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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부지방 민가 한국민속촌 안에 자리한 제8호 집은 평안북도 선천군 심천면 인두리 민가를 복원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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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에 소재한 한국민속촌에 들어가서 제8호 집을 찾으면, '무명베틀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북부지방의 민가를 만날 수가 있다. 이 집은 장터로 들어가는 길가에 자리를 하고 있으며, 밖에서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열려진 방안에는 베틀이 놓여있고, 운이 좋으면 방안에서 베를 짜는 모습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제8호집은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민가를 복원한 것으로, 중부지방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ㄱ 자형의 안채와 - 자형의 문간채, 그리고 광채가 튼 ㅁ 자형으로 배치가 되어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 북부지방의 민가에는 마루나, 마루방이 없다는 점이다. 추운지방에서는 방안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방이 넓다는 것도 이 북부지방 민가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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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 북부지방 민가의 대문채는 특이하다. 바람벽이 없고 디딜방아를 놓은 곳과 통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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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채 사랑채는 별도로 구분이 되지 않고 대문에 붙어 세 칸으로 꾸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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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선천군의 심천면의 특이한 사랑채
2월 18일에 돌아본 한국민속촌. 민속촌에 자리하고 있는 50여 채의 가옥을 소개하기 위해 집집마다 세밀하게 돌아보았다. 수도 없이 들린 민속촌이지만, 이번 답사는 남다른 재미를 더해주었다. 우선 한 자리에서 전국의 집마다 갖는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즐겁지만, 각 지방마다의 집의 규모나 특징을 한 눈에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이다.
쉽게 갈 수 없는 지역의 집들로는 평남 안주군 가옥, 경기 개성군 개성읍의 가옥인 11호 집과 23호 집, 그리고 함남 북청군 북청읍의 집인 25호 집과, 평북 선천군의 집인 8호 집 등이다. 이 8호 집은 대문채 곁에 사랑채를 붙이고, 그 안에 ㄱ 자형의 안채를 놓았으며, 그 곳을 막아 광채를 놓아,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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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위방과 안방. 방이 남부 방에 비해 크다. 방안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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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디딜방아를 놓았는데, 벽이 없이 개방이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세 칸으로 된 사랑채가 붙어있다. 사랑채는 대문 쪽에 부엌을 두고, 그 옆에 사랑방과 위방을 놓고 있다. 사랑방의 뒤편으로도 문을 내었으며, 그 문들은 각각 밖으로 통해있다. 외부인이 출입을 할 때는 굳이 안채가 있는 마당을 총하지 않고도, 사랑을 이용할 수 있는 지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안채의 방보다 큰 쓰임새 많은 부엌평북 선천군 심천면 인두리의 민가에서 보이는 안채 또한, 일반적인 중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안채와는 많이 다르다. 이 안채는 서편으로부터 방을 두 개를 드리고, 그 다음에 큰 부엌을 두고 있다. 그리고 꺾인 날개부분에 작은 방인 건넌방 하나를 더 두고 있다. 즉 위방과 안방, 그리고 부엌과 건넌방의 형태로 꾸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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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엌 북부지방 민가의 부엌은 넓다. 많은 가마솥이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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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방과 안방의 앞에는 툇마루를 놓았는데, 이 툇마루는 길에 이어진 중부지방의 튓마루와는 다르다. 꼭 놓여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툇마루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 툇마루는 이동을 할 수 있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벽이 돌출이 되게 큼지막하게 조성을 한 부엌이 있다. 이렇게 부엌을 크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평북 선천군의 북부지방 민가에서 보이는 부엌은 상당히 넓다. 그 이유야 많겠지만 우선 안방과 건넌방의 아궁이가 한 부엌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또 추운 날씨 때문에 더운 물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북부지방에서는, 솥을 많이 걸어놓는 것도 부엌이 넓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아마도 이 넓은 부엌을 이용해 땔감 등도 부엌 안에 쌓아 두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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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채 두 칸의 광채는 사랑채의 끝과 안채의 끝을 연결해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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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의 끝과 안채의 끝 사이에는 두 칸의 광채가 자리한다. 광채가 이렇게 막고 있는 이유는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땅에 있었던 평북 선천군 심천면의 민가. 이러한 한 채의 복원된 집을 보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른 것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북녘에 고향을 둔 많은 사람들이 이 집에 오면, 오래 머물다간다는 설명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