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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태국, 아프리카 사람 조금, 중국사람 많아요. 중국 여자 두 명 많이 울어요."

매주 한국어교실에 참여하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순자씨가 같은 처지의 결혼이주여성에게 지난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있었습니다. 순자씨는 멀리 서울 송파구에서 용인까지 버스를 타고 한국어를 배우러 오고 있는데, 연락 없이 빠지는 법이 한 번도 없을 만큼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런 순자씨가 지난주에 아무런 연락 없이 결석을 하여 궁금해 하던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봤습니다.

순자씨는 결혼으로 한국에 온 지 열 달이 조금 넘습니다. 순자라는 이름은 시어머니가 지어주셨는데, 원래 이름인 느엉은 한국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 순자씨가 버스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용인까지 오는 이유는 한국어교실 선생님이 베트남어를 잘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베트남에서 2년 동안 한국해외봉사단원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던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주 일요일에 순자씨는 한국어교실에 가려고 세 명의 친구와 함께 가락시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 명의 친구들 역시 결혼이주여성으로 한국어교실에 처음 가는 길이었습니다. 간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건장한 체격의 사람들이 친구들에게 외국인등록증을 요구하더니, 친구들을 데리고 봉고차로 데리고 갔습니다.

순간적인 상황이었지만, 당황한 순자씨는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보며 잰걸음으로 버스 정거장을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친구들을 데리고 갔던 사람들이 "아줌마" 하며 불러 세워서 결국 친구들과 함께 봉고차 안에 타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출입국관리소 차량이었습니다.

네 사람을 잡은 출입국 직원들은 '외국인등록증'을 요구했습니다. 세 명의 친구는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하여 곧바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순자씨는 외국인등록증을 갖고 나오지 않아,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한국어교실을 꾸준히 다녔다고 하지만,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 자신이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사실을 전달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순자씨는 생각나는 대로, 자신이 들고 있던 한국어교실 교재를 보이며, "용인에 한국어 공부하러 가요"라고 말했지만, 출입국 직원들은 "아줌마, 거짓말" 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이어 순자씨는 남편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 줄 것을 기대하며, 전화번호를 알려줄 때만 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텔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남편은 마침 바쁜 일이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순자씨는 요즘 사람답지 않게 핸드폰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남편과의 연락이 닿지 않자, 그제야 순자씨는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순자씨는 시어머니가 가락시장에서 야채를 파신다는 사실을 전달하며, 차에서 내려 시어머니에게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전히 출입국 직원들은 순자씨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 가게의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사이에 출입국 직원들은 여기저기를 돌며 사람들을 잡아왔습니다.

단속을 다니며 출입국 직원들은 "아줌마, 아저씨 전화 안 되는데, 결혼한 것 맞아요? 결혼 언제 했어요? 결혼했는데 왜 애기 없어요? 가짜 결혼한 것 아니에요? 잠은 같이 자요?"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순자씨가 안심했던 것은 자신이 결혼이주여성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순자씨와 달리 붙잡혀 온 사람들은 차 안에서 수갑을 차고 있었는데, 남자들은 둘이 한 개의 수갑을 찼다고 했습니다. 순자씨가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풀려날 때쯤엔 자리가 부족해서 남자들은 의자에 앉은 다른 사람의 무릎에 앉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지난 후 순자씨가 풀려날 수 있었던 건, 신원이 확인되어 먼저 풀려났던 친구 중 한 명이 순자씨 시어머니에게서 연락처를 받아줬기 때문이었습니다. 순자씨의 신원을 확인한 출입국 단속반들은 "다음부터는 꼭 외국인등록증 갖고 다니세요"라며, 순자씨를 잡았던 버스 정류장에 다시 데려다 주고,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세요"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한국어수업에 참여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순자씨는 "공부 끝났어요."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순자씨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마냥 웃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순자씨는 "왜 그런 거 묻는지 모르겠어요. 부끄럽지도 않나?" 하며 자신이 위장결혼한 사람 취급받으며 받았던 질문들이 불쾌했음을 드러냈습니다. 순자씨는 일종의 불심검문을 받은 셈인데, 외국인등록증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시간 반 동안 붙잡혀서 불쾌한 질문과 함께 시간을 낭비해야 했던 셈입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에 보면 불심검문과 관련하여 "직무질문을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경찰관서로의 동행요구가 허용되나, 동행의 강요는 허용되지 않으며 피질문자는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일반 경찰보다 끗발이 더 센가 봅니다. 그 끗발 센 출입국이 어딘지 확인해 보고 싶지만, 순자씨가 알리 만무합니다.


#결혼이주여성#한국어교실#출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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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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