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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몸이야 제철이 가면 죽지만은
그의 몸에 붙은 고운 지분은
겨울의 어느 차디찬 등잔 밑에서 죽어 없어지리라
그러나 고독한 사람의 죽음은 이러하지는 않다

나는 노염으로 사무친 정의 소재를 밝히지 아니하고
운명에 거역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기에 밀려내려간다

등잔은 바다를 보고
살아 있는 듯이 나비가 죽어 누운
무덤 앞에서
나는 나의 할 일을 생각한다

나비의 지분이
그리고 나의 나이가
무서운 인생의 공백을 가르쳐주려 할 때

나비의 지분에
나의 나이가 덮이려 할 때
나비야
나는 긴 숲속을 헤치고
너의 무덤을 다시 찾아오마

물소리 새소리 낯선 바람소리 다시 듣고
모자의 정보다 부부의 의리보다
더욱 뜨거운 너의 입김에
나의 고독한 정신을 녹이면서 우마

오늘이 있듯이 그날이 있는
두 겹 절벽 가운데에서
오늘은 오늘은 담당하지 못하니
너의 가슴 위에서는
나 대신 값없는 낙엽이라도 울어줄 것이다

나비야 나비야 더러운 나비야
네가 죽어서 지분을 남기듯이
내가 죽은 뒤에는
고독의 명맥을 남기지 않으려고
나는 이다지도 주야를 무릅쓰고 애를 쓰고 있단다
(1955. 1. 5)

이 작품은 1955년의 첫 작품입니다. 이 작품 끝에는 뚜렷하게 날짜까지 적혀 있습니다. 1월 5일. 새해 벽두에서 며칠이 지나긴 했지만, 한 해 삶을 계획하고 무언가를 다짐하기에 아직 늦지 않은 시점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이 시에서는 바로 그런 다짐과 결의의 분위기가 아주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 작품이 지어질 즈음 수영은 아내 김현경과 다시 결합합니다. 시인 최하림은 <김수영 평전>에서 그 시기를 1954년 말이나 1955년 초쯤으로 적고 있지요. 이들 부부가 자신들의 새 보금자리로 잡은 곳은 서울 성북동의 북한산 자락이었습니다. 짙은 산그늘이 눈부신 곳이었지요.

그곳에서 수영 부부는 삶의 평화를 되찾습니다. 때맞춰 수영의 어머니를 포함하여 그 가족들까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옮겨왔지요. 수영에게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맛보는 평안한 일상이 펼쳐진 셈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는 아직 그와 같은 일상의 변화가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별거 중이던 아내와의 결합이 이루어지기 직전이었을까요. 1연 5행의 "고독한 사람의 죽음"이나 2연 1행의 "노염으로 사무친 정의 소재" 등이 그런 생각을 뒷받침해줍니다.

그즈음 수영의 머릿속에는 온통 좌절과 절망, 아내를 향한 분노 등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특히 그 전 해(1954년)에 아내 김현경이 이종구의 집요한 압박으로 수영에게 이혼 도장을 받으러 간 일은 그의 내면에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혼을 받아들인 김수영... '저주라도 퍼부었다면'

최근에 나온 김현경 여사의 회고록 <김수영의 연인>(2013, 책읽는오두막)에는 그 상황이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김현경과의 정식 결혼을 원한 이종구는 그녀에게 날이면 날마다 수영의 도장을 받아오라고 종용합니다. 김현경은 그의 말을 매번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도장을 받으러 당시 <주간 태평양>에서 일하던 수영을 찾아갑니다.

수영은 처음에 김현경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방에서 마주앉아 도장을 받으러 왔다고 용건을 말하자 수영은 말없이 표정이 굳어지더니 도장을 넘겨줍니다. 최하림 선생은 <김수영 평전>에서, 김현경 여사가 이혼 문제로 김수영을 찾아왔다는 소문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회고록을 통해서 그 일은 사실임이 드러났습니다. 김현경 여사는 그때 수영이 상스러운 욕설이라도 내뱉으며 저주를 퍼부어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회고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수영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었겠지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거부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처음에 수영은 전자를 받아들였습니다. 김현경 여사는 회고록에서 자신에게 도장을 넘겨준 후 등을 돌리고 돌아가는 수영의 모습을 '처용'에 빗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어느 정도 지난 후여서일까요. 이 시에는 후자의 모습이 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도 죽음을 불사하는 단호한 태도로 말이지요.

화자는 지금 "살아 있는 듯이 죽어 누운/ (필자 주-나비의) 무덤 앞에서/ 나의 할 일을 생각"(3연 2~4행)합니다. 그것은 "너의 무덤을 다시 찾아"(5연 5행)와 "나의 고독한 정신을 녹이면서 우"(6연 4행)는 것입니다. 이는 화자가 자신이 죽은 뒤에 "고독의 명맥을 남기지 않"(8연 4행)기 위해서지요.

이를 위해 화자는 지금 "주야를 무릅쓰고 애를 쓰고 있"(8연 5행)습니다. 그런데 화자가 이토록 "고독의 명백을 남기지 않"으려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수영의 어떤 내면과 관련될까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기 위한 김수영의 '발버둥'

저는 앞의 시평에서 수영이 <더러운 향로>를 쓸 즈음에 분명 설움과 절망의 수렁에서 한 발짝 벗어났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쓰인 시 두 편(1954년에 쓰인 <PLASTER>와 <구슬픈 육체>가 그것입니다. 제목의 'PLASTER'는 '석고'라는 뜻입니다. 작품 속에서는 앙상한 '뼈'의 등가어로 봐도 될 듯합니다)을 보면, 다시 '오욕'과 '설움'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심지어 수영은 <PLASTER>에서 "나의 명예는 부서졌다"(<PLASTER>의 4연 1행)며 '무덤'에서 "나의 앙상한 생명"(<PLASTER>의 4연 5행)이 썩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생활을 떠올리며 자신의 육체를 구슬프다고 말하는 <구슬픈 육체>의 주된 정조도 그런 비감과 비참이었지요.

그런데 해를 넘기면서 수영에게는 또다른 변화가 찾아옵니다. 이 시에서 수영으로 하여금 굳게 다짐하고 결의하도록 만든 그 어떤 것이 말이지요. 그것은 단순히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내 김현경과의 사이에 마련된,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일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요.

무덤은 죽음의 공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덤은 영원한 하강과 추락의 심상을 환기하지요. 그곳에서 수영은 처절하게 몸부림치면서 상승과 비상을 꿈꿉니다. 그런 점에서 그 무덤의 주인이 '나비'라는 사실을 범상히 보아넘겨서는 안 되겠지요.

나비는 연약하지만 그 날갯짓은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 날갯짓은 어떤 이에게 처절하여 애처로움을 자아내겠지만, 다른 이에게는 나풀거리듯 상승하는 자유로움을 환기해줄 수도 있습니다. 그 무엇이 되었든 수영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기 위해 발버둥쳤다는 점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 시로부터 한 달 후쯤(1954년 2월)에 나오는 <긍지의 날>이 이런 생각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수영#<긍지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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