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정부가 북한에 대한 강경 흐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웨덴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13일 "나는 이제까지 국제사회에서 한 번도 북한을 나쁘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가능하면 언급을 하지 않든지, 하더라도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라라고 하거나 핵만 포기하면 정말 중국보다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좋은 말만 해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 지원 핵무장 전용 의혹' 발언(7일, 유럽 <유로뉴스> 인터뷰)에 대해서도 "북한의 2차 핵실험이 벌어지고 미사일을 계속 쏘고 하는데 내 인터뷰가 전 유럽에 동시 번역돼 나간다고 하니 (이런 의혹을) 얘기했다"며 "우리가 북한을 도왔는데 역으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의혹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문제라고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 우리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것은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게 하고 회담에 나오게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울타리 밖'에 나왔을 때는 가능한 '집안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조심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말한 '이제까지'의 기준을 13일로 잡는다면, 불과 며칠 전인 <유로뉴스> 인터뷰는 무엇인가.
그는 '대북 지원 핵무장 전용 의혹'뿐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에 대해 각각 "가장 폐쇄된 사회의 지도자", "북한은 완벽하게 폐쇄된, 우리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라고 비판했었다.
설령 '이제까지'의 범주에 같은 유럽 방문 기간인 <유로뉴스> 인터뷰를 넣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CNN 등 미국의 5개 주요 미디어가 생중계한, 지난 6월 16일 워싱턴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전쟁에 대한 미련이 있지만 실행에는 못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전쟁을 원하고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또 '국제사회'에서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그의 국내 발언도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는 점에서 별 차이는 없다.
국내외에서 북한 비판·자극 발언 계속
이 대통령은 올해 3월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을 걱정하는 사회주의라면 그런 사회주의는 안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북한은 이를 자신의 체제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였다. 지난해 11월 미국 방문 중 기자간담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이 궁극 목표"라고 말했다. 당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에 따른 북한 붕괴론이 거론되던 시기였고, 이 대통령의 발언은 '대북 흡수통일'의지를 나타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비판을 '대화에 나오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그 발언수위는 북한을 대화상대로 인정하는 선을 넘어선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이 대통령과 착실히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는 13일 평화문제연구소가 주최한 '2009년 통일교육강좌'에 앞서 배포한 기조연설문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의 대북정책'에 대해 "이러한 사업들의 목표인 북한의 변화가 미흡했고, 국민적 합의과정을 무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국론분열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핵 문제 진전과 무관하게,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은 허구"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남북 경협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 대통령의 '대북 지원 핵무장 전용 의혹'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현 장관은 "정부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지만, 그동안의 대북지원이 핵무기로 전용됐다고 주장하고, 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연동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현 정부는 통일부를 없애려 했고, 지난해 3월 정부 출범 직후 첫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두 선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었다.
현 장관은 또 "개성공단 사업은 정치·군사적 상황에 영향 받지 않고 경제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경분리' 원칙을 공식적으로 무시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첫 통일부 장관인 김하중 전 장관이었다. 그는 현 정부 출범 직후인 3월 19일 개성공단 업주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장이 어렵다"고 말해, 북핵과 남북경협 연계방침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이에 반발해 개성공단에서 남쪽 당국자들의 전원철수를 요구해왔다. 개성공단이 북한만의 잘못으로 현재와 같은 폐쇄위기에 내몰린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현 장관은 이와 함께 "지난 1년 반여에 걸쳐 북한에 여러 차례 대화를 제의해왔다"면서, 그 예로 이 대통령이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5차례에 걸쳐 대화제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 설치 제의'(4월17일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함께 추진할 교류와 협력사업에 대해 남북간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6월 6일 현충일 추념사), "과거 남북 간에 합의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15, 10·4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해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7월 11일 국회 시정연설), "유감스러운 금강산 피격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전면적 대화와 경제 협력에 나서길 기대한다"(8월 15일 광복절 기념사), "그간의 모든 남북 간 합의의 정신을 존중하면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당국의 전면적 대화가 필요하다"(9월 22일, 민주평통 전북지역회의) 등이다.
금강산 피격사건 당일이었던 지난해 7월 11일의 국회 시정연설은 그 진정성을 인정받기도 했으나, 대체적으로 이런 발언들 앞뒤로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메시지가 같이 나오거나, 전혀 사전준비 없이 불쑥 던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상대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 모르나""위협적인 발언 때문에 북한을 도와주고 협상하는 것은 앞으로 없다"(2008년 4월 15일 미국 교포간담회)고 한지 불과 이틀 뒤에 남북연합 초기단계에서나 가능한 '연락사무소 설치' 제의를 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북한에 대한 대화제의는 통지문을 보내는 것인데 이 정부에서 그렇게 한 일이 있느냐"면서 "대북정책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대화하지 않겠다는 신호가 더 많았다"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이제까지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나쁘게 이야기 한 적이 없다"는 이 대통령에 대해서도 "자신의 발언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모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부 쪽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환각증세설까지 나왔다. 국정원 외곽연구소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남성욱 소장은 현인택 장관과 함께 평화문제연구소 강좌에서 출처는 밝히지 않은 채 "프랑스 등 일부 외국 의사들은 조심스럽게 (김 위원장의) 환각 증세설을 제기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김 위원장에 대해 지난해 8월의 뇌졸중 후유증으로 "노여움이 많아지고 화를 잘 내며 부정적인 보고에 참을성이 적어진다는 관측이 있다"고 주장했다.
남 소장이 개인 입장이 아니라 국정원 외곽연구소의 대표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정부와 국정원의 시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가 시행되고, 국민들의 비판여론이 높아지면서 현 정부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곤 한다. "북한이 더 쓸 카드가 없는 게 아니냐"는 것 등이다.
여론조사, 대북정책 변화요구 80% 넘어우리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북한에 대해 보수적이고, 북한 핵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만, 상황이 심각해지면 그 책임을 집권세력에 물어왔다. 긴장이 고조되면 북한을 비판하는 동시에 정부에게 해결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흐름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일과 7일 실시한 '금강산 관광 재개문제와 남북관계'에 대한 여론조사(서울 및 6대 광역시 성인 남녀 507명을 대상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 95%에 신뢰수준 ±4.4%)에 따르면,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좀 더 유연성이 필요하다"(53%), "대북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31.3%) 등 대북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의견이 84.3%였고,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5.7%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