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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를 경기도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홍보로 덮으라는 '청와대 이메일 지침' 폭로로 경찰의 반복적인 거짓말 행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11일 <오마이뉴스>는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국회에서 폭로한 '청와대 이메일 지침' 전문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지침을 내린 적 없다"고 반박했다가 이틀 만에 말을 바꿨다. 13일 청와대는 "온라인 홍보를 담당하는 모 행정관이 개인적으로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경위서를 받은 뒤 당사자에게 구두경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메일로 지침을 내린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 메일의 수신자인 박병국 경찰청 홍보담당관은 12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청와대로부터 군포 연쇄살인 사건 홍보와 관련해 공문이나 전자우편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하루 만에 청와대가 사실을 인정하면서, 경찰은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청와대가 사실을 인정한 13일이 되어서야 박 홍보담당관은 "청와대 쪽에서 입장 정리가 안 된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입장을 밝히기는 힘들었다"고 해명했다.

 

 

위기 때마다 '부인·거짓 해명' 급급

 

당장 위기에 처하면 발뺌부터 하고 보는 경찰의 '양치기 소년' 행태는 이번만이 아니다. 철거민 6명이 사망하고, 동료 경찰관 1명이 희생된 '용산 철거민 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경찰은 '일단 부인하고 나중에 해명하는' 과정을 몇 차례나 반복했다.

 

망루 해체 작전에서 경찰과 용역업체가 합동작전을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은 처음부터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1월 23일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경찰은 용역들 뒤를 따라..."라는 당시 무전 내용을 공개하자 "건물 외곽에 있던 경비과장이 상황을 잘못 파악해 오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합동작전은 없었다"는 경찰의 거짓말은 오래 가지 못했다. 2월 3일 언론을 통해 용역업체 직원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 폭로됐는데도, 경찰은 "물포를 쏜 사람은 경찰관"이라고 끝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하루 뒤인 4일에는 "소방관이 호스를 잡고 있다가 화염병이 날아오자 용역직원에게 잠시 잡고 있으라 한 것"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놨다. 결국 검찰 조사에서 물대포를 쏜 인물이 용역직원 정아무개씨로 드러나 경찰은 체면을 구겼다.

 

12일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겠다"며 자진 사퇴한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사건 초기부터 거짓 해명으로 일관했다. 김 전 청장은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경찰특공대 진압 작전을 보고만 받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결재사인이 담긴 '진압계획서'가 공개되자, 사실을 은폐 축소하고 책임을 면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결국 김 전 청장도 자신이 진압작전을 승인했다는 점을 시인했다.

 

김 전 청장의 무책임한 태도는 퇴임 전까지 이어졌다. 그는 용산 참사에 대한 검찰조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4일 서면조사 답변서에서 "청장실의 무전기를 켜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어떻게든 위험천만했던 경찰특공대 진압작전 지휘책임을 면해보려 한 것이다. '무전기를 꺼놨다'는 김 전 청장의 주장은 사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았지만, 이 때문에 그는 "위험한 작전 도중에 어떻게 지휘관이 무전기를 꺼놓을 수가 있느냐"는 더 큰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용산 참사' 여론조작 국민적 지탄 대상... "전국 경찰이 알바짓이냐" 

 

'용산 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거짓말과 말바꾸기뿐만 아니다. 사건 초기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하던 경찰은 시간이 지나자 더 적극적으로 '여론 조작'에 나섰다.

 

지난 1월 <MBC 100분 토론>이 홈페이지를 통해 용산 참사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자, 전국의 지방경찰청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라"고 독려하며 여론을 호도했다.

 

광주경찰청은 지난 달 28일 오전 일선 경찰관들에게 일괄적으로 "용산 사건 관련 인터넷 여론조사 적극 참여 요망-MBC 100분 토론 시청자 투표"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부산경찰청에서도 경찰관들이 대거 <MBC 100분 토론> 회원으로 가입해 글을 올렸다.

 

경북경찰청은 지난 3일 <MBC PD수첩>이 용산 참사를 다룰 것으로 알려지자 구내방송을 통해 "전 직원은 퇴근 후 일반인으로 돌아가 적극적으로 인터넷에 의견을 올리라"고 독려했다. 창원 중부경찰서도 지난 달 24일 민간인 신분인 자율방범대원들에게까지 문자메시지를 보내 '철거민의 폭력'만을 부각시킨 <조갑제닷컴> 영상물을 보라고 요청해 물의를 빚었다.

 

심지어 일선 경찰관들이 관내 아파트단지를 돌며 '용산 화재사건,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다. 서울 중랑경찰서 소속 용마지구대 경찰관들은 지난 2일 면목4동 아파트단지 입구에 사진이 붙은 전단지를 붙이다 입주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문제가 커지자 해당 지구대에서는 "일선 대원들이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고 발뺌했다.

 

이밖에도 중랑·성북·송파 등 서울시내 경찰서 7곳은 민원인들이 드나드는 입구 로비에 철거민들의 폭력 행위만을 모은 사진과 동영상을 전시하거나 틀어놓았다. 경찰청을 비롯한 각 지방경찰청과 경찰서 홈페이지에는 아직 '용산 화재사건, 진실은 이렇습니다'라는 팝업 안내창과 영상물이 게재되고 있다.

 

6명의 목숨이 희생된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보다 '조직 보호'에 급급한 경찰의 행태는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전국의 경찰이 나서서 알바짓이냐, 나라 참 잘 돌아간다"는 일침을 <100분 토론> 게시판에 남기기도 했다.

 

 

경찰 '우리끼리 사랑' 도를 넘었다

 

12일 사퇴한 김석기 전 청장은 퇴임사를 통해 "우리끼리라도 아끼고 서로 사랑하는 경찰이 돼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퇴임사가 아니더라도, 현재 경찰은 '우리끼리만'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퇴임식이 있던 날, 전현직 경찰모임인 무궁화클럽 회원들은 "원칙 없는 법 통용에 15만 경찰이 울고 있다"는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울부짖었다. '근조 경찰'이라는 검은 리본도 등장했다. 외부의 어떤 지적도 돌아볼 생각은 않은 채 '조직 보호' 논리만 앞세워 '남탓'만 하는 모습이다. '우리끼리 사랑'이 도를 넘은 셈이다.


#용산 참사#경찰#김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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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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