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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에 널찍하게 마련한 전망대.
 언덕에 널찍하게 마련한 전망대.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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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김밥을 준비한다. 특별한 날은 아니다. 가끔 그렇듯 근처에 즐길만한 곳을 찾아 나서기로 한 날이다. 평소에는 밖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했지만, 오늘은 김밥을 만들기로 했다. 오랜만에 소풍 기분을 내기에는 김밥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도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가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김밥, 과일, 음료수 등을 차에 싣고 길을 떠난다. 오늘 목적지는 실록스(Seal Rocks)와 와링갓 국립공원(Wallingat National Park). 집을 나서는데 높은 나무(Tallest Tree)가 근처에 있다는 관광 지도를 아내가 보여주며 들려보자고 한다. 우리 둘만의 여행이다. 시간에 쫓길 일도 없다. 생각 따라 형편 따라 움직이면 된다. 여행가들이 단촐하게 떠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키가 큰 나무가 있다는 곳을 찾아 나선다.  

고속도로를 달려 우톤(Wootton)이라는 동네로 들어간다. 잘 포장된 시골길이다. 속도 제한은 시속 100km라고 표시돼 있다. 그러나 커브가 많은 시골 길을 시속 100km로 달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호주 시골을 여행하다 보면 속도 제한에 맞추어 운전하기가 어려운 곳이 많다. 사실, 속도 제한은 시속 100km로 달리라는 것이 아니라 속도 제한 이상으로 달리면 위험하다는 경고일 게다. 천천히 운전하며 풍경을 즐긴다.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못 생긴 검트리(Gum Tree)가 뒤틀려 자라고 있는 빽빽한 시골길이 인상적이다.

키 큰 나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만났다. 좁은 비포장도로다. 들어서려고 하는데 입구에 도로가 폐쇄됐다는 안내판이 있다. 며칠 전에 내린 많은 비에 도로가 유실됐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만사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며 차를 되돌린다.

관광 안내 책자에 소개된 와링갓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관광지로 유명한 마이올 호수(Myall Lake)를 따라 경치 좋은 도로를 운전한다. 바다로 착각할 만큼 큰 호수다. 시드니에서 멀지 않고 경관이 좋기 때문에 숙박시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도로에 들어서니 서너 마리의 말이 한가하게 풀밭을 서성거리고 있다. 넓은 초원에 큼지막하게 지은 집이 드문드문 차창 밖으로 스친다. 한 폭의 그림이다.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예상했던 대로 비포장도로다. 큼지막한 안내판이 설치된 피크닉 장소가 입구에 있다. 안내판에는 여느 국립공원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과 등산로 등이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전망대가 10여 km 떨어진 곳에 있다. 전망대를 향해 운전한다. 가파른 비포장도로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대를 잡은 채 정상에 올랐다.

거대한 호수가 눈 아래 펼쳐진다. 호수 건너편으로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평선과 수평선을 바라본다. 더운 날씨라고 하지만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에 서늘하기까지 하다. 

옆에 보이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 본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계속된다. 바닷가까지 연결되는 등산로다. 이 길을 따라 정상까지 왔다면 풍광과 바닷바람에 더 도취했을 것이다. 어렵게 얻은 것이 더 소중한 법이니….

다음 목적지 실록스를 향한다. 정상에서 내려갈 때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런데 도로가 엉망이다. 조심스럽게 비포장도로를 운전한다. 캠프장이 나온다. 제법 큰 강을 옆에 두고 있는 야영장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야영하는 사람은 없다. 이곳에서 야생 동물과 새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성급 호텔이 아닌 수백만 개의 별이 쏟아지는 호텔에서….

호주 야생 동물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뱀까지도...

 호주에서는 부억과 침실이 있는 차를 타고 호주 전역을 여행하는 젊은 남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호주에서는 부억과 침실이 있는 차를 타고 호주 전역을 여행하는 젊은 남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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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도로를 벗어나 잘 포장된 도로를 달려 실록에 도착했다. 동네 입구에 있는 전망 좋은 소박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를 언어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관광객 가족이 옆에 있다. 해변에는 젊은 남녀들이 파도가 심한 바닷가를 서성거리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등대를 찾아간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500여 m 정도 걸어야 한다. 주차장에는 놀러 다닐 수 있게 개조한 자동차가 있고 관광 온 젊은이들이 보인다.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와 관광객에게 잘 알려진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는 더운 날이지만 등대로 향하는 길은 쾌적하다. 울창한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뱀이 있다. 앞을 가던 아내는 모르고 지나쳤는데 길 한가운데에 작은 뱀이 움직이지 않고 도로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난생처음 보는 하얀 뱀이다. 뱀은 나무 막대를 던져도 잠시 움직일 뿐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호주 야생 동물들은 도무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뱀까지도.

등대 가까이 도착하니 갈라진 바위 사이로 거친 파도가 밀어 닫치고 있다. 등대 바로 아래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다. 오른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해안에는 드문드문 사륜구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바다를 즐기고 있다. 바로 눈 아래에는 서너 명의 남녀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아내가 바다를 가리키며 고래가 있다고 한다. 겨울에는 우리 동네에서도 고래가 다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러나 여름에 본 적은 없다. 자세히 보니 고래가 아니고 돌고래가 떼를 지어 지나가고 있다. 돌고래가 솟구칠 때 내는 파도가 멀리서 보면 고래가 물을 뿜는 것처럼 보인다. 수십 마리의 돌고래가 떼를 지어 가는 모습, 장관이다.

가파른 계단을 걸어 등대에 올랐다. 등대에서 태평양을 바라본다. 흔히 표현하는 '망망대해'가 전개된다. 불빛 하나 없는 바다를 항해하다 등대 불빛을 바라보는 선원을 상상해 본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모습을.

개발과 경제발전이라는 구호에 함몰되돼 경쟁의 치열함이 극치에 달한 사회, 불빛 하나 없는 '망망대해'와 다름없는 사회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등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을 되새겨 본다.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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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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