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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비슷한 분위기에 놀라 일본에 처음 입국하면서 우리나라와 너무 비슷한 분위기에 놀랐다. 시차도 없고 사람들의 생김새도 똑같고 날씨도 같았다. 다만 들려오는 언어가 다를 뿐이었다. 그래서 친근한 이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우리나라와 비슷한 분위기에 놀라 일본에 처음 입국하면서 우리나라와 너무 비슷한 분위기에 놀랐다. 시차도 없고 사람들의 생김새도 똑같고 날씨도 같았다. 다만 들려오는 언어가 다를 뿐이었다. 그래서 친근한 이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허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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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부터 7일까지 3박 4일간 나는 아내와 같이 오사카에 다녀왔다. 요즘 들어 해외여행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아내가 5월 중순경 저가 항공사의 항공료 40% 할인공세에 미혹당해 갑자기 계획한 일본 여행이었다.

오사카는 인천공항에서 불과 1시간 30분이면 날아갈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첫날 간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로 들어가는 전철을 타고 가면서부터 나는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일본이 매우 가까운 이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한국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변에는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단지 들려오는 언어가 달라 외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겨우 실감할 뿐이었다.

더욱이 시간대도 같아 시계를 조정할 필요도 없었고 위도 상의 위치도 거의 같아 우리나라와 같은 무더운 초여름 날씨였다. 또 거리나 전철에서 등하교하거나 여행지마다 단체로 수학여행을 온 중고교생들을 만나도 그랬다. 그들이 입고 있는 교복이 한국 학생들의 것과 똑같거나 비슷했다.

일본식 특유의 2층 기와집들로 이뤄진 주택가

첫째 날 언어 외에 또 하나 우리와 차별화된 이국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그것은 일본 특유의 주택문화였다. 나는 간사이 공항에서 난카이 선 전철을 타고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우리가 사는 도시의 풍경과 무엇이 다른지 유심히 관찰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는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고층 아파트가 흔치 않았다. 변두리든 도심의 주택가든 대부분 일본식 2층짜리 기와집으로 가득 찼을 뿐이었다. 아파트가 간혹 눈에 띄었지만 1~2개 동 정도로 우뚝 서 있을 뿐 우리나라처럼 수십 개 동으로 대단지를 이루고 있는 광경은 오사카 시내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의 한옥은 단층인데 비해 일본의 전통 가옥은 2층 구조로 발달해 같은 면적에 집을 지어도 보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인지 지금도 그대로 보존해 사용하거나 그런 식으로 집을 계속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아파트를 선호하기 전 좁고 불편한 구조의 한옥을 버리고 1~2층짜리 평평한 콘크리트 슬라브 지붕의 양옥을 반듯하게 짓는 붐이 일었던 적도 있었다. 지금도 한국의 도시나 농촌에는 양옥이 흔한 편인데 오사카에서는 그런 식의 콘크리트 슬라브 형 주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지막 층의 지붕을 직선형 용마루로 날을 세워 검은 색 기와로 덮은 일본식 2~3층 전통가옥 일색이었다. 물론 중간 층의 돌출된 지붕도 기와로 덮어 나름대로 멋이 있었다. 이렇게 저층의 전통가옥들로 질서정연하게 들어찬 동네를 보면서 자기 것을 아끼고 그대로 살려서 계속 유지해 나가는 일본인들의 자긍심을 엿볼 수 있었다.

불법 주차차량 없는 골목의 주택가 일본도 자동차가 많은 나라지만 불법 주차된 차량을 보기 힘들었다. 차 한 대가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골목에는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표지판이 충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 불법 주차차량 없는 골목의 주택가 일본도 자동차가 많은 나라지만 불법 주차된 차량을 보기 힘들었다. 차 한 대가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골목에는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표지판이 충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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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주차 차량 발견하기 힘들어

그러나 오사카의 주요 도심은 40~50층대의 업무용 빌딩이 숲을 이뤄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했다. 각 건물들마다 독특하게 설계를 해 거대한 예술작품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서로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도 하늘을 찌를 듯 50층이 훨씬 넘는 높이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마천루가 더러 눈에 띄었다. 오사카는 일본의 제2대 도시이지만 우리나라의 서울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선진국의 대도시다운 품위가 느껴졌다.

