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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후에는 서울을 갑니다. 엊그제(23일) 오후에도 서울을 가기 위해 4시쯤 집을 나섰습니다. 잰걸음으로 10분 정도를 걸어 태안버스터미널로 갔지요. 잘 아는 매표소 창구 여직원에게 2천 원을 주며 "서산"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오늘도 서산에 가세요?"

 

창구 여직원이 '원호'라는 글자가 찍힌 승차권과 거스름돈을 내어주며 묻습니다.

 

"사실은 서울 가는 거여."

"그런데 왜…?"

"서산에서 (서울)강남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려구."

"태안에서도 강남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4시 40분에 있어요."

"그건 우등버스잖남."

"우등버스, 좋잖아요?"

"좋긴 허지먼 우등버스는 요금할인이 안 되니께…."

"남부터미널로 가는 일반버스는 안 되남요?"

"서산에서 4시 40분 강남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야만 혀."

 

창구 여직원은 너그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도 내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조금은 창피합니다. 태안에서도 강남터미널로 가는 우등버스가 있는데, 굳이 서산까지 가서 일반버스를 타려는 내 행색이 초라하게 느껴질 것도 같습니다.

 

태안에서는 12시 30분 이후로는 강남터미널로 가는 일반버스가 없습니다. 국가유공자 6급인 나는 일반버스 요금을 30% 할인받을 수 있답니다. 하지만 우등버스는 할인을 해주지 않습니다. 우등버스를 타면 비싼 요금을 물어야 해서 손해이고, 할인을 받지 못해서 손해지요. 이중으로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듭니다.

 

"우등버스는 할인이 안 돼요"

 

언젠가 한번 강남터미널에서 태안으로 오는 버스를 탈 때 무안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우등버스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버스 시간만 숙지한 채, 승차권을 구매하기 위해 1만 원 지폐와 함께 '상이군경회원증'을 창구 안으로 밀어넣었지요.                

 

"태안요. 9시 10분 버스요."

"9시 10분 버스는 우등이에요. 할인이 안 돼요."

 

매표소 창구의 젊은 여직원은 상이군경회원증을 차갑게 밀어버리더군요. 몰강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오기가 나서, 나도 우등버스를 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표시하기라도 하듯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더 꺼내어 우등버스 승차권을 사고 말았습니다. 말 그대로 '우등'을 실감시켜주는 우등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도 기분은 더러웠습니다. 언젠가 서울에서 멋모르고 좌석버스를 탔다가 무안을 당한 일도 떠올랐습니다.

 

좌석버스도 일반 시내버스처럼 무임인 줄 알고 상안군경회원증을 기사에서 내보였더니 기사가 냉담한 표정으로 "좌석버스는 그런 거 없어요"라고 면박을 주듯이 말하더군요. 상이군경회원증을 지갑에 넣고 지폐를 꺼내며 정말 무안한 기분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는 가끔 서울에 가서 시내버스를 탈 때 좌석버스를 기피하곤 했는데, 일반버스를 탈 때마다 정말 괴이한 자괴감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서울에서 좌석버스는 잘 가리곤 했는데, 서울에서 태안으로 내려올 때 그만 우등버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탓에 우등버스 출발 시간을 대며 매표소 창구에 상이군경회원증을 들이밀었다가 무안을 당한 것입니다.

 

7시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에 도착하면 여러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7시 30분 미사를 지냅니다. 내가 지난해 11월 29일 이후 매주 월요일마다 참례하는 '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 거리미사'입니다.

 

버스를 타고 간 날은 미사 후 돌아오는 걸음을 서둘러야 합니다. 국회의사당역에서 8시 51분 열차를 타야 강남터미널에서 9시 20분에 출발하는 서산행 일반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서산행 버스는 9시 50분에도 있는데 9시 50분 버스는 우등버스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등버스를 타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등'이라는 이유로 상이군경에게 할인을 해주지 않는 현실을 확인하는 것은 기분 더러워지는 일이어서 한사코 일반버스를 타려고 애를 씁니다.

 

상이군경은 천덕꾸러기라는 얘기밖에 더 되나

 

여의도 '거리미사'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끝나면 여의도 거리미사도 끝이 날지 모르지만, 특히 4대강 환경파괴 문제가 워낙 심대해서 복원을 기원하는 '생명평화미사'는 이명박 정권 이후에도 계속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내가 월요일 오후마다 서울을 가는 일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차를 가지고 가지 않으면, 굳이 서산까지 가서 일반버스를 타는 일, 또 서울에서 종종걸음을 치고 9시 20분발 서산행 일반버스를 타는 일도 오래 계속되겠지요. 더불어 우등버스를 기피해야 하는 현상, 상이군경은 우등버스를 탈 자격이 없는 현실을 계속적으로 체감해야 하겠지요.

 

이 땅의 서민이라면 누구나 다 어렵게 사는 상황에서 상이군경이라고  좌석버스와 우등버스까지 할인해달라고 떼를 쓰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고 멋쩍기도 합니다만, 국가보훈처 당국에 이런 말은 하고 싶습니다.

 

금전적인 보상이나 지원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금전적인 것보다도 상이군경들의 마음, 심리 문제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요금이 싼 시내버스와 일반버스에만 무임이나 할인이 적용되고, 좌석버스나 우등버스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상이군경들은 천덕꾸러기라는 얘기밖에 더 되겠습니까.

 

명색이 국가유공자요 상이군경인데, 그런 식으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다는 건 생각을 해봐야 할 일일 것 같습니다. 멋모르고 좌석버스를 탔다가 무안을 당하고, 우등버스인 줄 모르고 상이군경회원증을 내밀었다가 면박(?)을 당하는 사례, 그 경험은 나뿐만이 아닐 테니까요. 또 굳이 좌석버스나 우등버스를 기피하고, 고생스럽게 일반버스를 타면서 자괴감을 겪는 경우는 나뿐만이 아닐 테니까요.


#국가유공자#상이군경#버스요금 할인#천주교 월요 시국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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