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공이산> 표지
 <노공이산> 표지
ⓒ 도모북스

관련사진보기


처음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졸린 눈을 비비면서 만화책을 읽은 것은. 손에 든 만화책은 '명작'이다. 재미와 감동이 있으니 분명 명작일 게다. 한 권에 300여 쪽 분량인 만화책 네 권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가끔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내 손에 들려 있던 만화 <노공이산>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가난했던 노 대통령의 어린 시절과 정치 역정, 인간적인 고뇌 그리고 노사모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정감 있는 그림과 담담한 필체로 표현했다.

<노공이산>은 지난 2012년 7월 2일부터 노무현 재단 누리집에 주 2회씩 연재된 웹툰을 엮어 만든 책이다. 스토리는 MBC 극본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경력이 있는 이건 작가가 썼고, 그림은 고 고우영 작가의 유일한 수제자인 박운음 화백이 그렸다.

노무현 대통령 일대기를 만화로 표현한 것은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던 계층이 서민이었던 만큼, 서민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만화'라는 장르가 선택된 것.

이 책이 전해준 것은 재미와 감동뿐만이 아니다. 놀라움도 담았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사람도 이 만화를 보면 놀라게 될 것이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가 만화의 한 컷 한 컷에 무궁무진하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도대체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모았을까. 혹시 노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이건 작가와 박운음 화백을 서면 인터뷰했다.

정치인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에 방점

 작가. 왼쪽 글 쓴이 이건, 오른 쪽 그린 이 박운음
 작가. 왼쪽 글 쓴이 이건, 오른 쪽 그린 이 박운음
ⓒ 도모북스

관련사진보기


이건 : "개인적 친분은 전혀 없습니다. 얼마 전 봉하마을에 <노공이산> 3·4권 사인회를 하러 갔을 때 권양숙 여사가 어렵게 시간을 내줘 박운음 화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이 처음이자 전부였습니다. 그날 권 여사가 그러더군요.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솔직한 분이라서 숨겨진 이야기가 없는 분'이라고. 저도 그 말씀에 200% 동감했습니다.

자료를 모으는 건 참 힘들었습니다. 이미 공개된 것들을 쓰면 '재탕'이 되니 되도록 피해야 했고, 안 알려져 있으면서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이 오롯이 드러나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했어요. 이미 알려진 이야기라도 전후 맥락을 살려주고, 또 다른 시각으로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자료는 도서·인터넷과 당시 신문 라이브러리 자료·지방신문·논문· 전화통화 등에서 찾았습니다. 포식자처럼 닥치는 대로 섭렵했어요. 제가 완벽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 스타일이라서요.

노무현 재단 사람들은 오히려 제게 '이런 이야기가 있었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노무현 재단 행사에 갔는데, 이병완 이사장님이 다른 분들에게 저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고 말하는 걸 보고 그간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노공이산>은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 노무현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들은 노무현의 정치 역정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이들이 방점을 찍은 것은 '정치인 노무현'보다는 '인간 노무현'이었다.

이건 : "'노무현을 만화로 표현했다'는 말보다는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표현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겁니다.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보다는 그분의 '원칙과 상식' '특권과 반칙'이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려했던 그분의 '진심'을 알리고 싶었던 거지요."

박운음 : "극화는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장르라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표본 캐릭터를 잘 잡아야 합니다. 만화 중 노무현을 상징하는 '노공'은 인간적인 면을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설정했습니다.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정감 있는 캐릭터, 명랑 만화 캐릭터로 잡았기에 그분의 극적인 삶의 이야기를 풍자와 해학으로 유연하게 담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노사모' 활동한 적 없는 작가들, 근데 왜 웹툰을...

 박운음
 박운음
ⓒ 이선종

관련사진보기

그렇다면 작가들이 정치인 노무현보다 인간 노무현에 더 주목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건 :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추모식 때 500만 명이 모였습니다. 노 대통령이 귀향한 후로 봉하마을에 지금까지 500여 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몇 가지나 기억할까요. 저는 아무리 유능한 정치인이라도, 대단한 식견을 가진 인물일지라도, 그 이전에 인간적인 면이 우선한다고 봅니다. 어눌하고 투박할지라도 '진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귀가 열리는 법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누리집이 '사람 사는 세상'이듯이 <노공이산>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정치 이야기가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박운음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간적인 매력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람 냄새가 폴폴 나는 인간적인 분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휴머니즘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참 많습니다. 당연히 작품의 근간을 이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운음 화백 말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간 냄새가 폴폴 나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으로 책 속에 그려져 있다. 작품을 쓰기 위한 '억지 춘향'이 아닌, 작가들이 실제로 그렇게 느꼈기에 그런 모습으로 그려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들에게 '노사모로 활동한 적이 있느냐'고 묻고 당연하다는 듯 '그렇다'라는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두 작가 모두 '노사모' 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노무현에게 그렇게 깊이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건 : "노사모로 활동 한 적은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그냥 '심정적 노사모'였지요. <노공이산>을 시작한 초창기 때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들 중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눈물을 떨구는 분들을 여럿 봤습니다. 덩치도 크고, 괄괄한 사내들이 말입니다. 자신들도 미처 생각지 못한, 막을 수 없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오히려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막상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저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이분들은 저보다 더 절절하게 노 전 대통령을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미친 듯이 공부하고 글 작업을 하다보니, 어느 사이에 저도 모르게 작업을 하다 목이 메이는 일이 잦아졌어요. 제가 다 억울하고, 열통이 터지고, 욕이 나오고, 노 대통령이 한없이 안쓰럽고, 진짜 사내다웠고,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정치인이었구나 하는 깨달음…. 초창기 때 눈물을 보였던 그분들의 마음이 이제는 '이심전심'으로 이해된다고 할까요. <노공이산>을 연재하면서 저도 독자들과 똑같이 웃고, 울고, 배웠습니다."

