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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4.19 민주올레 개회식에서 곽노현 교육감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16일 4.19 민주올레 개회식에서 곽노현 교육감이 발언하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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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1시쯤, 4·19민주올레 체험학습 개회식이 열린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주변. 여러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학생들을 대거 동원한 것은 특정 정치세력의 이념교육 장을 열어준 것이다. …학교를 전교조가 장악하게 만들면서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 반대 기자회견문)

"동원은 무슨 동원이에요? 2학년 8개 반 중에 우리 반 만해도 4명이 신청해서 한 명이 잘렸는데…" (세륜중 2학년 학생)

"아이들 동원하지 않았으니까 많이 오지도 않고 온 아이들도 저렇게 (개회식에 참여하지 않고) 맘대로 놀고 그러는 거지요."(서울시교육청 공보관실 한 장학사)

"어떤 말이 적혀 있나 한번 봐요. (유인물을) 안 받아가. 안 받아."(전교조 반대 유인물을 나눠주는 군복 입은 70대 어르신의 혼잣말)

 4.19 민주올레 행사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4.19 민주올레 행사에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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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선생님' 수업보다 웃찾사 티켓이 더 인기

마로니에공원 들머리에서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라이트코리아 등 6개 보수단체 회원 40여 명이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이들 가운데 30여 명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확성기에서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다음처럼 울려 퍼진다.

"민주올레 행사는 민주, 인권을 빙자한 친북반미 좌편향 이념교육입니다."

비슷한 시각, 기자회견장으로부터 20여 미터 떨어진 마로니에공원 공연장에서는 '민주주의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먼저 가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진행되고 있다. 4·19민주올레 개회식에 참석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서울지역 중고생 300여 명은 모두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번 행사 참여 예정인원은 2000명이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참석해 '체험학습 가이드북'을 받아간 중고생은 900여 명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학교별 2∼3명으로 참여 가능인원을 제한한 데다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이 일제히 '정치동원행사'라고 보도한 뒤 일부 학생이 참석을 포기한 결과다.

곽 교육감이 무대에 섰다. 박수소리와 환호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늘은 놀토가 아니라 갈토(학교 가는 토요일)죠? 현장체험학습에 참여한 여러분들 정말 환영합니다. 오늘은 교육감이 국어, 역사 선생님이 되어 잠깐 공부해볼까 합니다."

곽 교육감은 신동엽이 쓴 4·19 추모시 '산에 언덕에'를 읽어가며 4·19혁명의 참뜻을 설명했다.

"오늘 여러분은 현대사에서 돌이킬 수 없는 민주정신을 심어준 4·19 혁명과 만나는 것입니다."

20여 분 동안 진행한 '곽 선생님'의 수업 분위기는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일부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렸다. 무대에서 내려온 곽 교육감에게 박상주 비서실장은 웃으면서 "집중도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곽 교육감의 '수업'보다 인기를 더 얻은 것은 비보이 공연과 사회를 본 개그맨 손민혁의 웃찾사 무료관람티켓 나눠주기였다.

대회진행을 맡은 민간단체인 '시민주권' 대표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5분간에 걸쳐 4·19와 민주올레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아직 다른 나라가 민주국가를 못 만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러분의 할아버지가 독재를 무너뜨려서 민주정부를 만들었어요. 여러분은 이제 데모 안 해도 됩니다."

이 같은 발언이 나온 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행사장 뒤쪽에서 "야 이놈들아"라고 외치면서 학생들 머리 위로 유인물을 던지기도 했다. 이 유인물에는 "북 3대 세습 독재에 침묵하는 종북 쓰레기들을 쓸어내자"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곽 교육감과 학생들이 솜사탕을 나눠먹으며 4.19 민주올레 걷기대회 행사를 하고 있다.
 곽 교육감과 학생들이 솜사탕을 나눠먹으며 4.19 민주올레 걷기대회 행사를 하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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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서만 10명이 오려고 했는데..."

이날 행사장 주변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와 4월혁명회 등 이번 행사를 후원한 단체들이 펼쳐놓은 4·19 사진전도 함께 열렸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개회식에 참석하는 대신 사진전을 둘러보며 뛰어놀았다.

사진을 보던 대신중학교 한 학생은 "우리 반에서만 10명이 오고 싶어 했는데 5명만 왔다"면서 "신문이 우리보고 동원됐다고 하는 것은 헛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개회식을 마친 중고생들은 이날 5시까지 A, B, C, D의 코스로 나눠 걷기행사에 참여했다.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자리인 외환은행 본점, 이기붕의 집터인 4·19기념관, 4·19 부상자가 치료를 받았던 국립의료원 등이 그곳이다.

곽 교육감은 학생들과 함께 마로니에공원을 출발해 서울대 의대, 탑골공원을 거쳐 광화문광장에서 끝나는 C코스를 돌았다. 일부 학생은 곽 교육감에게 사인을 해 달라고 졸랐고, 사인을 받자 자신이 먹던 분홍색 솜사탕을 떼어주기도 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나눠 준 유인물
 보수단체 회원들이 나눠 준 유인물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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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냅니다.



#민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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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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