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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초, 대전에서 제주도까지 현장체험학습 인솔 중일 때였다. 일정에 따라 제주도 관광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급별로 버스 한 대가 배정되어 이박삼일 동안 같은 운전기사와 이동했다. 인솔 교사인 나는 필요할 때 이런저런 안내 방송도 하면서 운전기사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륙은 한겨울이었으나 제주도는 봄날처럼 따뜻해서 한낮에는 에어컨을 가동하기도 했다. 축복 받은 날씨 속에 버스 안팎에서 아이들의 싱그러운 웃음꽃과 왁자지껄 이야기꽃이 어우러졌다.

 

그러나 단 한 가지가 문제였다. 파리 몇 마리가 잊을 만하면 나타나 왔다갔다하며 운전석 유리창에서 면벽을 하기도 하고, 미끄럼을 타기도 하더니 공중을 부영하며 어지간히 내 시야를 괴롭혔다.

 

가끔은 내 얼굴이나 손등에 앉았다가 순식간에 달아나며 약을 올려서 혐오감에 짜증도 났다. 더구나 두세 마리 파리가 운전석 유리창에 붙어 그들만의 놀이 문화(?)에 젖어 어지간히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했다. 파리가 왔다갔다하며 아무리 괴롭혀도 운전기사님은 단 한 차례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손을 들어 낚아채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안전 운행에만 충실하고 있었다.

 

'어따, 저 파리 녀석들, 우리 기사님 안전운행하는데 자꾸 저러면 안 되지. 기회만 와 봐라, 너희들은 내 손아귀에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관광버스 안에서 가끔 보게 되는 파리채도 없고, 저 놈들을 어떻게 생포할까 고민했다. 그 순간 파리 한 마리가 운전석 뒷자리에 있는 칸막이 윗부분에 살포시 앉아 앞발 두 개를 현란하게 비벼대고 있었다.

 

반들반들 빛나는 알루미늄 위에 또렷하게 앉아 내 시야의 정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파리! 나는 당장 파리 생포 작전에 돌입했다. 어릴 적, 앉아 있는 파리를 손으로 낚아채 생포하는 내기를 해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당시에 나는 손으로 파리 잡는 선수였다. 그렇게 생포한 파리를 방바닥, 마룻바닥에 세차게 내리쳐서 넋을 잃게 만든 후 날개를 뽑아야만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앉아 있는 파리로부터 약 5cm 가량 거리를 두고 낚아채야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은 기본!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녀석의 눈치를 살피고 공기의 파장을 최대한 줄이며 파리 잡기 선수 시절 노련함으로 잽싸게 낚아챘다. 그러면 그렇지! 기분 좋게 생포했다.

 

그런데 이를 어쩐다? 낚아채기는 잘 했지만 처치 곤란이었다. 버스 바닥에 세차게 내려 칠 수도 없고, 손가락을 하나씩 풀어 손아귀에서 녀석을 찾아 날개를 뽑으려했다간 놓칠 수도 있고 불안했다.

 

옳지! 그물망에 빈 플라스틱 생수병이 보였다. 조심조심 손아귀를 옴짝거려 생수병에 파리를 몰아넣었다. 압사도 질식사도 하지 않은 파리가 쌩쌩하게 살아 생수병 안에서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또 한 마리가 옆 의자 모서리에 앉았다. 같은 방식으로 생포에 성공했다. 생수병에 든 두 마리 파리를 보니 제왕이 된 느낌이었다.

 

'짜식들! 우리를 위해 안전운행 하는 기사님을 감히 괴롭혀? 나는 너희들의 저승사자다.'

 

두 마리 파리는 위기 상황인지도 모르는 듯 생수병 안에서도 건방을 떨었다. 그러나 나의 한계였다. 뚜껑으로 꽉 막힌 생수병 안에 산소가 모자랄 것이고, 조금 지나 녀석들이 질식사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나란 인간이 파리 앞에서 이렇게 나약한 인간일 줄이야! 가급적 죽이지 말고 살려줘야지' 하며 상념에 젖어 있을 때 버스가 주자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버스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생수병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생수병에 든 생포한 파리를 방생했다. 파리가 병 속에서 잘 빠져나가지 않아 공중에 대고 생수병을 통통 털어서 파리를 보내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버스 기사님이 내게 물었다.

 

"아니,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 예에~ 버스 안에서 생포한 파리를 살려주고 있습니다."

 

그러자 버스 기사님께서 마치 항변하듯 되받아쳤다.

 

"아이구~ 그 파리 내가 차 안에 키우고 있는 애완 파리인데 왜 잡았습니까!"

"예에??? 애완 파리라고요?"

"아이, 참! 나랑 깊은 정이 든 파리들인데 이젠 잡지 마세요~~"

"????!!!!"

 

관광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남은 파리 몇 마리가 우아하게 곡선을 그리며 버스 안을 휘저었다. 파리들은 운전석 유리창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가끔은 기사님 뺨에도 붙었다 날아갔다. 기사님은 여전히 개의치 않았다. 기사님과 내 눈이 운전석 거울에서 만났다. 우리는 쌩긋 웃었다.

 

'세상에! 파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이런 차이가 있다니!' 나는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차이에 관해 고민했다. 온종일 운전에 시달리며 텅 빈 차 안에서 승객을 기다리는 기사님에게 파리마저 애완 곤충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내 방식과 기준대로 대상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 또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귀찮고 불결한 파리를 애완 곤충으로 수용하기까지 버스 기사님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인내하셨을까?

 

그러나저러나 내가 파리를 죽이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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