정작 오사카 시 인구는 260만이다. 그러나 오사카 시를 포함한 오사카 부(府) 광역권 인구는 850만 명, 그 밖에 위성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주변의 고베 시, 교토 부, 나라 현, 효고 현, 와카아먀 현, 시가 현 등을 포함한 간사이(關西)권 전체 인구가 2100만 명으로 한국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2300만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일찍이 철도가 발달해 오사카 시내에만 10여 개 노선의 전철과 지하철이 깔려 있었고 위성도시들까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어서 외국인들이 여행하기가 무척 편리했다.

우리는 첫째 날 저녁 오사카 시 도부츠엔마에 역 부근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식사를 한 뒤 주변의 마을을 산책했다. 먼저 아케이드 지붕이 길게 덮인 재래시장이 눈에 띄어 안으로 들어가 봤다. 그러나 아직 오후 7시도 채 되지 않은 초저녁인데 절반 이상 문을 닫았고, 영업하는 가게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길게 이어진 골목시장을 지나 주택가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주택가의 골목은 넓지 않아도 차량이 한 대 다닐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자전거와 사람 외에는 차량통행 금지구역이었다. 사람과 자전거가 그려진 파란색 표지판이 세워진 골목 안을 한참 걸었는데 놀랍게도 이를 어기는 차량은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주택가 소방도로에도 불법주차한 차량은 한 대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문 앞이나 집 안에 개인 주차장이 없으면 동네의 공동주차장에 대는 것 같았다. 우리처럼 도로의 한쪽 구석에 차를 대는 법이 없었다.

교토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

우리는 둘째 날 아침 일찍 교토로 떠났다. 오사카 시 북부의 우메다 역으로 가서 한큐 선 전철 특급을 탔는데,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통학하는 학생들로 만원이었다. 50분 만에 교토 시의 종점인 가와라마치 역에 내렸다. 역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시영버스 1일 승차권을 샀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며 금각사, 은각사, 청수사 순으로 관광을 했다. 교토 시는 인구가 146만 명의 대도시이지만 1868년까지 일본의 수도로서 도심에 초고층 빌딩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차창 밖을 보니 일정한 블록마다 신사나 절, 유적지나 공원 같은 곳이 눈에 띄어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 같았다.

금각사는 금박을 입힌 3층의 별장 건물이 작은 연못가에 세워져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우거진 수풀과 그 사이 계곡에 흐르는 물과 돌을 잘 조화시켜 만든 일본식 정원이 일품이었다. 은각사도 금각사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은각사를 관광하고 나와 우리는 주변의 동네 속으로 들어가 봤다. 오래 된 옛날 집들이 그대로 보존돼 저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조화를 이뤄 눈길을 끌었다. 물론 옛날 집을 그대로 쓰기에는 공간적으로 좁고 구조적으로 불편한 점도 많을 것이다. 골목도 그랬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도 있었지만 자전거나 사람만이 겨우 지나다닐 만큼 좁은 고샅도 있었다.

우리 같으면 재개발조합을 구성해 시원하게 도로를 뚫고 고층 아파트를 짓든지, 하다못해 다세대 연립주택을 지어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경제적인 가치나 편리하고 넓은 공간보다는 불편하지만 조상들이 물려준 집을 그대로 보존해서 쓸 수 있는 데까지 쓰며 이웃끼리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삶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일본 고대도시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한 교토 시의 주택정책이기도 하겠지만 오사카 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이 오사카 시의 주거문화도 아파트 보다는 2층 높이의 일본식 전통가옥들 위주여서 사람 사는 동네의 모습을 느끼게 했다.

