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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지난 8월 대표적 군 의문사 사례인 고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아래 권익위)의 순직권고를 받았음에도 한 달 넘도록 처리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계 법령에 따르면, 권익위가 권고한 내용에 대해 이의가 있을 경우 해당 기관은 30일 이내에 권익위에 그 사유를 서면으로 답변하게 되어 있지만, 국방부는 이도 지키지 않아 규정된 법적 절차까지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익위는 지난 8월 6일 고 김훈 중위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 결정에 따른 순직처리 권고안'을 국방부에 보냈다. 앞서 이 사건에 대해 재조사에 착수했던 권익위는 지난 3월 사망 당시 상황을 재연해 화약 잔류물 실험을 실시한 결과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 관련 기사 : 10명이 당긴 방아쇠...'자살' 결론 뒤집나)

당시 권익위는 "김훈 중위 사망에 관한 각급 법원 판결문, 각 기관의 수사·조사기록,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제출한 이 사망 사고관련 재확인 결과보고를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며 " 쟁점사항 중 논란이 되고 있는 '벙커 내 격투 및 반항흔적', '사망당시 사격자세 및 혈흔', '사망자 화약흔적 검출(전투복, 손)', '발사거리(접사, 근접사)' 등에 대해 순직 권고안의 내용대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사건의 진상이 미궁에 빠진 것은 미흡한 초동 수사로 사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군 당국에 1차적 책임이 있으며, 자살인지 타살인지 규명하기 어렵다면 김훈 중위를 복무 중 숨진 것으로 인정해 순직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권익위의 판단이었다.

권익위 관계자에 따르면 고 김훈 중위는 지난 7월 1일 발령된 전공사상자 처리훈령에 따라 "공무수행 중 또는 공무와 관련된 사고 및 재해로 발생한 사망 또는 상이자"(분류표 중 순직․공상 2- 1항)로 처리하기로 국방부와 잠정 합의를 했지만 최근 국방부의 태도는 돌변했다고 한다.

조사본부 "순직처리는 하겠지만, 사인은 정신질환 자살"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좌측 상단 청바지 차림의 미군 수사관 다리가 보이고 김 중위의 양손에는 화약 잔재를 채취하기 위해 봉투가 끼워져 있다. (유족의 양해를 얻어 김 중위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미군 수사관이 현장에서 촬영한 고 김훈 중위의 시신. 좌측 상단 청바지 차림의 미군 수사관 다리가 보이고 김 중위의 양손에는 화약 잔재를 채취하기 위해 봉투가 끼워져 있다. (유족의 양해를 얻어 김 중위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 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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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수사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 측이 '김훈 중위의 경우 순직처리를 해주기는 하겠지만, 사인은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하겠다'고 통보해왔다는 것. 또한 전문가들에게 사망 당시 김훈 중위의 정신 상태에 대한 자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려면 앞으로 몇 달 더 걸리겠다는 비공식 통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무연관성이 입증되면 군내 자해사망자의 제한적 순직을 인정하고 있는 개정 전공사상자 처리훈령에 따라 순직처리는 해주겠지만, 김 중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틀림없다는 것이 조사본부 측의 태도다.

이 경우 김 중위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폭언 또는 가혹행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자유로운 의지가 배제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로 인하여 사망·상이하였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된 경우"(분류표 중 순직․공상 2-14 ③항)에 해당된다.

고 김 중위 유족 "고인을 두 번 죽이는 폭거"

하지만 김 중위 유족 측은 조사본부의 이 같은 처사는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고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는 지난 14일 기자와 만나 "조사본부의 이러한 방침은 국회와 법원, 군의문사위원회, 권익위 등 4개 국가기관의 판단을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폭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그동안 여러 차례 과학적, 객관적으로 밝혀진 타살 가능성을 배제하고 조사본부가 또다시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몰아간다면 이러한 순직 처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에 김 중위 순직권고안을 낸 권익위 측도 조사본부의 행태에 대해 사뭇 불쾌하다는 분위기다.

권익위 관계자는 "조사본부가 새롭게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 가능성을 들고 나오는 것은 신의 성실을 바탕으로 해야 할 국가기관 사이의 협의를 원천무효로 돌리는 행위"라며 "권고안 이행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권익위법상 권고안 이행 실태를 확인·점검하도록 되어 있어 대통령, 국회, 감사원 등에 자세한 경위를 보고하고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김훈 중위 사건 처리 결과에 따라 지난 2009년 해체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자·타살 여부를 규명할 수 없어 진상 규명 불능 결정한 48건에 대한 순직 권고안도 국방부에 보낼 계획이다.

한편 국방부 관계자는 "접수된 순서대로 재심의를 진행하고 있어 시간이 걸리고 있을 뿐 고의적으로 처리를 늦추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김훈 중위의 경우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에 해당된다는 것도 실무자 개인의 의견일 뿐 조사본부의 공식 입장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훈 중위#군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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