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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당사자가 상대방으로부터 침해당한 자신의 권리에 대해 법에 호소하는 것일 테다. 그럴 경우 법률에 언제까지 판결을 내려야만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바로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에서다.

 

문제는 우리 법 현실에서 이 같은 기한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대법원 사건들에서 그런 일은 특히 심하다. 내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법 시행 후 5년째 판단을 미루고 있다. 아직도 "법리를 검토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나는 특별법에 기한 교육부 교원소청심사특별위원회가 2005년 12월 13일 나에게 내린 재임용거부처분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렸음에도 학교 측이 말을 듣지 아니하여, 재임용절차를 이행하고 밀린 급여 상당의 손해배상을 하라고 민사소송을 냈다. 이에 앞서 헌법재판소는 2003년 재임용제를 규정한 구 사립학교법 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고, 대법원 역시 뒤늦게 서울대 김민수 교수 사건에서도 처분성과 재임용기대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판례를 변경한 바 있다.

 

또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서 17대 국회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재임용탈락자구제특별법(이하 특별법)을 제정하였다. 이처럼 헌재와 대법원의 판례가 변경되고,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른 개선입법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내리는 판결은 이러한 상황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 

 

즉, 첫째로 대법원 소부 판결은 교수 재임용제와 관련해 기간만료로 당연히 교수 지위가 소멸해 버리고, 재임용거부처분이 무효나 취소되더라도 재임용되지 아니하는 한 교수 지위는 회복되지 아니한다는 태도이다.

 

둘째로는 대법원은 구제특별법에 기하여 재임용재심사를 받아 과거의 재임용거부처분이 취소된 교원에 대하여 어떠한 구제를 판결에 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결론을 내리지 아니하는지, 못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2월 18일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사위 답변을 통해 "5년째 법률 검토 중"이라며 한없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과연 민사소송법에 해당규정은 왜 정해져 있는지 모르겠다. 민사소송법 제199조에서는 '판결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면서 '다만,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는 기록을 받은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고 정해져 있음에도 이는 법 규정일 뿐 사문화 되어 있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법을 지키는 판관들이 그 법을 앞장서 어기고 있는 셈이다. 물론 훈시규정이라고 해석해 놓고 말이다. 과연 그래도 좋을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소부 판결의 불일치와 모순

 

대법원 소부 판결은 교수지위는 기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종료되고 더 이상 교수가 아니게 되므로, 나중에 재임용거부가 무효로 확인되거나 취소되더라도 원고인 교수에게 교수지위확인판결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소부 판결에 앞서 나온 지난 2004년 4월 교수재임용거부처분취소청구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대학교원은 재임용기대권을 가지고 재임용거부통지는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하나의 처분'이며, 그에 대하여 '소청심사와 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부의 판결들이 임용기간이 만료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교원의 신분이 상실된다고 하고 있지만 이에 반하여, 전원합의체는 재임용기대권을 가지고 있으며 교원소청위원회나 교원소청심사특별위원회에 재임용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하는 입장이다.

 

재임용거부가 재량권일탈이나 남용으로 취소되거나 법원의 판결로 무효임이 확인될 경우에는 현재에도 그 지위가 존속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니, 전원합의체와 소부의 판결 사이에는 결과적으로 모순과 불일치가 있는 셈이다.

 

대법원은 그 판례를 이미 변경해 놓고서도 소부판결에서는 여전히 변경이 없었던 듯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셈이어서 같은 대법원 안에서 서로 모순된 태도를 적나라하게 부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대학교수기간임용제의 본질

 

