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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그늘-문학과 숨은신>
▲ 책표지 <그늘-문학과 숨은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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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종교는 본래 하나로 출발했다. 모든 종교는 언어, 특히 시를 잉태하여 텍스트를 낳았다."(본문에서)

한 때는 국내 기독교 안에는 왜 지성과 영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작가들이 없을까 생각하며 국내저서를 기피했던 적이 있었다. 드물긴 해도 가끔 좋은 작가를 만날 수 있어 기쁘다. 가뭄에 단비를 만나듯 모내기철에 필요한 곡우를 만나듯 오랜 만에 영성과 지성과 문학성을 함께 겸비한 작가의 저서를 읽게 되어 기쁘다.

김응교 문학에세이 <그늘-문학과 숨은 신>(새물결플러스)은 '언제나 현존하며 언제나 부재하는 숨은 신'에 관한 이야기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숨은 신'을 문학작품 속에서 찾아 추적한 거다.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저자가 청년시절부터 최근까지 쓴 글들 중에 문학과 관련된 것들만 골라 담아 낸 것으로 <복음과 상황> <기독교사상> <문학사상> <살림> 등에 연재되었던 글들이라 한다.

문학작품 속에 '숨은 신'을 저자와 함께 찾아 떠나는 텍스트 여행, 혹은 산책. 즉 텍스트라는 마을로의 여행은 흥미진진하다. 텍스트를 읽고 문학 속에 숨어 있는 종교적 이미지와 상징들을 탐사하면서 중요 작품과 사상, 그속에 숨어있는 신을 만나도록 돕는 친절한 저자의 안내로 '마음과 영혼으로 곰삭여 읽는 마음여행'. 이 여행은 텍스트에 숨겨진 숨은 신을 만나는 시간이다.

"문학과 종교는 본래 하나로 출발했다. 모든 종교는 언어, 특히 시를 잉태하여 텍스트를 낳았다. 나에게 문학과 종교 나아가 심리학과 역사는 내 몸의 눈과 영혼 그리고 마음 씀이나 발바닥 같기에 한 몸을 따로 떼서 생각한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저자의 글을 대하면서 문득 유진 피터슨이 <비유로 말하라>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언어는 모음 하나하나 자음 하나하나까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말씀이 시체처럼 뻣뻣한 명제로 건조되고 방부처리 되어 석의용 표본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종교적인 언어만 남게 된다고 우려했었다.

"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때 사용하는 언어와 주변의 사랑을 대할 때 사용하는 언어 사이에 세워놓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싶다. 결국 모두 같은 언어다.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는 하나님, 그리고 설교 할 때 선포하는 하나님은 지나다가 가볍게 혹은 따로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삶에도 깊이 영원토록 관여하신다."

문학과 종교는 본래 하나로 출발했다고 말하는 저자는 '숨은 신'을 문학작품 속에서 탐사한다. 그가 탐사한 작품들은 상처의 기록이며 증환의 기록이며 증환 속의 숨은 신을 탐구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그르스도의 최후의 유혹>, 엔도 슈사쿠의 <침묵>,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또한 우리 문학사에서는 꼭 읽어야 할 고전들 가운데 윤동주·박두진·박목월·김현승·고정희 등의 시집들과 우리 소설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조성기의 <리하트 하헤렙>, 황석영의 <손님>, 김형수의 <문익환 평전> 등등.

기독교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도 기독교적인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렇다 치고 국내 작가의 책들 가운데서도 문학 속의 숨은 신을 탐사한 저자의 안목이 새롭게 다가온다. 나의 편협한 사고와 책읽기를 새삼 느꼈던 시간이기도 했다. 해서 책을 읽으면서도 여기 언급한 책들의 제목을 메모하느라 바빴다. 아울러 익히 안다고 생각했던 소설과 시에서 성경 말씀 속에서 그 숨은 신은 아이·직업 여성·거지·빈민·장애인·부자도 막장 어둠 가기 직전, 죽음의 그늘진 땅(마태복음4:16)에 살던 존재들에게 다가갔던 예수님처럼, 낮은 자들에게 숨이 있음을 생각하였다. 숨은 신은 빈민과 미물들에게 '소나기를 피할 곳, 더위를 막는 그늘이'(이사야25:4) 되는 존재다.

"태양이 비치지 않는 순간에 나는 태양의 존재를 믿는다. 혼자일 때도 나는 사랑의 존재를 믿는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도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1945년 독일 쾰른의 지하실 벽에서 발견된 낙서)

저자가 말하는 숨은 신은 침묵으로만 일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현존하시면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이다.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절대자의 13년간의 침묵, 욥기 40장1~9절에서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숨은 신을 볼 수 있고 신구약 중간시대인 400년 역시 침묵의 시기였다. 포로귀환의 역사 속에서 함께 하신 숨은 신은 그 이후 침묵하셨다. 마치 애굽에 내려간 일흔 명의 야곱 대가족 얘기가 있은 후 모세가 등장하기까지 약 400년간 성경이 침묵하는 것처럼. 말라기 이후 예수님이 등장하시기전까지 약 400년 등등. 저자가 언급한 성경 속의 인물들에게 숨은 신으로 침묵하셨던 하나님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숨은 신은 낮은 자, 비천한 자, 가난한 자 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비늘이 눈에서 벗겨지는 듯했다. 미미하지만 새로운 인식의 눈을 뜬 것이다. 저자의 책을 통해 성경 곳곳에 '현존하시면서 침묵'하시는 숨어 계신 하나님이 많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고 또한 내 삶이 과연 '말씀'이 녹아 있는 일상 '생활에 밑줄을 긋는' 삶인지 반성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너무나 쉽게 십자가니 보혈이니 글에 남발해 오진 않았는지도 생각했다. 박두진 시인은 "쉽게 십자가니 보혈이니 글에 쓰지 마세나, 그 단어의 아픔만치 살고 그 삶을 글로 시에 쓰세나"라고 했다. 윤동주 시인은 '십자가'란 단어를 그가 쓴 모든 글에서 딱 한 번 썼다는데 체화되지 않은 말만 남발 해 오진 않았는지….

다시금 톨스토이의 <부활>을,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을…, 그 옛날 읽었던 감동적인 책들을 다시 여기서 만나는 기쁨, 읽지 않은 새로운 책을 메모하며 읽을 것을 생각하며 설레며 책을 읽었다.

"문학과 종교는 본래 하나로 출발했다. 모든 종교는 언어, 특히 시를 잉태하여 텍스트를 낳았다. 나에게 문학과 종교 나아가 심리학과 역사는 내 몸의 눈과 영혼 그리고 마음씀이나 발바닥 같기에 한 몸을 따로 데어 생각한 적이 없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 깊은 곳에 내려앉았다.

책을 읽는 것은 허물벗기다. 새로운 눈뜸이며 비늘 벗기다. 타성에서 습관에서 나태에서의 일깨움이다. 변신이다. 새로움이며 혁명이다. 낯선 여행이며 모험이며 성장이다. 해서 독서는 사명이다.

덧붙이는 글 | 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 받음.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 수상.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활동도 시작. 1996년 도쿄외국어 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함.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교수로 있다. 시집 <씨앗/통조림>과 평론집<한국시와사회적 상상력> 외 다수가 있다.



그늘 - 문학과 숨은 신, 김응교 문학에세이 1990-2012

김응교 지음, 새물결플러스(2012)


#숨은신#김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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