아예 모르는 일’을 놓고 비판을 쉽게 합니다.

 


 (2) 어머니는


제 태어난 날에서 꼭 열흘이 지나갔습니다. 음성에 살고 있는 어머니한테 전화를 한다고 하다가 그만 잊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아이 낳은 날을 잘 알고 계시겠지요. 잊지 않고 있겠지요.


.. 어머니는 부산에서 오셨는데 집에서는 일본말을 하셨다. 아버지는 한국말을 못하시고. 내가 살던 곳은 완전히 일본사람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몰랐다. 국적이 한국이라고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인 여동생은 충격 때문에 울었다. 나는 호기심이 많아졌다. 이후, 나는 한국을 의식하게 되었다 ..  (67쪽)


어머니 배에서 열 달 동안 무럭무럭 크다가 배를 아프게 하며 밖으로 나온 이 새 목숨 핏덩어리는, 자기 어머니를 얼마나 헤아리고 있을는지. 어머니가 걸어온 길은 제대로 살피지도 않으면서 딸아들 자기네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고 칭얼대거나 투덜거리지는 않는지.

 

곰곰이 돌아보면, 어머니 당신이 어릴 적 어떻게 지냈는지, 학교는 제대로 다닐 수 있었는지, 학교 다닐 때 어떠했는지, 십대 푸른 날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아버지한테 시집갈 때 어떠했는지, 시집가서 인천 송월동 송현동 송림동 달동네에서 쪽방 하나 겨우 얻어서 살아가던 때 어떠했는지, 바지런히 부업을 하여 조금씩 살림이 펴 나가던 때 어떠했는지, 자식놈이 군대에 끌려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휴가도 안 나오고 있을 때 어떠했는지, 자식놈이 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며 연락 한 번 제대로 없는 동안 어떠한지 들을, 한 번도 차분하게 들어 본 적이, 아니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 막걸리는 서민들의 맛이라고 들었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가끔 한국사람들과 맞는 정서가 있다. 짐은 무겁지만, 방학 때 수입업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  (71쪽)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말수가 적었을까요. 어머니는 당신 삶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셨을까요. 어머니가 예순 해 가까이 보아오고 겪어오고 들어오고 부대껴온 삶이란 무엇일는지. 어머니는 지금처럼 살아가는 일이 즐거우신지.


.. 우리 집의 책장에는 <여성동아>가 많다. 엄마가 안 버리고 모아 두셨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잡지가 도착할 때마다 나는 섭섭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정말 길었다. 한 번 잡지에 집중하면 깨우기 힘들었다. 엄마는 갑자기 《여성동아》를 해약했다. 구독 기간은 27년이었다. 해외 배송이라 한 달에 2만 원씩 냈었는데, 전부 다 나의 한국유학비가 됐다 ..  (73∼74쪽)


아버지하고 다툼이 있어서 부모님 집에 찾아뵙지 않은 지 반 해쯤. 그 사이에 전화 연락도 한 번만. 옆지기가 묻습니다. “어머니 보고 싶지 않아요?” “왜 보고 싶지 않아? 어머니 만나서 오래오래 어머니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그런데 왜 안 가요?” “……”


 (3) 배움


어제는 아침 아홉 시 반쯤부터 저녁 다섯 시 반쯤까지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사이에 삼십 분쯤 사람들 기다리는 시간, 밥먹으며 쉬느라 한 시간쯤 쉬었으니, 일곱 시간이 좀 못 되게 달렸네요. 한참 달리는데, 자전거모임 사람 한 분이 옆에 붙어서, “막상 달려 보면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멀다고 느꼈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말을 겁니다. “다들 차에 익숙해져서 그렇지요.”

 

인천에서 부천까지 자전거로 달린 다음, 인천대공원을 거쳐 소래로 달린 뒤 오이도까지 찍고 돌아왔습니다. 거리로 치면 얼마쯤 될까요? 소래에 닿고 보니, 또 오이도에 닿고 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가용을 끌고 오던데,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차를 몰아 예까지 왔을까요.


.. 88올림픽 이후 일본의 일반 슈퍼마켓에 ‘김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교포가 운영하는 ‘불고기집’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일반 슈퍼에서 사람들이 즐겨사먹는 한국 음식은 없었다 ..  (87쪽)


자전거모임을 꾸리면서 늘 지키려는 틀이 있습니다. ‘빨리 달리지 않기’. ‘되도록 골목길로 돌아가기’. 빨리 달리거나 서두르면 사고 나기 좋습니다. 빨리 달려서 자동차나 전철로 오갈 때보다 훨씬 금방 오갈 수도 있겠지만, 빨리 오가기만을 생각하며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아요. 길을 느끼고 골목집을 만나며 사람들과 부대끼고자 자전거를 타고 싶어요. 이런 느낌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지 않으니 모임을 따로 꾸렸고요.


