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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지정된 타이중 기차역 100년도 넘은 건물이지만, 여전히 타이중의 랜드마크이자 기차역으로 활용된다.
▲ 문화재로 지정된 타이중 기차역 100년도 넘은 건물이지만, 여전히 타이중의 랜드마크이자 기차역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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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는 어느 도시를 가나 일본 점령기 시절 지어진 건축물이 많다. 1895년, 청나라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며 빼앗긴 후, 1945년 일제 패망 후 가까스로 되찾은 땅이니 타이완은 옹근 반세기 동안 일본의 식민지였다. 우리보다 15년의 질곡의 역사를 더 경험한 셈이다.

타이완의 중심인 총통부와 행정원(정부) 청사와 국립 타이완 박물관, 타이완 최초의 극장인 서문 홍루 등 타이베이의 내로라는 관광명소는 모두 그 시절 세워진 것들이다.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타이완의 건축물 중 열에 아홉은 일본 점령기 때의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건축물만이 아니다. 타이베이의 빌딩 숲 사이 좁은 골목길 어디를 가도 마치 일본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이 들 만큼 그 시절 지어진 일본풍의 소소한 건물들이 가득하다. 당시 총독부가 자리한 타이베이만 그런 건 아니다. 지방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놀라운 건 그 오래된 건물들이 모두가 즐겨 찾는 관광지임과 동시에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풍스러움을 요구하는 박물관과 미술관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의 은행과 상점, 학교, 심지어 첨단 기술이 필요한 기차역 같은 건물조차도 그대로 쓰고 있다.

기차와 고속철도, 지하철 등이 교차하는 타이베이 기차역의 경우, 필요에 의해 내부가 크게 보수되었을지언정 당시 건축물의 뼈대가 온전하고, 타이완 제3의 도시인 타이중의 기차역은 100년도 넘은 중요 문화재이지만 옛 건물 그대로 지금도 수많은 기차와 승객들을 받아내고 있다.

일본 점령기 때 건축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타이완

타이중의 장화상업은행 모습 건물은 물론 내부의 목조 자재까지도 건축 당시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내부는 촬영금지 구역.
▲ 타이중의 장화상업은행 모습 건물은 물론 내부의 목조 자재까지도 건축 당시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내부는 촬영금지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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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 시정부 건물 한때 국민당 정부 청사로 사용되었던, 타이중 시의 중심 건물이다. 현재도 수많은 공무원들이 일하고 있는, 말 그대로 시청사다.
▲ 타이중 시정부 건물 한때 국민당 정부 청사로 사용되었던, 타이중 시의 중심 건물이다. 현재도 수많은 공무원들이 일하고 있는, 말 그대로 시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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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에 있는 장화상업은행의 경우에는 건물뿐 아니라 고객을 맞는 창구의 목조 자재와 전등까지도 당시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일본 점령기의 은행이 미술관으로, 당시의 극장이 상가나 전시관 등으로 용도가 변경된 사례가 더러 있지만 건물은 예전 그대로다.

그런가 하면 당시 일본에 의해 타이완 전역에 철로가 놓이면서 사용된 설비인 선형차고(扇形車庫)조차도 지금껏 사용된다. 독특한 형태로 인해 부러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한 동선과 전망대 등을 갖춰놓았지만, 기술자들이 바삐 오가며 일하는 어엿한 열차 보수 설비다. 당시의 첨단 기술이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고 것이다.

그 중 압권은 단연 타이베이의 총통부와 타이중의 시정부 건물이다. 총통부는 1915년 지어져 일본 점령기 총독부로 사용되던 서양식 건물이다. 지은 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났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화와 지진 등의 온갖 자연재해를 굳건히 견뎌낸 건축물이다.

그곳은 여전히 타이완 최고의 권력자인 총통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는데, 식민지 시절 일본인 총독이 앉던 그 의자에 해방된 나라의 총통이 앉아있다는 사실이 묘한 느낌을 준다. 재미있는 건 이 건물이 우리네 경복궁의 정문을 가리고 섰던 조선 총독부 건물과 같은 시기에 같은 용도와 방식으로 세워졌다는 점이다.

총통부를 참관할 때 인솔자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반드시 묻는 게 하나 있다. 1층 전시실 안에 총통부와 조선 총독부의 모형과 설계도면을 함께 전시해두고 있는데,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왜 한국인들은 튼실하게 지어진 총독부 건물을 허물어냈는지"를 다른 관람객들 앞에서 공공연히 질문하는 것이다.

타이중 시정부 내부에서 바라본 모습 'ㅁ'자 형 건물로 가운데에서 잔디밭 위에 아름드리 야자수가 심어져 있다. 시정부 건물 주위에는 최첨단 빌딩 숲이 에워싸고 있다.
▲ 타이중 시정부 내부에서 바라본 모습 'ㅁ'자 형 건물로 가운데에서 잔디밭 위에 아름드리 야자수가 심어져 있다. 시정부 건물 주위에는 최첨단 빌딩 숲이 에워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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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기차역의 선형 차고 일본 점령기에 만들어진 부채꼴 모양의 기차 설비다. 지금도 기능하며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 장화 기차역의 선형 차고 일본 점령기에 만들어진 부채꼴 모양의 기차 설비다. 지금도 기능하며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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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더듬거리며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괜스레 '왜 멀쩡한 건물에 화풀이를 하느냐'며 농담 섞인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건물 하나 무너뜨린다고 해서 그 기억과 역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며, 차라리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보존하되 그곳에 해방과 독립의 의미를 어떻게 담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타이완 역시 일본 점령기의 쓰라린 역사를 기억하며 잔재 청산을 도모하지만, 외적인 것보다 의식 개혁이 먼저라는 거다.

