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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정태춘, 박은옥씨가 지난해 12월 2일 저녁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제3회 수다공방 패션쇼 '참신나다'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가수 정태춘, 박은옥씨가 지난해 12월 2일 저녁 서울 중구 신당동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제3회 수다공방 패션쇼 '참신나다'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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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8일자 <경향신문>에 정태춘·박은옥 부부 가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한 면 전체가 그 내용으로 채워졌는데, 제목이 "내 노래는 사회적 발언, 대중과 대화 단절 느껴 접은 것"으로 되어 있어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부끄럽게도 그가 노래를 접은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인터뷰 기사가 실렸을까 매우 궁금해 하며 꼼꼼하게 신문을 읽어나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다 읽고 난 다음 나의 마음은 몹시 괴롭고 아팠다. 그는 5년 넘게 침묵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단 한 마디로 대중들에게 큰 실망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몇 년 전에 평택 대추리 사태와 관련해 서울에서 매일 거리공연을 했는데 대중들이 철저히 무관심했고 자신은 외면당했다고 했다. 당대의 공동선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행동도 없는 대중을 보고 그들을 계속 만나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노래가 사회적 발언이었지만 사회적 기능을 다해 이제는 접었다며,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기도 싫고 싸우고 싶지도, 싸울 열정도 없다고 했다. 그는 변화 속으로 진입하는 세상의 대열에서 자신은 스스로 이탈했다며, 새로운 문명 열차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 신자본주의에 불복종하는 자신의 방식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발언을 읽으며 나의 마음은 몹시 착잡했다. 무엇인지 중요한 것 하나가 속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사라지는 듯 엄청난 공허감에 빠져들었다. 그가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는 했지만 그의 새로운 노래와 사회적 발언이 5년 동안이나 없었다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정태춘, 그는 내가 상고를 졸업하고 첫 사회생활을 하던 1978년에 '시인의 마을'로 가요계에 데뷔했다고 한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 노래를 즐겨들었다. 그 이후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 서울에서 그의 모습을 처음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새만금 사업에 반대하며 문규현 신부와 수경스님이 새만금 현장에서부터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행진했는데, 바로 서울 시청에 도착하는 시간에 그를 그곳에 설치된 무대에서 볼 수가 있었다.

멋있는 두루마기를 입고 그는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나는 나중에 그 노래 제목이 '황토강으로'임을 알았다. 그 노래가 끝난 후 얼마 뒤에 드디어 땀에 전 모습으로 문규현 신부와 수경스님이 도착했다. 얼마나 땡볕에 걷고 걸었는지 온몸이 새까맣게 되었다.

그를 그날 처음으로 보고 노래를 직접 듣고 나서 그의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느 날 집에서 컴퓨터로 그에 대해 검색하다가 나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얼어붙게 만든 노래를 만났다. 그 노래 제목은 바로 '우리들의 죽음'이었다. 세상에 이런 노래가 다 있다니, 그것도 허구가 아니라 진짜로 이 땅에 있었던 사건을 노래로 만든 것이라니······.

그 노래가 나에게 준 충격은 엄청나게 컸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내도, 나이 어린 아들과 딸도 그 노래에 몸서리쳤다. 무섭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이 하늘나라 가면서 부모에게 한 말은 비록 상상해서 지어낸 것이지만 나의 가슴을 몹시 떨리게 만들었다. 그들 가족이 너무 불쌍하고 가여웠다. 나에게 '우리들의 죽음' 그 노래는 이 시대의 아픈 현실을 하나도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최고의 노래였다.

그 노래 못지않게 나를 또 크나큰 충격 속으로 빠뜨린 노래가 있었다. 우연히 듣게 된 '아, 대한민국'이었다.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은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고, 그 현실에 맞서서 저항하는 여러 운동도 알고 있었지만 노래로 직접 들어보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 땅의 아픔을 이것보다 더 잘 표현한 노래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아, 대한민국'은 더하면 더했지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노래는 나를 하나하나 변화시켰다. 이 세상 돌아가는 사회문제에 대해 전보다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기득권 세력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눈길을 주게 만들었다. 비록 물질적으로 넉넉지 못하고 시간도 많지 않지만 내가 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한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의 '우리들의 죽음'을 그동안 몇 번이나 들어봤는지 모른다. 내가 삶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그 노래는 신기하게도 나에게 힘을 주었다. 그런 아픔이 이 땅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 한 사람이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했다. 그의 노래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런 아픔을 없애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불러일으켜주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우리 민중들의 삶은 더 피폐해졌다. 그가 말한 것처럼 대중들은 먹고 살기에 정신이 없어서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전보다 훨씬 덜 갖게 되었다. 그의 아픔의 강도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의 오랜 침묵이 신자유주의, 신자본주의에 불복종하는 방식이라는 것도 수긍한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나는 그의 새 노래가 듣고 싶다. 그의 사회적 발언도 다시 듣고 싶다. 나처럼 그의 노래와 사회적 발언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는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의 예리한 사회적 발언을 들으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와 사명을 깨달을 것이다. 이 시대에 중요한 문제가 진정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비록 그 숫자가 소수라 하더라도 현실을 올바르게 깨달은 그들의 자각은 사회변화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정태춘#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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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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