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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현의 택시일기 - 달리는 인생> 저자와의 대화가 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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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죄송스럽다"고 했다. 자신이 낸 책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택시운전을 한 지 1년 만에 혼자 그 어려움 속에서 탈출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달리는 인생>(오마이북) '저자와의 대화'에 참석해 속내를 털어놓은 그는 김창현 전 통합진보당 울산시당 위원장이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달리는 인생>은 김 전 위원장이 2012년 여름부터 1년 가까이 택시운전을 하면서 승객들과 나눈 대화와 에피소드를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원래 그의 직업은 정치인이다. 20년 가까이 진보정치 현장에서 뛰어온 김 전 위원장은 과거 울산 동구청장·민주노동당 사무총장까지 지냈다. 지난해 4·11총선 때는 진보정치의 '아성'이라는 울산 북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이후 그는 당직에서 물러나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총선의 실패가 출발점이었다"는 김 전 위원장은 택시노동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해진 임금','수당','연휴'... 택시노동자에게 없는 것"그동안 '노동자들의 삶을 살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땀 흘려 노동해본 적은 없다는 죄책감이 있었어요. 노동을 통해서 새롭게 살아보자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울산에서 공장 취업한다고 해도 누가 저를 취업 시켜주겠습니까. 제 얼굴과 이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데가 별로 없었어요. 이왕 노동할 거면 어렵고 힘든 일을 하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가장 돈 벌이가 안 되고 노동 강도가 센 게 택시노동자였습니다."처음 몇 달 동안은 택시운전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이후 접한 여러 일들을 페이스북에 일기 형식으로 올려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호응이 점점 커지면서 책까지 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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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현의 택시일기 - 달리는 인생> 저자와의 대화가 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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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택시운전 1년 해본 거 가지고 책을 쓰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김 전 위원장은 "그래서 죄송스럽고 여전히 부끄럽다"면서도 "주변 택시노동자 동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 달라'고 권유해 용기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저자와의 대화에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겪은 고충, 승객들과 나눈 대화에서 얻은 점들을 소개했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은 김 전 위원장의 강연이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김 전 위원장에게는 택시운전이 무척 "고된 일"이었다. 하루 반나절 동안 택시에 앉아서 일하다 보면 허리통증과 눈의 피로가 쉽게 찾아왔다. 건강문제뿐이 아니었다. 이외에도 택시노동자에게는 없는 게 많았다.
"택시노동자에게는 정해진 임금이나 수당이 없습니다. 밤과 낮 구분이 없어요. 휴일은 물론 명절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런 사회생활 못했어요. 오로지 달렸습니다. 그러니 택시노동자가 저임금에 혹사당하다 죽는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또 하나의 문제는 '사납금'이었다. 택시회사들은 노동자들에게 매일 '사납금'이라는 일정 금액을 거둬간다. 택시노동자들은 하루 벌이 중 사납금을 내고 남은 돈을 갖는다. 만약 하루 벌이가 내야하는 사납금보다 적으면 본인 자금으로 회사에 돈을 줘야 한다. 그는 매일 사납금 6만1000원을 냈다. 교통신호 위반 단속에 걸리기라도 하면 그날 돈 번의 대부분을 날리게 돼 심장이 내려앉았고, 손님이 잔돈을 안 받아 갈 때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는 "중세봉건제도의 장원유지 방식처럼 택시노동자들은 하루 동안 번 돈을 회사에 바쳐야 하고, 심지어 몸이 아파 하루 일을 안 하더라도 회사에 무조건 사납금을 내야 한다"면서 본인이 겪은 택시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전했다.
"택시운전으로 뭐가 달라졌냐고? 들을 수 있는 자세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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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현의 택시일기 - 달리는 인생' 저자와의 대화가 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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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김 전 위원장은 "몸은 힘들었지만, 배운 게 많았다"며 미소 지었다. 택시노동자의 처우 외에도, 승객들이 전하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생생히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청소년 입시·부부 갈등·아르바이트에 지친 20대 등의 모습과 사연을 직접 마주했고. 나름대로 고민한 해법을 이 책에 그대로 풀어냈다.
정치인이 가져야할 자세도 배웠다. 그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듣게 돼 '진득하게 듣는 자세'를 배웠다"며 "더불어 정치인은 시민들의 애환을 듣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고통을 함께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1년 간의 택시노동자 생활을 마친 김 전 위원장은 현재 장애인과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틈틈이 역사공부를 하며 강연자로 나서기도 한다. 과연 그는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갈까.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놨다.
"언제 정치를 다시 시작할 거냐에 대해서는 아직 계획이 없다. 기자들이 '내년 지방선거에 나올 거냐'고 묻는데, 그건 아니다. 택시운전을 한 이후 뭐가 달라졌을까?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조급하게 뭘 이야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졌다. 느긋하게 허리띠를 푸르고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세가 생겼다. 얼마나 큰 변화일지는 나중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