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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처음 시행된 '행정인턴제', 나는 조금 늦은 7월에 알게 됐다.

학자금대출을 받으며 4년제 대학교를 6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된 나는 졸업식을 치르기도 전에 대출금을 갚아야 했다. 6번의 학자금대출의 대가는 한달에 55만 원 원리금상환이라는 조금은 가혹한 현실로 되돌아왔다.

요즘 흔히 말하는 '스펙쌓기'를 제대로 해놓지 못한 나는 취업이 아닌 알바로 그 현실을 이겨내야 했다. 네일아트 손모델, 물류센터 막노동, 영어학원 사무보조, 빵가게 판매직원...빨리 일을 시작하고 대출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자리를 찾았었다.

하지만 졸업식을 마치고 알바로 자리를 잡아가며 조금씩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점차 내 주변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취업 준비로 다시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고 면접 준비에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친구들까지 모두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이었다.

학자금 상환에 허덕이던 나, 왜 청년인턴이 됐나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2009년 5월 2일 보라매 공원에서 '등록금 인하와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2009년 5월 2일 보라매 공원에서 '등록금 인하와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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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대출금 갚으려고 살고 있는 건가? 한심했다. 이렇게 계속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나의 꿈은 무엇인지 찾고 싶어졌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직업상담사. 대학 다닐 때도 전공공부보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누군가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던 내게 가장 어울리고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 다시 시작이었다. 이제 나 자신을 위한, 내 미래를 위한 하루를 살자.

제법 많은 임금을 받고 9개월째 일하던 빵가게를 그만두고 직업상담사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행정인턴'이었다. 정부기관에서의 근무로 정해진 출퇴근 시간, 주5일제 근무, 4대보험가입, 최저임금보장으로 한달 만근하면 90만 원을 받으며 공부도 할 수 있는, 내겐 좋은 일자리였다(행정인턴은 정부가 직접 예산을 들여 채용하고 청년인턴은 인턴 1명당 최대 1년간 50%의 인건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차이가 있다).

마침 추가채용 모집에 응시하여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전공이 정보통신이라 컴퓨터 활용능력을 필요로 하는 부서에 배치를 받았다. 처음에는 바쁜 업무로 내가 해야 할 업무량도 꽤 있었다. 회의 자료도 작성하고 중요한 데이터입력 작업 등을 수행하면서 나름 보람을 느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7월 중순에 들어 온 나는 8월 중순이 되면서 점차 하는 일이 없었다. 간간히 우편 심부름, 복사, 문서파기, 스캔, 그리고 가끔은 차 심부름까지.

행정인턴, 행정보조, 사무보조... 인턴이 뭘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난 점차 내가 인턴이란 이름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인턴 친구들은 나뿐이 아니었다.

'행정인턴'이라는 인터넷 카페에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힘들어하는 친구,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는 친구, 온갖 심부름에 귀찮은 일만 떠맡는다고 호소하는 친구. 정말 다양한 인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는 인턴을 하면 가산점이 부여된다고 듣고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차별 받고 알게 모르게 무시 받으며, 하는 일 없는 인턴은 가산점을 준다 해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인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이력서에 경력을 써야 좋을지 고민이 된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도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인턴은 단순 사무보조 알바와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덧 계약만료 시기가 다가왔다. 처음 시행될 때 시작한 친구들은 11월 말과 12월 말로 대부분 끝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화두가 된 것은 '실업급여'다.

대부분 6개월 이상 일을 한 친구들로 하는 일 없고 온갖 심부름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힘들었지만 계약만료되면 실업급여로 학원도 다니고 취업준비 제대로 해보겠다며 그런 의지로 계약만료까지 버텨낸 것이다.

나는 생계형 인턴이었다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청년인턴 실업급여 지급 촉구를 위한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청년인턴 실업급여 지급 촉구를 위한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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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카페에 하나의 글이 파장을 일으켰다. '인턴 연장제의를 거절하면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 계약만료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은 하나 둘 동요하기 시작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용지원센터에 물어 본 친구들은 지역마다 '그렇다, 아니다'라는 엇갈리는 대답에 연장제의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친구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중소기업에 '청년인턴'으로 근무했던 친구 중에는 6개월 근무하고 실업급여까지 받았다가 정부 지침으로 다시 반납해야 하는 친구도 생겨났다. 인턴은 6개월 근무했다 하더라도 토요일은 무급휴무이므로 180일에 해당되지 아니하여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단다. '줬다가 뺏는 이런 경우는 뭐지?' 많은 인턴들이 분노했다. 그러나 정작 정부도 누구도 인턴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계약만료 시기에 맞춰 언론에서 인턴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실업급여 문제에 인턴들 다시 청년백수로 리턴... 일명 '생계형 인턴'으로 시작한 나도 절로 느껴졌다. '행정인턴'은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제도, 청년실업대책에 절대 도움되지 않는 제도였다.

계약만료된 친구들은 이제 뭘 해야 될지 고민이라고 했다. 결국 그들은 다시 학원을 다니거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 인턴제도를 통해 취업이 되었다는 친구는 나만 못 본 걸까?

행정인턴제 극찬하는 대통령, 그 의미 알고 있나

올해도 '행정인턴' 제도는 다시 시행된다고 한다. 자기계발 시간을 주기 위해,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인턴을 하지 않았던 친구들을 위해서란다. 근무시간 단축으로 임금도 줄어들어 나 같은 '생계형 인턴'도 되지 못하고 작년 실업급여와 연장문제 등의 확실한 해결도 없이 단순 사무보조 알바를 굳이 왜 계속하는 걸까?

청년실업대책이라. 작년 계약만료 뒤 청년백수로 돌아간 사람들은 안 보이는 건가? 혹은 이젠 인턴이 아니라서 상관이 없다는 건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가야하는 통과의례처럼 '인턴'을 만들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아마 성공했다고 보인다. 이미 기업들은 인턴 채용후 정식채용이 공식처럼 되어 버렸으니.

나는 '인턴', 그것의 의미를 알고 싶다. 이 제도를 연일 극찬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 정부는 그 의미를 알고 있는걸까?

덧붙이는 글 | 청년유니온 http://cafe.daum.net/alabor



#청년인턴#청년실업대책#생계형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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