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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대형할인마트에서 한 주부가 과자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대형할인마트에서 한 주부가 과자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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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H대형마트의 과자 코너. 사람들로 북적이는 다른 코너와는 달리 이 곳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손님들은 과자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대부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종종 아이가 조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엄마가 "집에 가서 맛있는 거 해줄게"라며 다른 코너로 아이를 이끌었다. 그 옆에선 "국산도 안 좋은 것 아닌가"라며 혼잣말 하는 주부가 빈 카트를 밀고 있었다.

이 모습은 비단 이 곳만의 풍경이 아니다. 지난 24일 해태제과 '미사랑 카스타드'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뒤, 동네 슈퍼를 비롯해 다른 중대형 마트에서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1+1행사 등의 싼 값에도 주부들은 과자코너를 외면했다.

수난은 과자뿐만이 아니다. '중국산'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제품은 주부들의 선택을 받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주부들의 맘이 편한 것도 아니다. "중국산은 안 쓰겠다"고 선언하고 싶어도 중국산이 안 들어간 제품을 찾기 어렵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썰렁한 과자 코너... "아이들에게 과자 안 먹인다"

이날 오후 H 대형마트에서 만난 이경희(41·서울 문래동)씨의 장바구니는 여느 때보다 그 부피가 작았다. 값이 싼 탓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까지 온다는 이씨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니, 아이들 옷과 함께 야채·쌈·돼지고기 등의 먹을거리가 있었다.

한번 올 때마다 아이들 과자를 종종 샀지만 이날 장바구니에 과자는 없었다. 이씨는 "초콜릿·과자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4·6학년 아이들이 있는데, 이젠 아이들한테 그런 거 안 먹인다"고 말했다.

이씨는 다른 주부들에 비해 얌전한 편이다. 여섯 살배기 딸과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오진경(가명·35·서울 성산동)씨에게 '과자'에 대해서 물으니, 그는 "제과회사에 전화하러 갈 것"이라며 씩씩거렸다.

"딸애가 친구랑 과자를 먹는데, 친구가 초콜릿이 들어간 과자를 보더니 '이거 먹으면 오줌 싸는 데 문제가 생긴대'라고 하자 아이가 화들짝 놀라 그 과자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확인해보니 원산지표시가 제대로 안 돼 있었다. 애한테 아토피가 있어서 과자를 잘 안 먹이는데…. 그거 보고 화가 났다."

 29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대형할인마트에서 만난 한 주부의 카트 모습. 국산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모두 국산을 샀다.
 29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대형할인마트에서 만난 한 주부의 카트 모습. 국산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모두 국산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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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과자 코너에서 만난 주부들은 모두 "멜라민 때문에 아이들이 걱정된다.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그 때문일까, 국내 최대 대형마트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과자 매출액은 그 전 주에 비해 10.5%나 줄었다.

이보다 더한 품목도 있다. 커피 믹스는 같은 기간 매출액이 12.5% 떨어졌다. 이날 만난 커피 코너 매장 직원은 기자에게 커피를 타주며 "프림(크림)의 경우 현재 중국산은 없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주부들은 "프림 들어간 커피는 안 먹겠다"고 강조했다.

먹자니 꺼림칙... 중국산 피하기 너무 어렵네

대형마트 발표로는 과자와 커피 믹스를 제외하곤 멜라민 파동에 큰 영향을 받는 품목은 없다지만, 이날 만난 주부들 사이에선 중국산 전체에 대한 불신이 매우 컸다. 이날 저녁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대형마트 빵 코너 앞에 선 조희진(가명·47·서울 응암동)씨는 "(중국산인) 팥과 귀리가루가 들어간 빵이 많은데 먹기가 좀 그렇다"고 밝혔다.

중국산만 있는 농수산품 중 대표적인 게 낙지다. 생선코너엔 다른 생선과 달리 중국산 낙지가 잘 팔리지 않는 듯 높게 쌓여있었다. 이 코너 직원은 "같은 바다(서해)에서 나오는 건데, 중국산 낙지는 거의 안 나간다"고 말했다. 윤경자(가명·72·서울 갈현동)씨는 "낙지 대신 국산 오징어를 먹으려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안 먹을 수도 없고, 중국산에 비해 국산의 가격이 매우 비싼 품목 앞에서 주부들의 머리는 지끈거린다. 두부 코너에서 만난 한 30대 주부는 "중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는 1000원 정도인데, 유기농 국산 브랜드 제품은 그 배가 넘는다"며 "사기 부담스러워 시골에서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날 가장 눈에 띈 장면은 '소풍 상품 모음전'에 모인 주부들의 모습이었다. 이 곳엔 아이들 김밥·도시락 등에 들어갈 만한 재료를 모아놓았다. 김상희(40·서울 은평구 신사동)씨는 10분 넘게 어묵·햄 등을 하나씩 집어 들어 살펴봤다.

집어 든 어묵을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여러 차례 다시 꺼낸 김씨는 "부산 어묵이라는데, 원재료가 '연육/수입산'으로 되어있어 중국산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유부피 역시 마찬가지인 터라 "소스엔 중국산이 들어있는데, 소스는 안 써야겠다"고 전했다.

김씨의 카트에는 국산 김·국산 무농약 단무지·국산 햄 등이 들어있었다. 그는 "최대한 국산을 산다"면서도 "어떤 제품은 원산지 표시가 '수입산'이라고만 돼있어 꺼림칙하지만 그렇다고 쓰지 않을 수 없어 걱정이다, 사실 중국산 먹지 말라는 건 곧 굶으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해법은 '비싼 거 사서 아껴 먹기'?

이날 만난 주부들은 "식품 안전 당국·식품 업체들을 믿지 못 하겠다"고 소리를 높였다. 김숙자(가명·54·서울 성산동)씨는 "보통 가게에서 파는 것 중 국산이라고 해놓고 아닌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그런 걸 단속하지 못한다, 이젠 신뢰가 완전히 떨어졌다"고 밝혔다.

조희수(가명·52·서울 서교동)씨는 "해태제과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는데, 다른 회사 것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며 "그렇다고 정부에서도 제대로 조사를 한 것 같지 않다. 최대한 비싼  걸 사서 아껴먹는 수밖에 더 있느냐"고 전했다.

일부는 "우리 탓도 있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주부는 "우리가 싼 것만 찾으니, 업체에서 원가 맞추려고 중국산 쓸 수밖에 없었다"며 "그래서 결국 중국산이 안 들어간 게 없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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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민#멜라민 사태#대형마트#과자#중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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