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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제사상에 조기는 올리지 않습니다."

 

요즘 양산시청 공무원들은 재정조기집행을 두고 갖은 우스개소리를 늘어놓을 만큼 재정조기집행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양산시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재정을 조기집행해 실물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지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3월과 6월 행정안전부가 전국 246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재정조기집행 추진 실적을 분석, 우수 지자체에 재정지원 인센티브를 지급할 계획이어서 지자체간 재정조기집행 실적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양산시는 이미 지난해 12월 '상반기 90% 이상 발주, 60% 이상 집행'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재정조기집행에 열의를 쏟고 있다. 더욱이 지난 1월 청와대에서 개최된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 초청 국정설명회에 참석한 오근섭 양산시장이 대통령에게 재정조기집행 우수 단체장에게 훈장을 수여해달라는 요지의 발언까지 하면서 양산시의 재정조기집행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이러한 열기는 지난달 23일 안기섭 양산부시장이 각 부서 실과장, 사업소장, 읍ㆍ면ㆍ동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재정조기집행 추진상황 보고회에서도 확인됐다. 매주 실시되는 추진상황 보고회와 별개로 부서별 전체 원인행위액과 집행액에 대해 보고하고, 1천만원 이상 공사, 용역, 물품구매 등 중점관리 대상사업에 대해 해당 부서장이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날 보고회에서 양산시는 6월 말까지 재정조기집행 90% 이상을 목표로 매주 추진상황 보고회를 열어 부서별 미추진 사업에 대한 사유와 대책을 보고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등 재정조기집행에 전력을 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지난달 2일 기획예산담당관실 내에 비상경제상황실을 설치, 비상경제 지휘본부체계를 구축하는 한편,시청 본관 현관 입구에 '조기집행 목표 온도계'를 설치해 집행율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열성 덕분에 양산시는 예산대비 30%에 가까운 재정조기집행율을 기록하며, 최근에는 정부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재정조기집행이 경기 부양이라는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지자체 간 '실적 경쟁'으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살펴봐야 할 사업우선순위와 경기부양효과 등이 고려되지 않은 채 '지자체 금고 비우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재정조기집행 내역을 살펴보면 분기별로 지급되던 사회단체보조금이나 각종 일상 경비 등을 연납한다거나 공기에 따라 지급되던 사업예산이 선급금으로 지불되는 사례가 눈에 띄고 있다. 공사일정에 따라 나눠주던 공사대금을 법적 요건에 따라 70%까지 선금으로 지급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기초생활대상자나 저소득층에게 매월 지원되어야 할 생계비마저 재정조기집행 대상으로 포함될 뻔한 사례도 있었다. 실제 양산시가 마련한 조례에 따라 지급되는 참전용사수당은 매월 지급에서 3개월 선지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 부서에서 사용해야할 사무용품 1년치를 미리 사놓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는 것이 한 공무원의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 지침 자체가 전체 예산 집행만을 고려할 뿐, 집행에 있어 사업 우선순위나 효과 등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단 양산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재정조기집행이 정부의 치적 쌓기용으로 흘러가면서 '경기부양'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일선 공무원들은 재정조기집행에 대한 정부 차원의 검토를 통해 적절한 재정조기집행 방침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양산시민신문(www.ysnews.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양산#조기집행#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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