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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허영만 작가의 연재만화 <식객>을 20권까지 모두 탐독했습니다. 14권에 등장하는 한 여배우는 약속도 잘 지키지 않고 스태프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등 밉상처럼 굴다, 결국 학창시절 동기였던 조감독과 다투게 됩니다. 때마침 비가 내리고 촬영은 중단됩니다. 밥차에서 비를 피하던 여배우는 <식객>의 주인공인 성찬이 만든 닭강정을 맛보고는 빗속에서 그 조감독인 친구와 화해를 하게 되지요.

그때 여배우는 대학시절 인천의 한 시장에서 친구와 함께 닭강정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였던 옛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 시장은 바로 부평시장과 함께 인천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인 '신포시장'입니다. 이렇듯 신포시장의 닭강정과 만두는 너무 유명해 만화의 소재로 등장할 정도입니다.

 동인천역에서 월미도 방향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카톨릭회관 맞은편에 신포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동인천역에서 월미도 방향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카톨릭회관 맞은편에 신포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 네이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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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에피소드를 접하니 지난해 10월말 신포시장을 둘러보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재래시장과 영세상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형백화점·대형마트를 계열사로 가지고 있는 한 재벌기업(롯데) 회장이 소유한 인천 계양산의 땅(부지)에 골프장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그것을 막기 위해 함께한 벗들이 있습니다. 그네들과 신포시장의 터줏대감인 떡방앗간 아저씨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시장 골목 숨은 쉼터에서 중국인이 개설한 푸성귀전(야채시장)을 형상화한 조각물을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인천을 대표하는 재래시장 신포시장
 인천을 대표하는 재래시장 신포시장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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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포시장뿐만 아니라 인천지역·역사를 꿰뚫고 있는 터줏대감의 말과 이후 찾아본 인천역사관 자료에 따르면, 19세기 말 신포동에 있던 푸성귀전이 신포시장의 전신이라 합니다. 푸성귀전 안에는 20여 개의 채소가게가 있었는데 그곳의 주인은 모두 중국인 화농(華農)들이었고, 고객은 주로 일본인이었다 합니다.

화농들은 배추, 무, 양파, 토마토, 피망, 당근, 우엉, 마, 연근 등을 거래했고, 화농들은 산둥성 연대에서 채소씨앗을 가져와 현재 남구 도화동과 숭의동 일대에서 농사를 지어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러니까 인천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화농의 시초라 할 수 있습니다.

 야채가게
 야채가게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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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이 운영하는 양화점도 시장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양화점도 시장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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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포동하면 신포만두다. 시장안에는 중국식 산둥만두집도 있다.
 신포동하면 신포만두다. 시장안에는 중국식 산둥만두집도 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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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개항장을 통해 온갖 상품이 들어왔는데요. 신포시장은 어시장과 야채시장으로 출발해 1927년 공설 제1일용품시장과 공설 제2일용품시장으로 됐다가 광복 이후 지금의 재래시장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합니다. 이 신포시장이 있는 신포동은 개항 당시 정치, 경제, 금융,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고, '신포(新浦)'란 새로운 포구를 말합니다. 헌데 신포동의 원래 이름은 '터진개'라고 합니다. '터진개'는 바다쪽으로 터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네요.

저는 인근 자유공원 아래 고등학교를 나와서, 등하굣길에 신포동과 신포시장을 매일 지나쳤습니다. 수중에 돈이라곤 버스표(예전에는 교통카드가 아니라 토큰이나 종이로 된 버스표를 사용했다) 살 차비 밖에 없어 그 맛난 닭강정과 만두, 찐빵을 사먹을 수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시장 골목을 지날 때 풍겨오는 왕만두와 닭강정 냄새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간혹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닭강정을 사오시면 신포시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 시내에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가 늦은 저녁 신포시장을 둘러봤습니다. 볕과 비를 막아주던 파란 차양막 대신 유리로 된 지붕이 시장골목의 비를 막아주었습니다. 바닥 또한 예전과 달리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인천의 상권이 동인천에서 다른쪽으로 이동했고 주변에 대형마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바람에 재래시장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뜨거운 김이 '풀풀' 솟아나는 왕만두와 왕찐빵을 쪄내는 모습은 그대로였습니다.
쓸쓸한 겨울밤처럼 옛영화의 추억이 어려있는 인천 중구 신포동 신포시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합니다.

덧. 신포시장과 신포동 골목마다 즐비했던 옷가게와 이런저런 가게들이 많이 사라졌네요. 경기가 더욱 안 좋다보니 그 잘나가던 가게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더군요.

 신포동거리에서 신포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신포동거리에서 신포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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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포시장 골목 모습
 신포시장 골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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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강정과 왕만두, 왕찐빵을 팔고 있다.
 닭강정과 왕만두, 왕찐빵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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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밝힌 즉석 두부공장
 불밝힌 즉석 두부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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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인천이라 어산물도 많다.
 역시 인천이라 어산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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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머니들이 길 한복판에 옷을 늘어놓고 파는 좌판이 늘어서 있다.
 아주머니들이 길 한복판에 옷을 늘어놓고 파는 좌판이 늘어서 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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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포동 일대는 인천의 중심 상권이었다. 헌데 요즘은 상가와 가게가 많이 비어있었다. 경기가 안좋아 그런건지 더욱 쓸쓸했다.
 신포동 일대는 인천의 중심 상권이었다. 헌데 요즘은 상가와 가게가 많이 비어있었다. 경기가 안좋아 그런건지 더욱 쓸쓸했다.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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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시장#신포동#닭강정#재래시장#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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