박운음 : "저는 노사모로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기에 그의 정치적 행보를 쫓으며 응원해왔습니다. 그분이 사람을 대하는 한결같은 모습이 곧 진정성이고 진심입니다. 구태 정치인들과는 정반대로 서민적인 모습과 상식과 원칙을 중시하는 결이 곧은 모습에 매료됐습니다."

"지옥행군 같았던 주 2회 업데이트"

 이건
 이건
ⓒ 이선종

관련사진보기

"일주일에 두 번의 업데이트는 그야말로 지옥행군이었습니다. 가족과 오붓하게 보내는 주말을 근 10여 개월간 반납한 채 숨 가쁘게 연재를 이어왔습니다. 일주일에 마음 편히 쉬는 날이라고는 하루 반나절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대통령을 소재로 다룬 만화라서 고증 하나하나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인 정신이 없었다면 아마 지쳐서 중간에 그만뒀을 겁니다. 항상 지켜보고 격려해주셨던 '노공 팬'들이 있었기에 고비마다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박운음 화백 말이다. 예상했던 대답이다. <노공이산>은 지난해 7월 2일부터 지금까지 매주 두 편씩 연재됐다. 묻지 않아도,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창작의 고통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고통스러운 것은 이건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부담감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노무현 재단 누리집은 민주진영의 본부 같은 곳입니다. 참여적인 시민들도 독자이지만, 진보적인 유명 정치인들도 다 들어와 보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연재한다는 건 엄청난 중압감으로 되돌아오더라고요. 최소한 참여적인 시민들이든 정치인들이든 <노공이산>을 보고 '어, 괜찮네!'라는 소리는 나오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맹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 했어요. 일주일에 그 시기에 맞는 소재를 두 편씩 찾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과거를 다루지만 현실에서 펄펄 뛰는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글쎄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겠지요.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보여줬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윤창중 사태, 노무현 살아있었다면 뭐라 했을까"

 작가
 작가
ⓒ 도모북스

관련사진보기


<노공이산>은 '인간 노무현'에 방점이 찍힌 사람냄새 폴폴 나는 만화지만, 그렇다고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서 소홀하게 다룬 책은 결코 아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정치 철학을 생전 그의 음성으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진보와 보수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명쾌한 정의를 내렸다.

"모든 보수는 우수한 사람, 잘난 사람, 힘센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신자유주의든 구자유주의든 다 덮어 놓고 보수의 핵심은 '성공한 사람이 주도해가니 통째로 맡겨라!'라고 합니다. 진보는 권력도 나누고 지혜도 나누고 평등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버스가 꽉 차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막 뛰어와서 더 타려고 할 때 '비좁으니 그냥 출발하자'고 하면 보수고, '좀 좁더라도 저 사람들 태우자'고 하면 진보인 것입니다."(책 속에서)

재미와 감동이 있고, 수준 높은 정치 철학까지 담겨있으니 <노공이산>은 분명 명작임에 틀림없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요즘 정치에 대한 비판이나 분석이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 그래서 작가 이건에게 '만약 노공이 살아 있다면, 개성공단 폐쇄로 완전히 파탄 난 남북관계, 윤창중 성추행 의혹으로 또다시 불거진 현 정권의 인사 시스템에 대해 어떤 논평을 했을까?'라고 물어봤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갖은 공격을 당하면서 이뤄놓은 남북관계와 참여정부 시절 유난히 엄격했던 인사 시스템, 이것들이 무너져 버린 참담한 현실에 노 대통령은 할 말을 잃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에 대한 논평을 내 본들 보수언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제대로 전달해 줄까요?"

할말을 잃었다. 이른 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과의 처절한 싸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가도 노 전 대통령과 보수언론과의 싸움을 매우 비중있게 다뤘다. 책 속에 '죽이는 언론'이라는 섬뜩한 제목을 뽑아 놓은 걸 보니 이 대목을 쓰면서 많이 흥분한 모양이다.

"노공은 언론과 검찰, 정부 이들이 합작해 놓은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의해 희생됐다. 노공은 말한다. 소비자 주권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분야가 미디어라고. 감시받지 않는 생산자, 감시 받지 않는 권력자, 이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불량식품·흉기가 된 언론은 먹지 않으면 된다. 보지 않으면 된다. 깨어있는 언론 소비자만이 흉기를 빼앗을 수 있다."(책 속에서)

<노공이산>은 지난해 12월 1·2권이 나왔고, 올해 5월에 3·4권이 출판된 따끈따끈한 책이다. 이제 마지막 한 권, 5권만을 남겨두고 있다. <노공이산>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오마이 컴퍼니(ohmycompany)를 통해 네티즌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지금도 펀딩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번 펀딩은 5월 31일까지 진행된다.


노공이산 1

이건 글, 박운음 그림, 도모북스(2012)


#노공이산#노무현재단#이건#박운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