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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에게 '심장에 남는 사람'이다. 그의 활동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묻혀있던 원폭 피해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촉발되었다."

25일 오전 11시, 부산민주공원에서 한국인 원폭2세피해자 고 김형률씨의 8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지난해 <원폭피해자 및 자녀를 위한 특별법 추진 연대회의>가 꾸려지고, 여야 의원들에 의해 3개의 관련법안이 발의되어 다음 주 국회 토론회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올해 추모제의 열기는 한층 뜨거웠다.

 김형률추모사업회 회장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김형률추모사업회 회장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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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을 마치고 고인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소개가 끝난 뒤 추모영상이 흐르자 여기저기서 눈시울이 불거진 얼굴들이 고개를 떨군다. 추모사를 한 김형률추모사업회 회장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김형률씨를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그가 꿈꾸었던 세상,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국가와 공동체로부터 합당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더 힘을 모아야겠다"고 말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민주당 한정애 국회의원은 고인이 "기적같은 삶을 살았다"면서, 그가 생전에 늘 하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이 평화로울 수 있도록 인간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는 삶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또 "국회가 부족해 많이 늦어졌다, 여야가 의지를 가지고 관련법안을 제정하려고 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좋은 분위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족인 부친 김봉대씨도 "19대 국회에서는 원폭2세환우들이 바라는 특별법이 꼭 제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제에는 일본의 피폭2세 나카시마 다케시 반전피폭자회 사무국장을 비롯해, 고 김형률씨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하는 책의 발간을 계획 중인 번역가 아오야기 준이치, 유코씨 부부를 비롯하여 일본의 시민활동가와 피폭2세들도 상당수 참석했다.

 25일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린 원폭2세피해자 고 김형률 8주기 추모제.
 25일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린 원폭2세피해자 고 김형률 8주기 추모제.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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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2세문제, 사회적으로 말살 돼 있다"

나카시마 사무국장은 "일본에는 피폭2세라는 어휘는 존재하지만, 피폭2세의 존재는 인정받지 못하고 피폭2세 문제 자체가 사회적으로 말살되어 있다"면서, 이는 정부가 만든 방사선영향연구소(전신, ABCC)가 원자폭탄 피폭의 유전성과 내부피폭문제도 부인하고 있고, 원폭 투하 직후 7년 동안 일본을 점령했던 미군정이 '원폭의 피해로 죽을 만한 사람은 모두 죽었다. 더 이상의 피해는 없다'고 선언하며 피해를 축소, 은폐하려 한 배경에서 비롯되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비키니,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더 이상 핵으로 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방사능의 피해를 고발하며 피폭2세운동가로서 살았던 고 김형률씨의 삶을 다시 되새기면서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생애와 운동을 소개하는 책을 출판할 계획인 아오야기 준이치씨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의 일본 사회에 김형률의 생애와 활동이 일본 사회에 던져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말했다. 아오야기씨는 부인인 유코씨와 함께 이미 김형률씨가 생전에 남긴 주요한 글을 번역해놓은 상태이고, 추가적인 자료수집과 취재를 하여 책을 완성할 계획이다.

 부산 해운대 출신의 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추모의 인사를 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 출신의 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추모의 인사를 하고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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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형률씨의 부친인 김봉대 한국원폭2세환우회 고문.
 고 김형률씨의 부친인 김봉대 한국원폭2세환우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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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5월 29일 부산의 자택에서 숨을 거둔 김형률씨는 2002년 3월 22일,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히로시마 원폭피해자의 자녀로서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원폭2세 '환우'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원폭2세 피해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하여 국내외에 원폭2세 환우 문제를 알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2세환우를 찾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2003년에는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한국원폭2세환우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정부 차원의 원폭2세환우 실태조사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 결과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서 최초로 원폭피해자 1세와 2세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조사 결과, 국내 원폭피해자는 1세뿐 아니라, 2세 역시 일반인에 비해 사회적으로도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으며 질병 발생 위험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형률씨는 이어 2005년에 공동대책위와 함께 원폭피해자 진상규명과 지원대책이 담긴 특별법 제정 청원서를 제출하고 국회의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내는 등 특별법 제정운동에 온힘을 쏟았으나, 그해 5월 건강이 악화되어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평생을 병마와 싸우면서도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원폭2세환우 인권운동에 헌신했던 그의 활동 덕분에 원폭피해자, 특히 2세환우문제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관심이 암흑과 같았던 한국 사회에 원폭피해 문제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한국원폭2세환우회'(회장 한정순)의 회원은 전국 1300여 명에 달하며, 19대 국회에 피해자 실태조사와 지원에 관한 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또 경상남도에서는 2011년 조례 제정 이후, 올해 첫 도내 1,2,3세 피해자 실태조사를 실시 중이다.


#김형률 8주기#원폭2세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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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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