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승골의 주인공 팔레르모 사진을 내걸고 아르헨티나의 기적같은 승리 소식을 알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 누리집(FIFA.com) 첫 화면 ⓒ 국제축구연맹
축구하기에 정말 나쁜 날씨였다. 바람도 세게 불고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중계 카메라는 자주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렌즈에 빗물이 튀어 그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상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희비가 엇갈리는 명장면들은 또렷하게 느껴졌다.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고 해야 어울릴까?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은 경기 종료 직전 팔레르모의 기적같은 결승골이 터지자 빗물 가득한 잔디 위를 미끄러지며 혼자서 득점 뒤풀이를 펼쳤다. 선수 시절에도 좀처럼 보기 힘든 과격한 행동이었다. 이 때문에 쌀짝 내려간 바지춤을 추어올리는 장면은 팬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이 이끌고 있는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은 우리 시각으로 11일 아침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에스타디오 모누멘탈 안토니오 베스푸치오 리베르티에서 벌어진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 17라운드 페루와의 안방 경기에서 후반전 추가 시간 3분 사이에 한 골씩 주고받으며 명승부를 펼친 끝에 2-1로 이겼다.
목요일 아침 아홉 시, 마지막에 웃을 나라는?
후반전에 나온 세 골은 '반전'이라는 말로는 결코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다. 48분, 오프사이드 함정을 파면서 밀고 올라온 페루의 수비 라인이 뚫렸다. 미드필더 아이마르의 수준 높은 찔러주기가 곤살로 이과인의 발끝에 제대로 전달되었고 마무리까지 잘 이루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1-0의 점수판으로 경기가 끝나는 줄 알았다. 빗줄기와 바람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 시계가 90분에 근접할 무렵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 만한 동점골이 터졌다. 아르헨티나 골문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에르난 렌지포의 이마가 빛난 것. 사실 페루(승점 10, 10위)는 이 경기 결과와 상관 없이 예선 통과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축구장에서 보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선물했다.
이에 아르헨티나 팬들은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승점 3점도 모자란 판에 겨우 1점으로 그친다면 플레이오프 티켓(5위)까지도 가물가물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추가 시간 시계도 2분을 훨씬 지나고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 어지럽게 페루 골문 앞을 오가던 공이 마르틴 팔레르모의 발 앞으로 굴러왔다. 정말로 골잡이만 느끼는 감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팔레르모는 침착하게 공을 밀어넣고 비에 젖은 윗옷을 벗으며 소리질렀다. 아르헨티나가 이겼다.
이로써 벼랑 끝에 내몰릴 뻔했던 아르헨티나(승점 25점)는 월드컵 직행 티켓이 걸려 있는 4위 자리에 올라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예선 리그 마지막 경기가 하나 남아있기 때문에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시각으로 15일 아침 몬테비데오에서 벌어지는 우루과이(현재 5위, 승점 24점)와의 방문 경기는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는 물론 세계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4위 자리를 노리고 있는 팀은 또 있다. 현재 6위 자리에 있는 에콰도르다. 승점이 23점밖에 되지 않지만 목요일 아침 산티아고에서 벌어지는 칠레(3위, 30점으로 본선 진출 확정)와의 방문 경기에서 이길 경우 충분히 희망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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