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인간이란 종에 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너무나도 교묘하게 행동한다. 인간은 자연을 투쟁의 대상이자 굴복 시켜야 할 상대로 인식한다. 인간이 이 지구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대하는 대신 지구에 순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생존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질 것이다.-  E.B.화이트

 

교외 시골의 시원한 푸른 들. 한쪽에 벌겋게 타는 '둑'을 본적이 있는가. 농촌 여행자나 살아계신 나이든 농부를 부모나 조부모로 둔 이들이라면 아마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일 것이다. 2005년 처음 전북 고창으로 거처를 구해서 살게 되었을 때 가장 충격적인 기억을 꼽으라면 붉게 물들어 타오르는 논과 밭의 풍경일 것이다.

 

붉게 물든 들판

 

봄이 시작되는 즈음이었는데 나는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죽는 특이한 풀도 다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촌(村)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대학 일학년 때 농활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정체를 파악하고는 더욱 경악했다. 농부가 등에 맨 약통에서 약을 뿜어내는 분무기를 들고 이동한 곳이 바로 다음날, 내가 궁금해 마지않던 충격의 '불타는 둑방'으로 변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였다.

 

그 후로는 둑길 산책은 자제하게 되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해서 안전하지 않았다. 50여 평 되는 앞마당에 풀이 자라고 있는 것을 주변 농부들이 견디지 못해했다. '게으른' 옆집 총각을 위해 옆집 아주머니는 친히 본인의 노동력과 농약비용을 들여가면서 남의 집 마당까지 '풀약'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신 것이다.

 

다음날 나는 호들갑스럽게 누가 이랬느냐며 항의를 하려 했으나 항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고마워할 것까지 없다는 뜻의 말씀을 전해 듣고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후에도 몇 번이나 무성한 풀밭을 보면 답답한 심정인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투약'의 친절을 베풀곤 했다. 이후 작물들을 심고 '관리'를 한 덕택에 사태는 진정시킬 수 있었다.

 

당시보다 5년이나 더 나이 먹은 농촌에서는 이제 '독약'이라고 써 붙여도 땅과 농작물에 뿌리는 '관성'을 버릴 수 없다.

 

아이들이 흐르는 냇물에서 물놀이조차 할 수 없어도, 하천이 오염되어 물고기 한 마리가 살지 못해도, 두루미가 논에서 식사하고 근처 언덕에서 비명횡사하는 모습을 보아도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 '약' 처방에 대한 믿음은 공고해졌고 없으면 농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나마 최근 젊은 농부들은 약의 사용을 줄이고 둑의 풀도 기계를 이용해서 깎지만, 선택성 제초제를 논에 뿌리는 것만큼은 그만두기 힘들다고 속내를 털어 놓는다.

 

농약은 '독'이다

 

인간이 자연을 조종할 수 있다는 기만에서 출발한 살충제와 제초제로 대표되는 '농약'은 20세기를 거치며 많은 문제를 낳았고, 이를 통해 환경문제와 유기농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확대됐다. 하지만, 오늘의 문제는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있다. 분명히 독약이 분명한데 눈에 띄는 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하나, 그리고 어른이면(어른이 아니어도 심부름으로 위장하면) 누구나 구매가능하다는 것이 둘, 산과 들, 물 등 어디에나 뿌리고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셋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예로 담배 포장지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경고문이 들어가 있는 것과 비교해서 그 보다 훨씬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살충제에는 아무런 표시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 이상하다. 급기야 에프킬라로 대표되는 가정용 살충제는 마치 향수라도 되는 것처럼 냄새가 향기롭다느니 하는 광고로 소비자를 기만한다.

 

농약도 마찬가지이다. 분명히 벌레를 죽인다면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 이치이나 이에 대한 영향력이나 효능(?)은 전혀 표기되지 않고 있다. 제초제는 더 독한 것이다(자살을 시도해도 살충제보다 제초제가 확실하고 빠르다는 이야기도 있다). 위험물질에 등급에 맞는 경고문이 큼직한 글씨로 표기가 되어야 하고, 이를 사용하는 이들은 '관리'가 되어야 한다.