금각사의 금박을 입힌 별장 교토의 명물인 금각사는 가마쿠라 시대에 건설된 귀족의 별장이다. 금각은 지붕을 비늘모양으로 해 제2, 3층 전면에 금박을 한 화려한 건축물이다.
▲ 금각사의 금박을 입힌 별장 교토의 명물인 금각사는 가마쿠라 시대에 건설된 귀족의 별장이다. 금각은 지붕을 비늘모양으로 해 제2, 3층 전면에 금박을 한 화려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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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권 주유패스로 오사카 시내 관광

우리는 셋째 날 오사카 시를 관광했다. 첫째 날 간사이 공항에서 미리 샀던 2000엔짜리 오사카 주유패스 1일권을 갖고 사철 외에는 전철과 지하철을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었다.뿐만 아니라 오사카 시내 주요 관광지도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우리가 그 날 아침 일찍 찾아간 곳은 오사카 성 천수각이었다. 천수각은 500년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구축한 성으로 당시 일본의 어느 가문도 대적할 수 없었던 막강한 그의 권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적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성 주변은 깊이 파서 호수를 만들어 놓았는데, 일부는 물이 차 있기도 하고 메마른 곳은 잡풀로 무성했다. 일본 전국에서 크고 좋은 돌들을 날라다가 지은 성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도요토미의 일대기와 무기들, 전투 장면을 보여주는 미니어처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그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천수각의 전시관에는 조선을 침략해 수많은 조선인들을 살육하거나 일본으로 포로로 사로잡아 왔다고 사실대로 기록해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에 사용했던 온갖 살상무기와 튼튼한 갑옷, 심지어 대포까지 개발해낸 저들의 군사력은 우리 조선보다 훨씬 앞섰을 것이 분명했다. 저렇게 훌륭한 무기와 장비를 들고 쳐들어오는 적들과 맞서 겨우 화살이나 겨눠야 했던 조선 군대로서는 애초부터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천수각을 나온 우리는 오사카 성 안에 있는 니시노마루 정원을 잠깐 들어갔다가 성문 밖 길 건너편에 10층의 최첨단 빌딩으로 지어진 오사카 역사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을 견학한 후 항만지역으로 이동해 덴포잔 대관람차 탑승, 범선형 관광선 산타마리아 승선, 오사카 부 사키시마청사 전망대와 해양박물관 관람 등의 순으로 일정을 진행했다.

오후 4시가 넘어 우리는 항만지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고 천연온천 나니와노유를 찾아갔다. 원래는 숙소와 가까운 덴노지 동물원에 가려고 했으나 입장할 수 있는 오후 4시 30분까지 가기가 힘들어 방향을 바꿨다. 그 밖의 주요 관광지 가운데서도 이같은 시간대나 오후 5시까지 입장을 제한하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선택한 천연온천에서 샤워를 하고 1시간 동안 뜨거운 노천탕에 온 몸을 담그고 나오니 오후 6시였다.

슈퍼마켓에서 잠깐 쇼핑을 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1일권 주유패스로 무료입장할 수 있는 관광지가 30여 군데나 되었지만 낮 동안 가본 곳이 겨우 8군데였다. 무척 피곤했지만 우리는 저녁을 먹고 8시 쯤 다시 밖으로 나갔다. 떠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도시에서 다만 한 군데라도 더 보고 가기로 하고 아직도 유효한 주유패스로 밤 10시까지 입장이 가능한 곳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우메다 역으로 가서 헵 파이브(HEP FIVE) 관람차 탑승, 공중정원전망대 관광으로 셋째 날 여정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그 날 공교롭게도 공중의 높은 곳으로 네 번씩이나 올라가 시내를 조망했다. 낮에는 항만지역에서 덴포잔 대관람차로 112.5m까지 매달려 올라가 오사카 항과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았다. 또 오사카 부 사키시마청사 전망대에도 올라가 252m 높이에서 오사카 시내와 멀리는 오사카 만 맞은 편에 아득하게 펼쳐진 고베 시가지 모습까지 바라보았다. 밤에는 우메다 역 부근에서 빌딩의 꼭대기에 설치한 헵 파이브를 타고 허공 높이 회전하는 동안 오사카 도심의 야경을 굽어보며 아찔해 했다. 헵 파이브는 낮에 항만지역에서 탔던 덴포잔 대관람차와 같은 형태의 위락시설이었다. 그 다음 순서로 찾아간 공중정원 전망대도 마찬가지였다. 지상 40층, 높이 170m의 쌍둥이 빌딩의 옥상을 연결해 만든 공중정원 전망대에 올라 사방으로 펼쳐진 오사카 도심의 화려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오사카는 매우 현대적인 도시로서 첨단기술을 통해 개발된 위락시설이 많다는 점도 하나의 특징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난공불락 요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한 오사카 성의 천수각을 배경으로 아내와 함께 기념촬영했다. 오사카 성 주변은 적이 침입하지 못 하도록 호수를 만들어 큰 바위돌로 성을 쌓았다. 도요토미는 일본에서는 영웅이지만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흉이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난공불락 요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한 오사카 성의 천수각을 배경으로 아내와 함께 기념촬영했다. 오사카 성 주변은 적이 침입하지 못 하도록 호수를 만들어 큰 바위돌로 성을 쌓았다. 도요토미는 일본에서는 영웅이지만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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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 인간이 교감하는 나라공원