그러면서 관람객들을 안내한 곳이 바로 총통부 내에 가꿔진 정원이었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조선 총독부와 마찬가지로 총통부도 건물 구조가 위에서 내려다보면 해를 뜻하는 '일(日)'자 형태다. 곧, 점령국 일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건물이 성곽처럼 사방을 가린 그곳에 겨울임에도 초록빛이 완연한 정원이 있다. 빛이 어떻게 들어올까 싶지만, 바닥을 약간 돋운데다 건물 높이도 3층에 불과해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놀라운 건 정원의 생김새다. 잔디 위에 나무와 꽃을 번갈아가며 심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타이완의 상징인 '청천백일(靑天白日)' 문양이다.

말하자면 총통부는 하늘에서 보면 타이완의 국기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일본이 지은 건물이 고작 국기의 '테두리' 역할에 불과한 셈이다. 어찌 보면 식민지 시대 수탈의 역사를 디자인의 힘을 빌어 재치있게 극복한 사례라 할 만하다.

오래될수록 더 가치있게 여겨... "50년 전통 가게 오래된 축에 못껴"

타이중 기차역 광장 한 세기 전의 건물과 최첨단 건물이 광장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고 있다.
▲ 타이중 기차역 광장 한 세기 전의 건물과 최첨단 건물이 광장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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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 기차역 플랫폼 군데군데 보수한 흔적이 많지만, 플랫폼을 덮고 있는 지붕 골격도 100년이 넘은 '골동품'이다.
▲ 타이중 기차역 플랫폼 군데군데 보수한 흔적이 많지만, 플랫폼을 덮고 있는 지붕 골격도 100년이 넘은 '골동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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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의 시정부 건물은 아예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관광지'다. 1911년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 2층짜리에 불과하지만 주변의 그 어떤 고층 빌딩보다 웅장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우아함과 고풍스러움으로 보면 박물관으로 쓰일 법 하건만, 여전히 수많은 공무원들이 바삐 오가며 정신없이 일하는 어엿한 '시청'이다.

이곳은 지난 2002년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대민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보니 여느 곳과는 달리 출입이 자유롭다. 경비병도 여권을 검사하는 곳도 따로 없다. 단체 관광객이 아니라면, 업무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만 다닌다면 사무실 안까지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100년 전 일본인 관료들이 둘러 앉아 회의하던 곳이 여전하고, 나무로 된 출입문도 세월의 더께를 입고 삐걱거릴 정도다. 에어컨과 수세식 변기, 사무실의 컴퓨터 책상과 의자 등 일부 편의시설을 제외하면 당시의 모습 그대로라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돌로 된 계단과 소맷돌은 오가는 사람의 손과 발에 닳고 닳아 반들반들 윤기가 나고, 벽면에 사무실 이름을 매단 명패도 당시의 것은 아닐 테지만 고풍스럽게 나무로 제작돼 있다. 창문 안으로 들여다보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들이 식민지 시절의 일본인 관료로 착각이 들 정도다.

한때 이 건물은 1947년 타이베이에서 '2·28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위대 진압을 목적으로 본토에서 파견된 국민당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말하자면 혼란 속의 타이베이를 대신해 타이중이 타이완의 수도 역할을 했던 때인데, 해방 시기 타이완의 현대사를 한 몸에 품고 있는 유서 깊은 건물인 셈이다.

'2·28 사건'이란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을 접수한 직후 부정부패와 인플레이션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상황에서 1947년 일어난 타이완 시민들의 시위 사건을 말한다. 타이완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되며, 가장 중요한 국가 기념일 중 하나다.

본토에서 급파된 국민당 정부가 시위 군중을 무차별 사살하면서 대규모 폭동으로 번지는데, 사망자가 대략 2만여 명으로 추산되지만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범정부적인 진상규명 노력이 진행 중이다.

일본 점령기에 세워진 타이완 건축물 중에 박제화된 채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 타이완 사람들은 건물을 누가 어떤 이유와 모양으로 지었느냐보다 그저 오래될수록 더 가치 있게 여긴다.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며 그 안에서 일하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기보다 뿌듯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건물에 무슨 상점이라도 있을라치면 입구에 가보면 몇 대째 가업을 이어온 곳이 많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5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 드물지 않을 뿐더러, 타이완 사람들은 '그 정도면 오래된 축에 끼지 못한다'며 너스레를 떨 정도다.

타이중에서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날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타이중 기차역에서 인부 몇몇이 플랫폼 지붕을 손보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낡은 모양새로 보아 웬만하면 통째로 교체할 법도 하건만, 고작 나사 몇 개 조이고 묶는 게 전부였다. 다가가 살짝 물어보니, 웬걸, 이 플랫폼 지붕 골격도 100년이 넘은 거라고 한다.


#타이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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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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