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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작년 8월에 보고 처음이니 근 1년반만의 해후였다. 일명 '정미소 사진작가'로 유명한 김지연씨를 지난 9일 다시 만났다. 작년에 개최했던 '묏동전' 이후 여러 다양한 전시회와 프로그램을 개최했다는 소식은 풍문으로 혹은 직접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번엔 그녀가 아주 독특한 사진을 들고 찾아왔다. 이름하여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

이장님, 그 존재감에 대하여

안소민(이하 안) "그동안 안녕하셨죠? 별 일 없으셨나요?"
김지연(이하 김) "여름 동안 일을 많이 벌여서 며칠 전까지 호된 몸살감기를 앓았어요."

 "이장님의 사진전시회를 한다고 들었을 때 무척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시작한 일인가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리 농촌의 현 모습을 잘 보여주는 분들이 이장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안 "이장님들이 쉽게 협조하시던가요?"
김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죠. 아니, 끝까지 쉽지는 않았어요."

 "그럼 그 이야기를 해주시죠.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김 "시작한 건 올해 초봄부터였어요. 이장님들이 워낙 바쁜 분들이니까 미리 연락을 해서 농번기를 피해 약속을 잡았지만 역시 이장님들은 바쁘셔서. 항상 출근 중이시니까요.(좌중 웃음)"

 "이장님이 우리 농촌의 현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했는데요 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그러니까… 요즘 우리 농촌 참 어렵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많이 위축되어있고 정체되어 있어요. 전 시골에서 계남정미소를 운영하고, 실제 거주는 도시에서 하면서 양쪽을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농촌의 현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젊은 사람은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고 나이드신 몇몇 분들이 농가를 지키고 계시죠. 대부분 60~70대 아주머니들이나 아저씨들이에요. 연장자에게는 '어르신'이라고는 부르지만 그들은 서로를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구요.

모두 어렵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는 공동체라는 것이 존재해요. 마을에 행사가 있다면 전날 모여서 아낙끼리 음식을 만든다거나 삼베를 짠다거나 합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연말이 되면 한해를 정산하고 내년 계획을 세우는 '대동제'를 열기도 하죠. 그러한 공동체의 중심에 있는 존재가 바로 이장님이에요. 저는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시골에 들어오기 전까지만해도 '이장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안 기자는 알았나요?"

 "물론 저도 시골에 산 경험은 없어서 잘 모르지만 시골 사시는 분들이나 귀농하시는 분들로부터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 마을에 들어가서 잘 지내려면 우선 이장님과 잘 지내야 한다고요."

 "정말 맞는 말이에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이장님은 정말 그런 존재예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장'이라는 호칭이 매우 낯설죠. 이장은 관과 민을 이어주는 매개체, 행정과 실제 삶 가운데에 놓여있는 징검다리, 주민과 주민을 이어주는 단단한 매듭 같은 존재죠. 관에서 뭐라고 해도 잘 듣지도 않던 주민들이 이장의 말에는 곧바로 대응하거든요. 공무원도 아니고 일반 민간도 아니면서 그 이음새 역할을 해내는 이장이라는 묘한 존재가 오늘 우리 농촌을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삼고초려보다 어려웠던 이장님 모시기

 "그래서 사진을 찍기로 하셨군요."
 "점차 사라져가는 농촌 풍경을 담듯, 이장님들의 사진도 그렇게 기록해 두고 싶었죠."

 "이장님들 섭외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무척 어려웠죠.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웃음). 우선 면장의 도움을 받아 각 이장님들의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었어요. 한 분당 전화연락은 기본적으로 열 번 이상은 한 것 같아요. 대부분 집에 안 계시니까.

또는 면장 허락을 얻어 이장회의 때 사진협조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죠. 한번에 오케이 해주시는 분들은 거의 없었고 '내가 왜 이런 걸 찍어야하느냐' '찍어서 어데다 쓸려고 그러느냐'고 미심쩍은 눈으로 보는 분들이 많았죠.

설사 약속을 잡아서 약속장소에 나갔다고 해도 '지금 바쁘니 나중에 하자' '다음에 하자'며 무한연기를 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셨어요. 몇 번의 설득과 연락 끝에 나중에는 대부분 응해주시기는 했지만요."

"무척 어렵고 지루한 작업이었겠네요."
"가끔은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었죠. 한 일년을 끌어온 작업이니까요."

