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옥탑방고양이'. ⓒ MBC
지난 2003년 MBC TV를 통해 방영된 <옥탑방 고양이>는, 사회 분위기 탓에 입밖으로 내지 못했던 '동거'라는 금기어를 깼다. 청춘 남녀가 한 방에서 지내는 드라마 속 동거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옥탑방 고양이>발 충격 이후, 8년이 지난 2011년, '동거'는 이제 우리에게 많이 친숙해진 모습이다. MBC TV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연예인들의 가상 동거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고, 케이블에선 <나는펫>(Comedy TV)류의 동거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선 '동거'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있다. 주변에서 20~30대 젊은 동거 커플을 흔히 발견할 수 있고, 우리의 동거 인구가 80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현실에 비춰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동거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이가 적은 것은 바로 이런 동거에 대한 편견이 한몫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언제까지 동거를 쉬쉬하고 있어야 할까. 김상원(27·가명)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결혼했어요>와는 180도 다른 실제 동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상원씨가 동거를 택한 이유
지인 김상원씨는 대학교 4학년 때, 2년간 사귀었던 같은 학교 여자 친구에게 한 가지 특별한 제안을 했다. '각자 자취방에 사는 대신 동거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여자 친구는 놀란 눈치였지만, 상원씨는 동거를 하면 방값을 아낄 수 있다는 등 이유를 들며 그녀를 설득했다.
상원씨의 설명이다.
"당시 우리는 대학생이었어. 같은 대학 캠퍼스에서 자취를 했던 우리는, 연애를 오래하다 보니 각자의 자취방이 있어도 둘 중, 한쪽의 방으로 와서 밤을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 그런 생활이 오래 지속 되다보니 방을 두 개 쓰는 게 낭비라는 생각을 했고 문득, 이럴 바에는 돈도 절약할 겸 동거를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여자 친구에게 함께 살자고 말을 꺼냈어."당시 여자 친구는 한참을 고민했지만, 상원씨의 거듭된 설득에 결국 승낙했다고 한다. 그렇게 4학년 1학기, 두 사람은 각자의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동거를 시작했다.
방값은 비용을 나눠서 냈다. 각자 월세 40만 원씩 냈던 것을 둘이 합치니 부담하는 방 값도 개인당 절반으로 줄었다. 전기비 같은 세세한 부분도 많이 절약됐다. 특히 인터넷 비용도 인터넷 공유기를 같이 쓸 수 있어 비용을 크게 줄였다. 상원씨는 혼자 살 때보다 한 달에 약 15~ 20만 원 정도 절약됐던 것 같다고 했다.
"바깥에서 데이트를 하게 되면, 평균 2~3만 원이 깨지는데 거기다 밥 먹고 카페에 가면 1만 원 정도 더 쓰게 되잖아. 혹여 기분 내려고 호프집을 가면 데이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결국 한 번 데이트 하는데 10만 원 가까이 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었어."동거한 이유? 경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닌데"동거를 한 이유? 사실대로 말하자면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동거를 택한 것은 아냐. 보통 남자라면 성관계 등에 대한 기대감과 여자 친구가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지. 솔직히 나도 그런 마음이 커 동거를 제안했어. 그런데 여자친구가 동거를 택한 이유는 나와는 좀 달랐던 거 같아.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중요시했어."<화성에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이 출간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만큼 남자와 여자는 다른 터.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자는 선택을 했지만 두 사람이 동거를 택한 이유는 달랐다.
상원씨와 여자친구의 '동상이몽' 동거생활의 시작은 비교적 무난했다. 초반에는 어느 드라마 속 커플 부럽지 않게 재밌는 일들이 많았다고 상원이는 말한다.
"처음에는 정말 재밌었어. 대형마켓에 가서 장도 보고 반찬도 같이 만들었어···. 마치, 진짜 부부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 TV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 커플처럼 소소한 이벤트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해먹으면서 즐거운 날들이었지. 이렇게 동거를 하면서 데이트 비용도 많이 줄일 수 있었고. 동거란 게 참 유용하다고 생각했지." 동거를 시작하고 나서, 두 사람은 데이트를 하러 밖으로 나가기보단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덕분에 데이트 비용이 이전의 절반 가까이 줄기도 했다. 과거 연애를 할 때는 외식은 물론, 카페에 들러 돈을 써야했지만, 동거를 하면서 이런 바깥 데이트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상원씨는 그런 환상적인 동거 생활이 계속될 것이라 기대했다고 한다.
"동거를 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특별히 터치하지 않았어. 늦게 들어오는 것도 그러려니 이해했어. 이런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의 동거 생활이 즐겁게 계속될 것이라 믿었는데···."<우리 결혼합시다>와 같은 동거 생활?... "꿈 깨"

▲MBC에서 방영중인 <우리 결혼했어요>. 연예인 스타들의 가상 결혼생활을 보여준다. ⓒ MBC
하지만 현실은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보던 장밋빛 생활이 아니었다. 1년 동안의 동거 생활 중에 일어났던 불편한 사건들은, 상원씨에게 여자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했다.
