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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항쟁을 통해 완전하지는 않지만 억압됐던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어느 정도 해동되면서, 정부와 권력층을 비판하고 비리를 파헤칠 수 있는 시사프로그램이 생겨났다. 

 

1990년 5월 첫 방송을 내보낸 <PD수첩> 역시 그동안 시청자들의 알권리와 진실을 전달해주려 노력해왔다. 권력의 그늘에 가려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들려주면서 언론의 책무인 '사회 감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었다.

 

<PD수첩>과 같은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의 등장으로 'PD저널리즘'이라는 영역은 더욱 확고히 다져졌고, 그 영향력과 파급력도 커졌다. 누군가가 잘못하면 "<PD수첩>에 나오려고 그러느냐?"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자칫 '언론권력'이라는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었음에도 다행히 <PD수첩>은 열아홉 해 동안 올바른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왔다.

 

시청자 알권리 위해 소신 굽히지 않은 <PD수첩>

 

물론 그동안 <PD수첩>이 방송해온 것들이 늘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6월 18일 방송된 '원조교제-10대들의 신종아르바이트' 편이나 해외 성매매 관련된 방송 등은 문제점들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지나치게 선정적이었고 역으로 정보를 주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부도덕한 일들을 상세히 방송함으로써 그로 인해 파생될 문제점 등을 간과했던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지상파 방송3사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공통적인 문제점이었고, '선정적으로 비쳤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 그러한 보도 행태는 점차 사라졌다.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가 되기를 자청한 <PD수첩>은 소외된 우리 이웃을 위하여 외압과 위협에 굴하지 않는 성역 없는 취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예기치 않은 혹은 예상된 수난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모 종교단체가 방송사에 난입을 하고 방송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2005년 '황우석 사태' 때는 취재를 했던 PD와 그 가족이 위협당하는 일마저  있었다. 그리고 2006년 '한미FTA' 관련 보도는 국정홍보처로부터 '외눈박이 보도'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런 시련에도 <PD수첩>은 소신을 굽히지 않는 근성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성역과 같이 지켜졌던 '삼성 X파일' 등과 같은 경제권력 문제는 물론이고, 정부와 정치권의 문제점을 파헤쳐왔다.

 

검찰의 <PD수첩> 탄압은 '맛보기'

 

그러다 결국 2008년 5월 '촛불집회'의 촉발제가 되는 '광우병 관련 보도'가 나갔다. 방어적이던 정부는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보도와 사과방송을 요구했지만 <PD수첩> 제작진과 MBC노조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MBC 경영진의 결정으로 사과방송이 나가기는 했지만 이것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PD수첩>의 의견은 아니었다. 이후 촛불집회가 진정 국면에 들어서자, 현 정부는 친정권적인 보수언론을 제외한 언론 매체를 향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PD수첩>은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장관으로부터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를 당했고 KBS, YTN 사장의 경우 친정부 인물로 낙하산 인사가 단행되었다. 또 미디어 관련법 개정으로 언론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의도까지 드러내고 있다.

 

<PD수첩>을 본보기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에 경고를 보내는 한편, 법을 개정하여 정권의 입맛에 맞게 언론을 변질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감시자로서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제약하고 위축시키는 일이다.

 

특히 <PD수첩>을 향한 검찰수사의 경우, 그동안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명예훼손 수사와는 달리 이례적일 정도로 강도 높고 상식 밖이다. PD들을 소환하고 원본테이프를 내놓으라는 등의 요구는 언론으로서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이미 죄를 확정을 지어놓고 그것에 맞추기 위하여 표적수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비치는 상황에서 검찰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향후 언론계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

 

검찰의 꿍꿍이, 다 보인다 다 보여

 

<PD수첩>이 고소를 당한 것은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 형법 제307조와 309조에 의거한 것이다.

 

제307조(명예훼손)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②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제309조(출판물등에 의한 명예훼손) ①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하여 제307조 제1항의 죄를 범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②제1항의 방법으로 제307조제2항의 죄를 범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그러나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형법은 제310조에서 조각사유(阻却事由,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위법하지 않게 되고 그것이 없으면 위법한 것이 되는 사유)를 가지고 있다.

 

제310조(위법성의 조각) 제307조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PD수첩>의 보도가 진실이라면 설령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의 명예가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분명하므로 처벌할 근거를 잃게 된다. 따라서 허위 사실로 방향을 잡아 그것을 규명하지 않으면, 형법 제310조에 따라서 조각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검찰은 허위사실로 혐의사실을 구성하고 맞춰나갈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가 그동안 언론사 혹은 방송사와 명예훼손으로 분쟁이 생겨 소송이 발생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 2월 <PD수첩> 수사를 맡은 담당 부장검사가 형사처벌이 불가함을 주장하다 사표를 낸 것도 수사가 부당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검찰 스스로 자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검찰은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며 PD를 소환하고, 이에 불응하자 이춘근 PD를 긴급체포했으며 나머지 PD와 작가들의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언제라도 체포할 수 있다는 위압감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8일에는 MBC를 압수수색 하려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다.

 

<PD수첩> 수사를 진행하며 검찰이 언론을 통해 발표한 "10군데 이상 왜곡됐다"는 주장은 상당히 작위적이다. '무엇을 위하여 왜곡을 했냐'는 것에 대해 검찰 발표는 분명하지 않다.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규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의도적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PD수첩>이 왜곡을 통해 선정적인 방송을 제작해 시청률을 올리려는 의도가 작용했거나 '광우병 관련보도'로 현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있었는가를 따져 본다면 둘 다 부합되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의 특성을 무시하고 진행되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다분히 표적수사이고 언론탄압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단순 실수와 의역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은, <PD수첩> 방송분을 보았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제대로 파악했다면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검역권과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너무나 안이하게 협상하고, 그 협상 결과에 대해 '무조건 문제가 없다'는 태도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정부에 <PD수첩>이 근거를 제시하며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킨 방송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PD수첩> 수사에 주목하는 까닭 

 

이번 수사가 어떻게 결론이 나고, 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날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분위기를 보면 <PD수첩>에 유리한 결론이 나오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검찰의 무리한 수사 과정을 주목하고 있는 다수의 시청자들은 검찰이 내린 결론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PD수첩> 보도로 인해 광우병의 위험성과 정부가 미국과 협상한 수입조건이 불공정하고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 처지에서 <PD수첩>과 같이 소신 있고 외압과 협박에 굴하지 않는 탐사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PD수첩>이 겪고 있는 시련이 오직 <PD수첩>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PD수첩>이 권력 앞에 쓰러진다면 다른 언론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정부 관련 보도에 위축되고, 자체검열이라는 굴레를 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언론들이 <PD수첩> 수사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PD수첩>이 그동안 보여준 바른 언론의 모습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이런 염려와 기대에 <PD수첩>이 보답하는 것은 변질되지 않고 앞으로도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가 되어 '시대의 대변인', '가난하고 약한 이웃을 위한 방송', '외압과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 방송'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PD수첩>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이런 시청자들에게 <PD수첩>이 권력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를 바란다. 그동안 보여준 소신과 뚝심으로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앞으로도 공정하고 바른 진실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줄 것을 기대한다.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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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노동자들이 겪고있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알게모르게 지나치는 많은 문화유산에 대한 기사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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