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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라는 고유명사 정착시킨 8년

 

8년. '유수 같은 세월'이란 수사를 놓고 보자면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짧은 시간은 아니다. 한 아이가 울음 터뜨리며 세상에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익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통상 8년.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2008년 2월 22일 창간 8주년을 맞았다.

 

새로운 세기의 벽두 2000년. 그해 2월 22일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 아래 727명 시민기자의 힘으로 닻을 올리고 '기존의 것들과 변별되는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며 출항한 <오마이뉴스>. 갖가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고, 희망과 절망의 시간을 보낸 끝에 '창간 8주년'이란 작지 않은 기쁨 앞에 선 것이다.

 

2008년 2월 21일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는 5만4110명.(오후 2시 현재) 창간 때와 비교하면 80배 이상이 늘어난 수치다. 비단 이런 외형적 성장만이 아니다. <오마이뉴스>가 창간과 함께 도입하고 실행했던 '시민기자 시스템' '기사 아래 댓글 쓰기' '인터넷 생중계' 등의 콘텐츠는 독자는 물론, 언론계에서도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받았고, 이후 태어난 수많은 인터넷 매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이중에서도 단연 주목받은 건 '시민기자 시스템'. 뉴스의 소비자로만 존재했던 일반 시민들을 뉴스의 생산자로 탈바꿈시킨 이 제도가 가져온 파장은 컸다.

 

현직 교사와 교수, 소방공무원, 경찰과 군인, 일용직 노동자, 농부, 주부, 초등학생 등 다양한 직업과 일을 가진 시민들이 <오마이뉴스>에 보내준 글은 '따뜻한 감동'(사는이야기)으로 독자들을 이끌었고, 때론, 세상을 놀라게 한 특종까지 만들어냈다. 물론, 훈련된 직업기자가 아닌 탓에 발생한 문제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시민기자들이 이뤄낸 공(功)에 비하면 사소한 과(過)에 불과했다.

 

'글(기사) 쓰기를 통한 참여민주주의 실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시민기자 시스템'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유수 언론에 의해서도 여러 차례 호평을 받았다. 그렇다. <오마이뉴스>가 창간 후 8년 동안 축조해낸 성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바로 '시민기자'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창간 8주년을 어떤 행사로 기념할 것인지를 놓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 수차례에 걸친 토론 끝에 내려진 결론은 "오늘의 <오마이뉴스>를 있게 한 힘의 원천인 시민기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2월 20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오마이뉴스> 편집국에는 '기사 쓰는 재미에 빠져있는' 10대 중학생부터 80대 사회단체 대표까지 8명의 '시민기자'들이 모여들었다. ▲ 나는 왜 시민기자가 되었나 ▲ 창간 8주년에 바란다 ▲ 새봄,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 세대간 원활한 소통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주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는 아래와 같았다.

 

10대 - 최지원(15) 중학생.

20대 - 유지형(26) 대학생.

30대 - 김준희(38) 프리랜서.

40대 - 이충섭(40) 직장인.

50대 - 이현숙(53) 주부.

60대 - 이승철(63) 시인.

70대 - 이의협(76) 퇴직교사.

80대 - 주종환(80) 민족화합운동연합 대표의장.

 

"딱딱한 토론회가 아닌 설날 덕담 주고받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는 오연호 대표기자의 인사말로 시작된 창간 8주년 기념 시민기자 대담에선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이 나를 시민기자로..."

 

자기 소개와 '시민기자가 된 이유'를 알리는 것으로 대담의 막이 올랐다. 최연소 참석자인 최지원 기자는 "지금 중학교 2학년인데, 어른들은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시민기자 가입의 변'을 전했다.

 

지난해 다녀온 스페인 산티아고 여행에서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유지형 기자는 현재 대학생.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공간을 찾다가 <오마이뉴스>와 만나게 됐다"고.