.. 한국 유학을 마친 요즘, ‘유학생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멋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11쪽)


아침에는 영 도 밑으로 내려간 날씨였고, 달릴 때에도 찬바람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길에 자전거 끌고 나오는 사람 숫자는 아주 적습니다. 덕분에 자전거길은 온통 우리 차지였고, 찻길에서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무리를 지어서 겨울바람을 온가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때때로 길게 빠앙빠앙거리며 으름장을 놓는 운전수가 있습니다. 속으로 혀를 찹니다. 왜냐하면 저렇게 빠앙빠앙거리는 차는 어쩌다가 한 대. 다른 모든 차들은 자전거 무리를 옆으로 비껴나 주면서 천천히 지나가 주었습니다. 마음씀씀이가 너무 가난하니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 유학은 공부뿐만 아니라 정서도 배워야 한다 ..  (15쪽)


집으로 돌아오니 오른팔꿈치가 몹시 저립니다. 눈물이 찔끔 납니다. 자전거 타며 다친 자리라 오래도록 자전거를 쉬고 있는데 잘 안 낫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더 아프지는 않네요. 더 두고보아야겠지만 그저 쉬기만 한다고 나아질 자리는 아닌 듯합니다. 사진을 안 찍을 수 없고 글을 안 쓸 수 없고 빨래와 설거지를 안 할 수 없고 짐을 안 나를 수 없으니 쉴 수 없는 오른팔꿈치입니다. 그저 쉬엄쉬엄 움직이면서 튼튼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한데.


(나) 역시 선생님, 가게 주인을 위해 설거지하기 쉽게 물을 넣으시다니, 세심하시네요, 선생님.
(선생님) (30분 후) 자, 누룽지 먹자.
(나) (속으로) 미쳤어요? 왜 우리에게 설거지 물을? 선생님? (23쪽)


공원에서 자전거를 쉬고 있을 때면 사람들이 으레 묻습니다. “그 자전거 얼마짜리예요?” 싱긋 웃으며, “이십만 원이면 사요.” 하고 대답해 줍니다. “얼마 안 하네? 나는 또 몇 백만 원 하는 줄 알았는데. 보니까, 천만 원짜리 자전거도 있다는데.” 더는 대꾸를 않습니다.

 

짐자전거를 타고다니는 분들 가운데 자전거 값을 묻는 사람 본 적 아직 없습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짐자전거를 탄다고 꼭 그렇지는 않을 터이나, 자기 집과 일터를 늘 자전거로 오가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이 타는 자전거가 값이 얼마인지 어느 나라 것인지 기어는 몇 단까지 있는지 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이분들한테 “자전거를 타니 무엇이 좋은가요?” 하고 묻거나 “자전거로 다니면 위험하지 않나요?” 하고 물으면, 씨익 웃으며 아무 말을 않거나 퉁명스런 말투로 한두 마디 내뱉겠지요. 몸으로 겪어내려 하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아무런 말도 귀로 들어가지 않으니까요. 마음으로 깊이 삭이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삶이 배인 어떤 말도 살갗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4) 정구미 님 만화책 하나


2005년에 한 번, 지난해에 두 번, 올해에 또 두 번, <한국ㆍ일본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이 만화책을 그린 정구미 님은 <오사카ㆍ고베ㆍ교토>(안그라픽스)라는 만화책을 올해 펴냈습니다.

 

그리고 <돈까스 취업>이라는 만화를 곧 펴낸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만화는,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유학을 오며 자기가 부대끼고 생각하며 앞으로 차근차근 걸어나간 자기 발자국을 담습니다.


.. 정말은 본심을 말해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친한 친구를 원하면서 집단을 만드는 것은 나를 지키는 처세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뜨거운 사랑이 없다 …… 나는 답답해도 학교를 다녔다. ‘학교’ 자체는 좋아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나쁜 일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었다. 당당하게 있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또 동시에, 사람들의 아픔도 보였기 때문에 일본 학생들을 비판할 마음은 없었다 ..  (165∼167쪽)


인터넷포털 다음에 이어그린 ‘돈까스 취업’ 37편, 장난감 회사 면보기하는 자리에서, 정구미 님은 “구미 씨는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하고 묻는 말에, “전, 만화를 하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 모르면 가르치고 서로 배우고 서로 이해하는 것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  (220쪽)


조금 어른스러운, 아니, 생각을 많이 하며 그렸구나 싶은 만화책 <한국ㆍ일본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그린이 정구미 님이 생각을 많이 하며 그렸다기보다는, 정구미 님을 낳아 기른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이 정구미 님을 이러한 길로 가게 했으며, 나고 자란 일본과 유학을 온 한국에서 만나고 배워 온 사람들이 정구미 님을 이와 같은 사람으로 다독여 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으로 ‘한국을 배우러’ 온 정구미 님은, 앞으로 ‘교포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낼 생각이라고 합니다. 재일교포가 재일교포 사회에 하는 말이나 한국 사회에 하는 말은, 가만히 귀기울여 들어 주거나 헤아려 주는 사람이 참 드물었는데, 정구미 님은 이 벽을 만화라는 방법으로 아주 조그맣게 구멍을 내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울타리에 구멍을 뚫는 만화, 그러면서 한국땅 한국사람들 깊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울타리에도 구멍을 뚫는 만화, 이런 정구미 님 만화는 앞으로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또 우리 한국땅에서는 어떤 만화쟁이가 높직한 울타리에 조그마한 구멍을 꾸준히 뚫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여줄까요.

덧붙이는 글 | - 책이름 : 한국ㆍ일본 이야기
- 글ㆍ그림 : 정구미
- 펴낸곳 : 안그라픽스(2005.6.17.)
- 책값 : 9000원

정구미 님 인터넷방은 http://www.koomi.net 입니다. 이곳에서 여러 가지 소식과 만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한국.일본 이야기

정구미 지음, 안그라픽스(2005)


#만화책#정구미#한국ㆍ일본 이야기#재일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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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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