"무엇보다 인간 관계에 영향을 받았어. 여자 친구의 경우 특히 그랬어. 동거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민감해했어.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란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친구들에게 비밀로 해야 했고 그런 이유로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지 못한 애로사항이 있었어."함께 동거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사건은 계속 줄을 이었다. 한 번은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자취방에 온다고 해서, 발칵 뒤집혔던 적이 있다고 상원씨는 회상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당황했다고···.
"옷이랑 물건, 칫솔이나 밥 수저 전부 캐리어에 꾹꾹 담아 근처 친구 집으로 향했어. 랩탑 컴퓨터를 비롯해, 이불, 베개 등을 전부 모아보니 캐리어 2개 분량이더라구. 집을 나서며 다른 자취하는 친구한테 다른 이유를 들어 신세를 지기로 했었어. 그런데 더 황당했던 것은, 그날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일이 생겨 오지 않은 것이지."결국 상원씨는 헛고생만 한 셈이었다. 그래도 그는 이 정도 일은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다고 했다. 정작 문제는, 여자 친구와 싸우는 날이면 상원씨의 웃음이 싹 가실 상황이 발생했다. 집에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한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
"(처음 동거를 시작할 때) 청소는 일주일 간격으로 번갈아 가면서 하기로 했었어. 하지만 내가, 과제가 밀려 청소를 한동안 미뤘었지. 그런 상황에서 일을 떠맡은 여자 친구가 감정이 상했었나봐."참다 못한 여자친구는 결국 폭발했고 둘은 다퉜다. 정말로 동거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어 짐을 싸고 싶었다는 상원씨. 하지만 당장 나가면 갈 데도 없고 그렇다고 여자친구를 내보낼 수도 없어 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동거 생활이 점차 길어지다 보니 처음의 환상도 많이 깨졌다. 결혼 생활에서 신혼 시기가 지나면 권태기가 찾아올 수 있듯, 동거 생활 역시 마찬가지였단다. 이 시기, 그와 그녀가 집에서 해 먹은 음식이라곤 라면, 김치찌개 같은 간단한 음식뿐이라고 했다. 서로 분담하기로 했던 집안일은 서로 미루게 돼 감정 상하는 일도 잦았다.
"동거를 하다보면, 따로 살 때보다 더 자주 감정이 상해. 짧은 시간 데이트를 할 때는 연인들이 싸울 이유가 없지만 같이 살다보면 의견 차이, 청소부터 설거지까지 갖가지 이유로 감정이 틀어지기 때문이야."그래서일까? 상원씨는 동거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좀 많이 고민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여자 친구의 생얼을 볼 자신이 없다면 동거를 쉽게 선택하지 말라는 말도 들인다. "집에서 꾸미는 여자는 거의 없다"는 상원씨의 말이 남자인 내 귓가에 크게 울렸다.
그래도 상원씨는 동거했을 때가 그립단다상원씨는 1년간의 동거 생활을 대학졸업과 함께 마쳤다. 졸업 후, 여자 친구의 직장이 멀어지면서 같이 살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요즘 바쁜 일정 속에서 주말에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주말 연인이 됐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같이 밖에서 밥 먹고 커피숍도 가. 더 오랜 시간 같이 있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쓰는 예전의 연인으로 돌아갔어. 그럴 때마다 동거 시절, 알뜰살뜰하게 살았던 추억이 생각나. (동거 때처럼) 모텔 가는 비용만 아꼈다면 지금쯤 유럽여행을 다녀오지 않았을까?"그래서일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동거 생활이지만, 지금 상원씨는 동거생활이 많이 그립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알콩달콩 살았던 동거시절은 그에게 달콤한 추억으로 남아있단다.
"동거는 그 사람의 내면과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거울이라고 생각해. 내게도 (동거는)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어. 동거는 정말 사랑하고, 깊이 사귈 수 있는 사람하고 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동거를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해." 상원씨는 인터뷰 말미에 동거 생활을 잘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줬다.
"동거라는 것은 결국 일정기간, 법적인 책임이 없는 부부가 되는 거지. 그렇기에 동거 생활 중에는 만날 봐야 해. 하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 안 만나고 싶을 때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그렇기에 내가 짜증날 때 상대방이 맞춰주고, 상대방이 짜증날 땐 내가 맞춰줘야 해. 동거를 할 땐 이런 배려심이 필요하지."다음에 여자 친구랑 다시 한번 동거를 한다면, 그때는 설거지는 물론 밥도 자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상원씨.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동거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말 사랑한다면, 동거가 꼭 금기시해야 하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