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마녀사냥>이라는 TV프로그램이 인기다. 마녀사냥은 보통 사람들의 가십거리인 연애 이야기를 신동엽, 성시경, 허지웅 등의 진행자가 맛깔스럽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마녀사냥의 인기는 소위 '19금 코드'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기인한다. 공중파에서 금기시하고 있는 말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녹여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마녀사냥>을 언급한 이유는 소개할 책이 바로 마녀사냥으로 큰 인기를 얻은 허지웅 작가의 소설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이기 때문이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일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허 작가는 서문에서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10쪽)"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 과연 존재할까. 김갑수씨의 사정이 궁금하다.

야동보다 더 적나라한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책 표지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책 표지
ⓒ 아우름

관련사진보기

소설은 개포동 김갑수씨와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허지웅 작가의 대화로 구성돼 있다. 서문을 지나 본격적인 소설의 내용에 들어가면 화들짝 놀란다. 성(性)에 관련된 가감 없는 표현들 때문이다.

"삼천궁녀와 오입질을 하는 의자왕", "너무 말랑거리지도, 밑으로 늘어져 처지지도, 그렇다고 벌컨포처럼 솟아있지도 않은 그녀의 가슴" 등의 적나라한 문장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일반적인 소설이라 생각하며 책을 펼친 독자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수위의 단어들 때문에 보기 민망해질지도 모른다. 허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란 이런 남세스러움을 뜻하는 것일까.

그리고 '인터미션(intermission)'이라는 챕터가 소설 사이마다 나온다. 초반에는 인터미션의 뜬금없는 등장에 의아했지만 어느 순간 작가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어릴 때 했던 성관계, 연인과 헤어졌던 이야기 등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김갑수씨처럼 스스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 작가와 개포동 김갑수씨가 나눈 대화와 허 작가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이야기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불행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분명 사랑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우리가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허 작가는 이 아이러니에 대해 꼬집고자 했을 것이다. 사랑을 하면 막연히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우리지만, 허 작가는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을 통해서 사랑의 환상이 가리고 있는 민낯을 폭로한다. 사랑은 더럽고 추하며, 상처로 인해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말이다.

가끔 깨닫되 대개 까먹는 것

개포동 김갑수씨는 앞서 언급했듯 다사다난한 연애사를 가지고 있다. 허 작가는 이런 김갑수씨에게 만약 과거에 자신이 살았던 다사다난한 삶을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지 묻는다.

되돌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김갑수씨는 되돌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김갑수씨는 "우리는 종종 시간을 돌려 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그 악행과 저열한 일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162쪽)"라고 허 작가에게 되묻는다.

김갑수씨는 "인간의 삶이란 항상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 모순뿐이라면 인간은 그런 삶을 왜 사는 것일까. 김갑수씨는 교회에는 다니지만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갑수씨는 친구에게 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교회를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 친구는 참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으로 "그럼 천국은 어떻게 가(164쪽)"라고 답했다.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를 간다니, 일견 이상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종교가 아니라 사랑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항상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사랑 때문에 온갖 푸념을 내뱉는다. 하지만 우리는 "유전자에 새겨진 관성"처럼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사랑을 찾는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천국에 가기 위해 교회를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에서 정말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것들은 가끔 깨닫되 대개 까먹게 된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문장일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정말 잊지 말아야할 중요한 것들을 가끔 깨닫지만 대개 까먹고 만다. 인간의 삶이 모순이라는 것, 더럽고 추악하고 고통스럽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시 사랑을 찾아 이 세상을 헤매고 다닌다. 아마도 이 망각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포동 김갑수씨와 허지웅 작가가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허지웅 씀 / 아우름 / 2014년 3월 / 12,0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 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지음, 아우름(Aurum)(2014)


#19금#허지웅#마녀사냥#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열심히 읽고 짬짬이 쓰는 김 아무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