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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내게로 와 '애마'가 된 한 녀석이 있었다. 당시에 지인 한 분이 그동안 타던 차를 판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내가 타던 차(이 녀석도 중고였는데 은사님이 안식년 맞아 폐차하려던 걸 넘겨받은 것, 1990년식 프라이드)가 거의 폐차 수준이라 나는 차를 내게 팔라고 했다. 지인은 중고시장 시세를 따져 내게 그 녀석을 넘겼다. 나는 운 좋게 좋은 애마를 가져올 수 있었다.

녀석 이름은 1998년식 '아토스'. 그동안 달린 킬로미터를 보니 7만 킬로미터밖에 안 된다. 전에 타던 차에 비하면 외관도 깨끗하고 금색으로 빛나는 자태는 그 어떤 중형차보다도 근사해 보였다. 그 전에 몰던 프라이드를 과감하게 폐차하고 마치 새 차라도 산 것처럼 설레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애마'는 이 녀석이 됐다.

애마는 덩치가 작았지만 서울의 주차 공간이 그렇듯 '마구간'에 한 번 들어가려면 용을 써야 했다. 한 번은 좁은 공간에 억지로 애마를 구겨 넣다가 반지하 주택 창문을 깼다.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였다. 집주인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이 내게 말했다.

"아니, 이제는 익숙해졌을 만도 한데 아직도 깹니까? 차라리 운전을 그만 하시는 게..."
"그래도 이게 새로 입양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랍니다. 앞으로 잘 좀 봐주세요. 유리는 갈아드릴게요..."

나는 얼굴이 빨개지고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이렇게 말했다.

어두운 밤길 질주한 애마... 미안하다 멍멍아

 전에 타던 차에 비하면 외관도 깨끗하고 금색으로 빛나는 자태는 그 어떤 중형차보다도 근사해 보였다.
 전에 타던 차에 비하면 외관도 깨끗하고 금색으로 빛나는 자태는 그 어떤 중형차보다도 근사해 보였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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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뒤, 지인들과 강촌으로 모꼬지를 가게 됐다. 승용차가 두 대 정도 필요하다고 해 서슴없이 내 애마를 끌고 가겠다고 했다. 밤늦게 동서울터미널에 모여 두 팀으로 나눠 타고 출발. 인원이 많지 않아 내 애마에는 나와 다른 한 명만 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자부하며 차를 몰았다.

내 애마를 타는 사람들은 탔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꼭 내리면 한마디씩 한다. "운전을 너무 터프하게 해." 그날도 밤운전인데 겁도 없이 엑셀을 마구 밟았다. 국도라 차가 없으니 도로는 내 차지. 왕국을 지배한 왕처럼 달렸다. 한참 동안 달리는데 갑자기 '덜컹'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 사람에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

"개가 치인 것 같아. 넌 겁도 없니?"
"먼저 죽어서 길에 있던 거 아니야? 캄캄한데 그게 보여야 말이지. 그럼 내가 로드킬러 가 된 거야?"

섬뜩했다. 거기다 캄캄한 밤인데... 꿈에서라도 죽은 개가 튀어나와 목숨을 살려내라고 으르렁 댈 것만 같았다. 차를 잠시 세우고 묵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미안하다... 멍멍아.

'작은 고추가 맵다!'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애마는 '작은 고추가 맵다고!'라고 말하는 듯,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고 말하는 듯 씩씩하고 당당했다.
 애마는 '작은 고추가 맵다고!'라고 말하는 듯,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고 말하는 듯 씩씩하고 당당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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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나는 '동자동사랑방'이라는 쪽방촌 주민들을 만나는 단체에서 일하게 됐다. 사무실에서는 차가 필요할 때가 많았다. 가난한 비영리 단체에는 차가 없었기 때문. 나는 기꺼이 내 애마를 사무실에 갖다 놨다. 마치 사무실 전용차인 것처럼 단체 이름이 쓰인 스티커까지 붙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0년 5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을 때였다. 지역주민 대다수가 빈민들이므로 '가난한 사람들도 선거에서 차별 받지 않고 직접 선거운동에 뛰어들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우리 단체 대표는 '무소속 빈민후보'라는 슬로건 아래 구의원으로 출마하게 됐다.

나는 그 선거캠프에서 사무장 역할을 맡았다. 주민들로 꾸려진 자원봉사자들에게 밥도 해주고 후보를 태우고 유세장도 갔다. 각종 사무처리 및 선거 벽보를 싣고 다니기도 했다. 애마의 몸에는 우리가 직접 만든 후보 포스터도 붙여졌다. 애마가 선거용 유세차량으로 변신한 순간인 셈이다. 애마를 보니 가슴이 뿌듯했다. 빈민후보의 유세차량으로 안성맞춤이었던 애마는 다른 후보들의 그럴싸한 유세차량 부럽지 않을 만큼 제 역할을 다했다.

애마는 '작은 고추가 맵다고!'라고 말하는 듯,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고 말하는 듯 씩씩하고 당당했다. 선거 기간 내내 빈민후보를 알리고 다녔다. 사람들의 시선은 당연히 애마에게 쏠렸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포스터를 붙인 체 서울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나와 12년을 고생을 한 애마, 그 애마가 지난해 갑자기 아팠다. 비만 오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 밥을 안 줘서 그런 줄 알고 밥도 주고 여기저기를 들여다봤다. 날씨가 좋을 때는 멀쩡하게 시동이 걸렸다. 그런데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감감무소식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데리고 갔다. 엔진 쪽에 문제가 있단다. 하루를 입원시켰다.

다음날 다시 내게 돌아온 애마는 예전처럼 씽씽 잘도 달렸다. 주인을 잘못 만나 여기저기 상처도 나고, 때로는 큰 차에 쥐어 박혀 고생만 한 내 애마 '아토스'는 올해로 15세. 그래도 앞으로 5년은 너끈히 나와 함께 지낼 것이라고 믿는다. 가끔 너무 세게 다뤄 힘들더라도 화내지 말고 견뎌다오. 네 덕분에 나는 가끔 베테랑(?) 드라이버라는 소리도 듣는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공모 응모기사입니다.



#애마#아토스#로드킬#빈민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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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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