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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8일 오후 1시 10분 철탑을 내려온 천의봉 조합원이 조합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8월 8일 오후 1시 10분 철탑을 내려온 천의봉 조합원이 조합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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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일,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한 자리에서 맞은 지난 10개월 동안 그들은 혹한도 겪었고 폭염도 겪었다. 그들이 25m 높이의 송전철탑 위에 달랑 천막 한 장으로 하늘을 가리고 두 평 남짓 나무 합판을 땅으로 삼을 때, 하필이면 '사상 최고 혹한', '유래 없는 폭염'이라는 단어들이 붙었다.

"대법원의 판결을 이행하라"는,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요구를 하며 고공농성을 벌인 시간이 이들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의 시기였다.

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천의봉 조합원이 농성 해제를 결정하고 철탑에서 내려오기로 결정한 7일 오후, 수많은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 전화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내일 말씀 드리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철탑을 내려가기로 한 8일, 크레인이 올라오면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을 30분 남겨 둔 낮 12시 30분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는 맥이 풀려 거동조차 힘든 듯 들렸다. 그동안 쌓였던 온갖 피로와 고통이 일순간에 몰려왔던 것이다. '내려가면 몇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조합원들을 어떻게 대할까' 하는 부담과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는 서슬퍼른 체포영장도 한몫 했으리라.

철탑 밑에는 이미 수많은 언론사의 기자들이 카메라 초점을 맞추며 대기중이었다. 철탑에서 내려와 인터뷰는 불가능해 보였다. 철탑을 떠나기 30분 전인 8일 낮 12시 30분 두 조합원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천의봉 조합원과의 일문일답.

- 이제 30분 후면 철탑에서 내려오는데 지금 심정은 어떤가.
"모든 게 적응되려고 하는데 막상 내려간다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한 느낌이다. 걱정하고 기다려 주신 조합원 동지들과 시민들에게 고마운 생각 뿐이다."

- 오늘 기온이 37도를 넘었다. 그동안 지내기가 어떠했나.
"한마디로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모기와 전쟁을 벌였다.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그래도 여름이 낫다'고 하고, 여름이면 '겨울이 낫다'고 한다. 나도 그랬었다. 하지만 철탑 위에서 지내보니 겨울을 두 번 나는 것이 여름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 울산은 말 그대로 2주째 찜통 더위인데,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다.
"겨울은 춥지만 움직일 수 있고 뭘 해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더위는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짜쯩 밖에 나지 않고 괴롭다."

- 철탑에 오른 이후 혼자 계신 노모가 걱정을 많이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려온다는 연락은 드렸나.
"어제 연락 드렸다. 내려가도 경찰에 출두해야 하니까 '일주일 정도 연락이 안 되어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정말 그동안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셨다. 죄스러울 따름이다. 효도할 날이 꼭 올 것이다."

 8일 오후 1시 10분 철탑에서 내려온 최병승 조합원이 인사말을 하고 천의봉 조합원은 앉아서 울먹이고 있다.
 8일 오후 1시 10분 철탑에서 내려온 최병승 조합원이 인사말을 하고 천의봉 조합원은 앉아서 울먹이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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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탑에서 내려간다고 하니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 하시던가.
"정말 고생 많이 했다고, 빨리 보고 싶다고 하셨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더 오래 있었으면 어쩔뻔 했나고 하셨다. 어머니를 빨리 보고 싶다."

- 이제 내려오면 앞으로의 일정이 어떻게 되나
"일단 경찰에 출두해야 한다. 일주일 정도 수감될 각오를 하고 있다. 그후 조합원들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의료진은 입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나오면 그동안 고마웠던 조합원 동지들을 찾아 인사를 나눌 것이다. 철탑에서 내려오는 것이 우리의 요구가 해결되고 불법파견이 끝이 나서 내려오는 게 아니다. 이제 조합원들과 현장에서 다시 싸워야 한다. 다시 시작이라는 각오를 가지고 있다."

최병승 조합원과의 일문일답.

-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 몸은 괜찮나.
"몸보다 마음이 아프다. 밑을 보니 언론이 많이 와 있는데, 이렇게 많은 관심으로 불법파견을 지적하고 정몽구 회장의 잘못을 지적해 줬더라면 마음이 덜 아플 것인데…. 밑에서 고통을 겪는 조합원 동지들이 있어 이날까지 버틸 수 있었다."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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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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