마지막 넷째 날은 아침 일찍 짐을 챙겨서 들고 나와 호텔 프런트에 맡겼다. 호텔에서 덴노지 역까지 10분 가량 걸어갔는데, 나라 시로 가는 쾌속열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숙소 바로 앞 도부츠엔마에 역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였지만 시외노선 전철인 JR과 환승요금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 날은 주유패스를 구입하지 않아 웬만한 거리는 걸어야만 했다. 나라는 교토보다 더 오래 된 고대도시로 수많은 절들과 궁들이 보존된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날 오후 4시에 간사이 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기로 돼 있어서 많은 곳을 둘러볼 만큼 충분한 여유는 없었다.

오전 7시 45분경 나라 역에 도착한 우리는 이 도시의 대표적인 곳인 나라공원과 동대사만 보기로 하고 천천히 시내를 걸었다. 나라에서는 오전에만 두어 시간 정도 관광하기로 했기 때문에 1일간 유효한 대중교통 승차권이나 여러 군데의 명승고적을 둘러볼 수 있는 할인 티켓을 구입하지 않았다. 나라공원은 나라 역에서 그리 멀지 않아 도보로 20여 분 만에 도착했다. 동대사도 같은 공원 안에 있었다. 한없이 넓은 공원의 잔디밭에는 사슴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어먹거나 쉬면서 주인 노릇을 했다. 사람들을 전혀 겁내지 않고 다가와 먹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공원 곳곳에서 사슴들에게 줄 센베이 과자를 파는 노점도 있었다. 던져주는 과자를 덥석덥석 잘도 받아먹는 사슴을 보면서 관광객들은 무척 즐거워했다.

나라는 교토보다 훨씬 작고 아담한 도시였다. 그러나 1300년 전 일본의 수도였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고 한다. 그 흔적을 더듬으면서 풍부한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고도의 여러 명소를 찬찬히 돌아봐야 마땅하나 우리는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동대사 입구까지 갔다가 나라공원 안을 가로질러 산책한 후 다시 JR 나라 역을 향해 나왔다. 우리가 아침에 출발했던 덴노지 역으로 되돌아오니 이제 겨우 오전 11시가 지나고 있었다. 역 근처의 덴노지 공원 안에 들어가 산책한 후 반대편의 신세카이로 나왔다. 신세카이를 둘러보면서 다코야키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 후 호텔로 돌아와 프런트에 맡긴 짐을 찾았다.

비록 3박4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일본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오사카가 간사이 지방의 중심도시로서 보여주는 활기차고 역동적인 모습은 굳이 수도 도쿄에 가지 않더라도 일본이 경제대국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게 했다. 또한 검소한 국민성과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태도, 사소한 사회적 규범이라도 반드시 지키는 자세나 질서의식 등은 우리가 꼭 배워야 할 훌륭한 교훈이었다.

오! 오사카,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도시여!


#오사카#교토#나라#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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