 

'책동네'에서 서평 쓰기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김준희 기자는 "추리소설을 좋아해 감상을 남기곤 했는데, 쓰다보니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직장인과 아마추어 권투선수(전적 2전 2승)라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이충섭 기자는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 격투기와 권투가 비주류로 취급받는 것이 속상했고, 그 세계를 알려주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한 소설가이기도 한 이현숙 기자는 41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이건 시작에 늦은 때란 없다"고 말하는 이 기자는 작년 2월부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전문분야는 여행과 사는이야기. "앞으론 사회적 현상을 들여다보는 기사를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고.

 

 

여행기사를 주로 읽는 독자들 사이에선 이미 이름이 많이 알려진 이승철 기자는 2년 전 회갑을 넘긴 시인이다. 그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에 매료돼 시민기자가 됐다고 한다.

 

지난 2005년부터 꾸준히 년 200건 가량의 기사를 쓰는 '성실한' 이 기자는 집회 취재를 하려다 카메라가 파손된 경험을 이야기 하며 "내겐 집회현장 취재보다는 여행기사가 어울린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40년 이상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다 퇴직한 이의협 기자는 "살아가며 내가 느낀 경험을 젊은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말로 시민기자의 매력을 설명했다.

 

시간이 날 때면 휴전선 인근 철원과 양구, 화천 등을 천천히 걷는다는 이 기자는 통일과 평화문제를 다루고 싶다면서 2001년 인터넷을 처음 접한 후 "이젠 인터넷 없이는 못 살 정도가 됐다"고 말하며 웃었다.

 

최고령 참석자인 올해 80세의 주종환 기자는 글 쓰기를 통해 "정치, 사회, 경제에 대한 관심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교수로 일할 때 컴퓨터를 배웠다는 주 기자는 "기사 쓰는 게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시민기자 활동이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거침없는 쓴소리... "초심을 유지해야"

 

그렇다면, 이렇듯 다양한 경로와 이유를 통해 시민기자가 된 그들은 <오마이뉴스>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기를 바라고 있을까?

 

"이전 세대에 비해 정치보다는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는 게 요즘 청년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건 유지형 기자의 조언.

 

김준희 기자는 "2.0 개편 이후 떨어진 조회수 회복에 신경 써야 한다"며 "사는이야기와 같은 독특한 매력의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동시에 초심을 지켜가자"고 건의했다.

 

"소외된 마이너리티에게도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선 칭찬받아야 한다"고 운을 뗀 이충섭 기자는 "'운동권 신문', '노무현 정권 나팔수'라는 이미지도 없지 않은데, 이런 과도한 '정치지향'이 <오마이뉴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우려와 비판 이후엔 격려도 이어졌다. 주종환 기자는 "젊은이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담는다는 게 매력"이라며 좀더 적극적인 시민기자와 편집기자간 소통구조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의협 기자 역시 "쌍방향 미디어라는 특성을 십분 활용했으면 한다"며 "올해는 교육문제에 집중해달라"는 편집방향까지 제시했다.

 

오랜 세월 교직에 몸담은 탓에 이 기자의 '오늘날 교육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는 구체적이고도 높았다.

 

이승철 기자가 전한 쓴소리의 요지는 "편협한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것. 종교문제에 관한 기사를 예로 든 이 기자는 "비판하고 때리는 것도 좋지만, 격려해서 좋은 쪽으로 가게 만드는 것도 언론의 책무"라고 지적했다.

 

이현숙 기자는 2.0 개편 이후 '사는이야기'의 주목도가 낮아진 걸 걱정하며, "정보와 비판의식을 동시에 담아내는 사는이야기 기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돈이 유일한 가치가 돼선 안 된다"

 

오랜 세월 희망을 상징해온 봄. 곧 다가올 2008년 새 봄을 시민기자들은 어떻게 맞이할까?

 

주종환 기자는 지나온 80년의 연륜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젊은이들에게 들려줬다. "자기 이익만 좇고, 돈이 유일할 가치가 돼선 안 된다. 잃어버린 공동체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

 

열 다섯 살 중학생 최지원 기자는 "KBS '1박2일'이란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행을 많이 다녀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맞다. 사람은 집이 아닌 '길' 위에서 배우는 존재가 아니던가.