대학교수 재임용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법원과 법관들은 미국대학들의 tenure와 nontenure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학교원 기간임용제를 파악하고, 재임용탈락교원은 미국의 넌테뉴어 교수쯤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기간이 되면 아무런 구제절차가 없이 확정적으로 끝난다는 법리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간임용제로 채용된 대학교원과 미국의 넌테뉴어 교수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법원이 지금껏 잘못 생각해 오는 것처럼 임기제는 더욱 아니다. 일정 임기 동안까지만 한정하여 근무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학교를 그만 둘 생각으로 전임교수가 되는 사람은 대한민국 전역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임면권자나 교수 모두 정년까지 가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전임교원에 대한 재임용제를 굳이 풀어 말하면, '정년까지'라는 것은 하나의 열린 가능성이고 다만 이 가능성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결코 '보장'이 아니다. 따라서 일정한 기간 동안 이룬 업적을 포함하여 '재임용심사통과'라는 조건을 충족 하여야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고 통과하지 못하면 그로써 끝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대학교수 재임용제는 그것을 임기제라고 할 수 없으며 정년보장제라고도 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는 것이다.과거 법원들은 이러한 대학교수 재임용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잘못된 판례를 30년 동안 유지했던 것이다.

 

국공립과 사립간의 불합리한 차별

 

헌법의 교원지위법정주의원칙에 기하여 제정된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은 사립대학교의 교원재임용거부를 포함하는 징계 등을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으로 통일하여 규정함으로써 교수의 신분이 박탈되는 경우에 있어서 국립대학과 사립 대학 간에 아무런 구분을 두지 않고 있다.

 

특히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 제7조에 따라 사립대학교원은 재임용거부처분의 효력을 다툴 수 있고, 이 인용결정 즉 '재임용거부처분취소'를 받으면, 그것은 교원소청위원회의 결정이 가지는 형성력에 의하여 곧장 교원의 지위가 회복되게 되고, 임면권면자로부터 별도의 처분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다.

 

그런데 국공립대학에서 탈락한 교원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재임용거부처분 취소나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당연복직이 되는데, 사립대학의 경우는 재임용거부취소 결정이나 민사소송을 통한 무효확인판결을 받고서도 사학 측이 거부하면 신분회복이 안 된다.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이 헌법상의 교원지위법정주의를 구현하자는 규범이고, 이 법률이 사립 대학교 교원과 국공립대학의 경우를 구분하지 않는 점을 생각 한다면, 근거 없는 차별을 철폐하여 교수지위를 국공립과 사립대의 구분 없이 통일하여 판결하는 것이 법령의 통일적 해석과 적용을 임무로 하는 법원에 주어진 책무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대법원 소부는 전원합의체 판례에 따라야

 

구제특별법은 대학교수에 대한 재임용제가 도입된 때로부터 30년이라는 운용기간을 거치면서 누적된 탈락자를 옥석구분 하여 우수한 교수인력을 재충원하고,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혜적 소급입법이다.

 

그간 사망, 정년도과 등으로 실제로 대학에 복직할 인원도 전국적으로 30~40여명에 불과하다. 특별법에 기한 재임용거부처분취소결정을 받고 행정소송까지 확정된 교수들에게, 거부처분의 무효 확인이나 손해배상은 되지만 교수지위의 회복은 불가하다는 대법원 소부 판결의 법리를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은 '잘못된 과거는 그대로 덮어두고 앞으로만 잘 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재임용에서 부당하게 탈락하였던 교수가 '구제'된다는 것은 과거의 재임용이 잘못된 것이라고 선언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지위가 회복되고 재산적인 손해를 배상 또는 보상받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특별법에 기한 교원소청심사특별위원회의 재임용재심사에서 인용결정을 받아 행정소송판결까지 확정된 사건들에서는 교수지위확인 또는 재임용절차이행 판결을 하여야 마땅하다. 따라서 소부판결은 전원합의체 판례에 맞추어 변경되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Hamburg 대학교에서 법학박사(Dr.iur.)학위 취득, Max-Planck 비교사법연구소 교환교수. 92년 재임용탈락, 2003-2005 전국 재임용탈락교수 400여명을 규합, 17대 국회에서 특별법제정을 주도. 2005. 12. 13. 교원소청심사특별위원회에서 사립대교수로는 최초로 재임용거부처분취소 결정을 받아 행정소송까지 확정되었음, 현재는 민사소송으로 재임용절차이행과 미지급분급여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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