 김지연씨
 김지연씨
ⓒ 신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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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포기하고 싶었겠네요. 이장님들 설득하는 작업이 어려워서."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죠. 왜냐하면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니까요. 제 성격이 좀 그런가봐요. 예전에 계남정미소에 오셨던 한 할머니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말씀하시더라구 '팔자소관'이라고. 정말 팔자소관인것 같아요(일동 웃음)."

"그래도 재미있었던 일도 있었겠죠. 힘들기만한 일은 없잖아요."

 "네. 겉으로는 무척 완고하고 어려워보였던 이장님들이 사진 찍고 난 후에는 식사하고 가라든지, 간식 좀 먹고가라고 권유하셨거든요.

또는 마을축제나 행사가 있으면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두부나 한과 같은 것을 만들고 계시거든요. 팔지는 않고 그냥 싸주곤했어요. 먹을 것도 권하고 가져가라고 싸주기도 하고… 그걸 보면서 아직도 우리 농촌 인심은 살아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많지요."

집나간 부인 좀 찾아달란 말... 마음이 착잡해

 "기억나는 이장님은요?"
김 "한분 한분 다 인상적이었어요. 갑자기 빙판길을 만나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와주신 이장님도 생각나고요. 그런가 하면 이런 사진 찍지 말고 차라리 집나간 부인이나 찾아달라는 이장님도 있었죠. 자신의 마을 특산품 홍보를 더 해달라고 하셨던 이장님도 계셨어요. 그럴 때는 마음이 착잡했죠.

젊은 이장님들 볼 때는 반갑기도 하다가도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던 게, 그 분들도 어린 자녀가 있고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잖아요. 간혹 비치는 그들의 수심어린 표정을 볼때면 마음이 안 좋죠.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몇 년씩 이장직을 맡는 분도 계시는가 하면, 칠순의 연세에도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다니면서 동네 일을 도맡아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삶의 모습이 저마다 다르듯이 그 자리에서 열심히 사시는 이장님들의 모습이 제겐 다 인상적이었어요."

"이장님들은 사진을 찍으면서 어떤 표정이었나요?"
"대부분 무표정.(웃음) 사명감에서 찍는 거죠. 이것도 이장 업무중의 하나. 그들에겐 업무수행 중인거죠. 역시 출근중."

오늘도 이장님의 자전거는 쉬지 않는다

"항상 출근중이시겠네요."
"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장의 임무가 여기서 저기까지 똑 떨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밥을 먹다가도 어느집 어르신이 아파서 병원에 가봐야하면 따라가봐야하고, 잠을 자다가도 누군가 사고를 당했으면 또 가봐야 하거든요. 절대 누가 시켜서하는 것도 아니고 씌여있지도 않지만 농촌이라는 공동체 생리상 이장의 존재는 24시간 대기조나 마찬가지예요. 본인에게는 고단하지만 그게 바로 농촌을 이끌어가고 돌아가게 만드는 힘 아닐까요."

안 "정말 고단하시겠네요. 이장님이란 존재."
 "어느 이장님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장님의 '장'이 어른 '장'이 아니라 기다림 '장'이라고 말해서 웃기도 했죠." 

안 "정말 기다림 맞네요. 그렇게 기다리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까요?"
 "글쎄요…. 그러길 바라야죠. 그런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사시는 분들이니까요. 큰 빚을 얻어서 시작한 인삼농사가 중국산 인삼 때문에 또 무너지고 있어요. 축산농가는 어떻고요. 그런거 생각하면 사진찍기도 죄송한 심정이예요."

 "주민들 단체사진도 함께 찍으셨어요."
 "대부분 마을 축제 때 가서 함께 찍은 것들이에요. 평소 사진 찍을 일이 별로 없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단체사진을 찍어주니까 매우 기뻐하셨어요."

 "계속 찍으실 건가요? 이장님 사진?"
 "아니, 이제 그만 찍습니다. 전 예술이라는 것은 어느 한 문제를 이슈화시켜서 사람들로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이장님의 존재와 우리 농촌의 현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면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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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 전시회는 11월 지난 11월 서울 갤러리룩스에 이어 전주 '갤러리 봄'에서 12월 5일부터 19일까지 열렸습니다.



#계남정미소#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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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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