 

"다시 걸어서 세상과 만나고싶다"는 다분히 시적인 계획을 전한 유지형 기자는 스페인 교환학생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올해 마흔이니 삶을 축구로 치자면 후반전에 접어든 셈"이라는 이충섭 기자는 "직업과 태어날 둘째 아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도 "권투도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김준희 기자는 "꾸준히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한다. 책동네 서평 기사를 주로 쓰는 김 기자이니 이는 '많은 책을 읽겠다'는 포부로도 들렸다.

 

이의협 기자의 새 봄 계획은 그 스케일이 크다.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쓰지 못했던 소설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이현숙 기자는 "하지만, 꼭 써야할 기사가 생긴다면 그것 역시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시민기자 활동에도 게으르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이승철 기자는 바람은 "돈이 아닌 작지만 의미를 지닌 '진짜 가치'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세대간의 벽? "관심을 갖고 먼저 다가가면 깨진다"

 

이날 모인 사람들 중 최연소자와 최고령자의 나이 차이는 65살. 쉬이 넘어설 수 없는 세대 간의 벽이 느껴질 법도 했다.

 

하지만, 대담은 시종일관 자유분방하게 진행됐고, 참석자 8명 사이에선 '세대차이'라 부를 만한 이견이 없었다. 이들은 어떻게 세대 간의 벽을 넘어서고 있을까?

 

"어른과 아이가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놀이와 영화보기 등을 통해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있다"는 최지원 기자는 "과도한 간섭과 지적은 싫다. 그런 게 없는 할머니와의 대화가 즐겁다"고 했다.

 

반면, 유지형 기자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연령대가 위아래 10살 정도로 한정돼 있다. 특히 요사이 20대는 풀어야 할 자기 문제만도 벅차서 다른 세대와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김준희 기자의 말은 유 기자의 고민에 대한 답변으로 들렸다.

 

"가족 간에도 존재하는 게 세대 간의 벽이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관심을 갖고 먼저 다가간다면 해결 못할 문제는 없다."

 

여기에 이충섭 기자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제 군대식, 주입식 교육만으로는 세대 간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7남매 중 막내로 엄격한 가정교육 하에서 자랐다는 이현숙 기자는 "살아온 환경 탓인지 젊은 세대와의 교류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어른들과의 소통이 힘들었다"면서도 "내가 나이를 먹다보니 노인의 외로움이 이해가 된다.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각각 60대, 70대, 80대인 이승철, 이의협, 주종환 기자가 내놓은 '세대 간 벽 허물기 방법'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나부터 먼저 마음을 열어야 10~20대와 대화할 수 있다. 나이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좀더 여유롭게 접근하려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더불어 내 생각을 젊은 친구들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3명 할아버지 기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시민기자들의 웃음... <오마이뉴스>의 지난날과 다가올 날들

 

2시간 여에 걸친 대담이 끝나고, 참석한 8명 시민기자들이 함께 모여 사진을 찍었다. '<오마이뉴스> 창간 8주년'이란 의미를 담아내는 사진인 만큼 꽤 오랜 시간 여러 포즈를 취해가며 촬영이 반복됐다.

 

익숙지 않은 '모델 노릇'에 누군가는 짜증을 낼 법도 했지만 천만에. 1시간 가까이 이어진 사진촬영 도중 얼굴을 찌푸리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여든이라는 나이에도 건강한 혈색과 꼿꼿한 자세를 시종 유지했던 주종환 기자는 환하게 웃음 띤 얼굴로 촬영장 분위기를 주도했고, 일흔 여섯 이의협 기자 역시 요청에 따라 갖가지 포즈를 기쁜 마음으로 취해주었다.

 

여덟 명의 각기 다른 여덟 가지 웃음. 그 빛깔이 꽃처럼 화사했던 그곳에서 <오마이뉴스>의 지나온 8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8년 아니, 그보다 더 먼 시간까지를 낙관할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의 힘이자 희망인 시민기자들이 만들어준 즐겁고 행복한 풍경이었다.

 


#시민기자#창간8주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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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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