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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 오후 5시30분 방송되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연예인들이 '결혼'이라는 견고한 제도를 가상으로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속 '결혼'이 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모습들이 그저 '판타지'로만 보이지 않기에, 이 프로그램에 주목하는 것이다.
 
'우리 결혼했어요'에는 총 네 커플이 등장한다. 우선 '알렉스-신애' 커플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결혼상을 보여준다. 선남선녀가 볕 좋은 전원주택에 살면서, 이상적인 부부의 상을 한 공간에 잘 섞어 놓는다. 여기에 요리를 잘하고 소소한 이벤트에 강한 남편의 자상한 모습이 부각되고, 이에 못지 않은 아내의 참한 모습들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은 '결혼'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된다.
 
이에 비해 '정형돈-사오리' 커플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사 일에 소홀하고, 휴일이면 늦잠자는 남편. 그런 남편을 마음 속으로는 이해하지만 그 모습들이 너무 미워서 바가지를 긁는 아내. 시청자들은 이 커플을 보며, 답답해 하거나 '이게 진짜 현실의 결혼'이라고 뇌까린다.

 

 

신세대 감성을 자극하는 '솔비-앤디', '서인영-크라운제이' 커플은 바뀌어가는 대한민국 사회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앞에서 언급한 정형돈-사오리·알렉스-신애 커플은 부부관계의 초점이 남편에게 맞춰져있다. 판타지 속 아내의 모습이든, 현실적인 아내의 모습이든, 아내는 남편에게 영향을 받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솔비나 서인영은 부부관계를 주도한다. 특히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며 남편을 요리(?)하는 솔비의 모습이나 안하무인격으로 남편을 장난감 다루듯 행동하는 서인영의 모습을 보자면, 그 모습 자체의 타당성을 따지기 전에 우리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남성 캐릭터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판타지'를 뒤집어쓰고 호감형 인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정형돈은 만은 유독 도전 아닌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남자는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혀야 된다'는 구시대적 가치관을 가진, 사회생활에 지친 나머지 집에서는 게으르기만 한 대한민국 전형적인 남편의 모습을 대변한다. 당연히 우리 아버지, 내 남편 같은 그가 매체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시청자들의 눈에 찰 리 없다.

 

그는 프로그램 중간 독백을 통해 남편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나도 뭔가를 잘못했다는 것은 알겠다'라고.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그 '뭔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애정표현이 서툴고, 아내에게 잘해주려는 본심과 행동이 따로 노는 모습들이 여과없이 브라운관에 비쳐질 때, 동점심이 조금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엄청난 안티와 함께.

 

사실 이런 정형돈의 등장은 매우 신선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사고관에 일침을 가하고, 무미건조한 부부관계를 고발하는 이 캐릭터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 바로 정형돈이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  

 

물론 정형돈 캐릭터의 변화는 필요하다. 가부장적 사고관도 바뀌고 오순도순한 부부관계로의 변화도 꾀해야 한다. 하지만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정형돈은 같은 프로그램의 알렉스를 좋은 모델로 삼아 변화를 모색한다.

 

이는 현실적 문제를 안고 시작했던 정형돈이 판타지를 동경하며 따라가는 꼴이되고, 애초에 제기한 문제는 잊혀지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애초에 겪었던 문제들에 다시 봉착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가령 가부장적인 사고관을 가진 정형돈이 자신의 어머니와의 대화속에서 그런 사고를 깨는 모습을 방영한다거나, 사오리와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일종의 충격들을 기점으로 변화의 방법을 찾는 등, 이렇게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고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으련만, 프로그램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쪽 길은 슬쩍 피해간다. 오락프로그램이라서 신선했는데, 오락프로그램이라서 드러나는 한계도 어쩔 수 없나보다.

 

하루 아침에 정형돈이 모든 것을 다 바꾸고 부인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만을 보여준다면? 적어도 이 커플은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비난 여론을 의식해서 어느 정도의 판타지를 가미한다 하더라도, 애초에 제기한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의지를 버리지 말자. 아주 간단한 해결책만 제시해도, 국민들의 가치관에 미치는 파급력은 상당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우리 결혼했어요, #정형돈,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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