 

얼마의 농지에 얼마만큼의 농약을 얼마 동안의 기간에 사용하는지를 알게 하고 남용을 막아야 당연한 것이다. 제초제를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는 농민들은 무덤, 길가, 논둑, 야산, 마당, 잔디밭 등지에 마구 살포하고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우리가 먹는 물 등지에 흘러들어 결국 우리와 아이들의 입속을 타고 몸에 축적된다.

 

또 하나, 농약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잔류성이다. 어디에 뿌려지든지 간에 남아 있게 되며 어떤 것은 수년까지 그대로 농도를 유지한다. 우리가 과일을 깎아 먹기 시작한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물로 아무리 씻어봐야 씻기지 않는 독약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껍질을 깎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식초나 흐르는 물 등이 노하우라고 하지만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그저 마음의 위안이 될 뿐이다. 농약이 그렇게 잘 씻긴다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적어질 수 있고, 이는 다수확을 바라고 피해를 예방하려는 '일반적인 농부'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안전을 증명하는 어떠한 과학적 근거나 실험 자료도 없이 수많은 농약이 농촌에 풀려서 사용되고 있으며, 장소의 제약도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문제로 지적되어야 한다.

 

기존 농업 방식에 개혁이 필요하다

 

법적 규제를 통해 판매와 유통을 제한하고, 정해진 곳에 정해진 양만 뿌리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은 순전히 내 머릿속을 떠돌 뿐이다. '미친놈'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당장 농사로 소득을 내야 생계를 유지하는 늙고 힘없는 농민들이나 방제법과 농약사용법으로 먹고 사는(?) 많은 농촌 지도소 관계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농사를 짓되 최대한 흙을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유지하며 풍부한 미생물과 균류, 지렁이와 곤충들이 어우러지는 곳. 그 곳에서 작물과 그 밖에 잡초라 불리는 식물등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곳만이 미래농업의 비전이라고 하면 지나친 주장인가.

 

4천 년간 이어져온 농업방식을 깡그리 무시하고 외면한 채, 서양에서 들어온 화학비료와 제초를 기본으로 하는 '관행농'을 수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다품종 소규모의 농사가 대규모 단일 품종의 경작방식으로 바뀌게 되면서 필연적인 병과 단일작물에 적합한 곤충의 집단서식이 그 이유일 것이다.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면 지금의 방식의 편리성을 거부하기 힘든 것인가.

 

약제의 해악이 꾸준히 인간 세상에 안 좋은 결과를 낳았고 소비자들의 요구로 좀 더 독성이 약해지고 선택적 효과를  기대하는 합성물이 개발되어 사용 중이다. <침묵의 봄>이 겨냥한 50년 전의 미국은 지금 많이 좋아졌을까? 항공방제로 농업을 유지하는 규모의 농업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렇지 않다고 보인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철지난(?) 위협 속에 그대로 살고 있다.

 

나이든 농부들에게 맡기고 손을 놓을 것인가

 

세대교체가 없는 한 '관행'은 계속될 것이며, 하천과 지하수, 농민과 그 후예들에게 보이지 않는 공격이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중장기적인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을 수 없는 늙은 농부들은 편리함과 굳어진 관습으로 '독약'이 우리 먹을거리와 앞으로의 터전인 농토에 축적하는 것, 지하수와 지표수를 오염시키는 것의 영향력에 대해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비전없는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남들의 눈에 요란스럽지 않게(?) 마무리 했으면 하는 것이니 그들을 설득하거나 논쟁을 통해 현재의 방식을 돌려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상황이 이러하니, 위에 이야기 한 것과 같이 민생을 생각하는 '국회'가 서민의 건강한 미래와 녹색 대한민국의 발판인 건강한 먹을거리와 농토를 위한 법제정에 나서야 한다. 물론 대안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60년 전에 당차게 외치던 '레이첼 카슨' 의 이름으로, 상경하기 짝이 없을 소리 없는 봄의 미래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힘으로 <침묵의 봄>을 막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저, 김은령 옮김, 동욱희 감수/ 에코리브르/


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에코리브르(2011)


#침묵의봄#제초제#살충제#농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