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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문단을 대표하는 거목이자 <태백산맥> 저자인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제주의소리>에 특별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지난해 12월, 해군기지 강행과 해외자본에 대한 지나친 빗장열기를 지적한 기고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조정래 선생은 이번 특별기고에선 최근 올레길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고와 관련, 숨진 고인의 영전에 명복을 빌며, 제주도를 더 제주답게 만든 '올레길'에 CCTV나 경찰 배치 등의 논의는 지나친 과민반응이라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좀  더 이성적인 인식과 판단으로 이번 사고를 지혜롭게 풀기를 진심으로 당부했습니다. <편집자말> 

 소설가 조정래 선생. 지난해 제주올레 7코스를 걸으며 조정래 선생은 "환경보물섬 제주를 후손들에게 잘 전할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 지난해 제주올레 7코스를 걸으며 조정래 선생은 "환경보물섬 제주를 후손들에게 잘 전할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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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광, 맑은 공기, 이국적 정취, 넉넉한 인심, 이것이 제주도가 사람을 무한히 끌어당기는 4대 요소입니다. 나는 그 네 가지 매력에 이끌려 그동안 제주도를 백여 번은 오갔을 것입니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아들이 대여섯 살 때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손자까지 데리고 다닌 것이 벌써 스물대여섯 번은 넘었으니 우리의 제주도 사랑은 3대에 걸쳐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이런 제주도 사랑이 병적인 편벽증이 아니라는 것은 근년에 들어서 중국 관광객들이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열심히 일한 결실로 중국 사람들은 몇 년 전부터 세계여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동북아의 여행지로 먼저 검토한 것이 일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검토한 결과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이 제주도라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제주도에 관광홍수를 일으켰습니다.

거기다가 제주도를 더 제주도답게 해준 것이 있습니다. 최근에 그 완성을 본 '제주올레'입니다. 나도 그 길 몇 코스를 걸어보았습니다. 끝없이 먼 지평선, 그 아득한 하늘 끝에서 피어나는 새하얀 구름떼, 검은 암벽에 끝없이 부딪치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 그러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오름의 그 유연한 곡선, 그리고 곧 잡힐 듯 가까운 한라산 봉우리, 노을로 붉게 물들어 타는 하늘과 바다의 숨막히는 아름다움……, 그런 것들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올레길이 주는 휴식이고, 위안이고, 평온이었습니다.

올레길이 트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매스컴에 전해지자마자 제주도는 제2의 관광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관광지로서 제주도를 잊은듯했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삽시간에 제주도로 몰려들었을까요. 그것은 온전히 올레길 때문이었습니다. 매일매일 무한경쟁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몸과 마음이 다 지쳐버린 사람들은 가엾은 자기 자신을 구제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들 앞에 구원자처럼 나타난 것이 제주올레였습니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찌들어버린 사람들은 풍광 좋은 제주도의 품에 깊이 안겨 올레길을 느릿느릿 걸으며 잃어버린 휴식을 찾고, 자연의 포근한 읊조림에서 위안을 얻고, 삭막했던 마음에 새 움이 돋는 평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 무한한 선물에 고마워하며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제주올레에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삶의 효과가 퍼지고 퍼져 올레길 만들기가 전국 도처에서 일어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올레 길의 취약구간 폐쇄 운운은 너무 지나친 대응

그 제주도의 새로운 보물 올레길에서 불행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그 슬픈 사태 앞에서 할 말을 잃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빨리 범인을 검거했고, 유기되었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쪼록 법의 엄중함으로 범인을 엄단하는 것이 원통한 고인의 원혼을 위로하는 길일 것입니다.

그래도 남은 문제가 있습니다. 장차 올레길의 안전보장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 불행한 일은 비 오는 날 길을 가다가 갑자기 벼락을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의 그야말로 '불의의 사고'였습니다. 경찰이 잘못해서 그 불의의 사고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아무 말도 못하는 올레길이 잘못한 것은 더구나 아닙니다.

경찰에서 대책회의를 하는 건 좋습니다만, CCTV 설치다 뭐다 하는 건 너무 과민반응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올레 길의 일부 취약구간을 폐쇄 운운하는 건 너무 지나친 대응이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 기나긴 세월 동안 올레길을 찾아올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들이 오늘의 불행한 일을 교훈 삼는 것은, 여럿이 함께 동무삼아 걷고, 어둡기 전에 숙소에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인의 슬픈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사고 당한 그 자리에 작은 비를 세우고,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는 일입니다. 고통스럽고 쓰라린 역사일수록 오래오래 기억해야 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변함없이 인심 좋은 제주도에서 다시는 그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변함없이 제주도를 찾아가고, 올레길 그 지점에 가서 들꽃이라도 한 송이 놓고 고인의 넋을 위로하겠습니다.

그 느닷없는 슬픔 앞에서 고인의 유가족들은 얼마나 절망스럽고 통절하겠습니까. 삼가 위로를 드리면서 넓은 마음으로 두루 살피시며 어서 고통을 수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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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올레#제주올레#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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