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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달 전에 학교를 졸업하고 1.5평 정도 되는 쪽방에서 살며 취업을 준비하고 알바를 하는 자취생이다. 학교 다닐 때는 기숙사에 살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어서 그나마 저렴한 고시원에 들어와 있다. 취업을 제대로 준비하고 면접도 보러 다니기 위해서는 알바에 쏟을 시간이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자취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바를 하지 않으면 자취방에서 쫓겨나게 되겠지. 지금 알바를 하고 있는 곳은 대기업 본사라서 그런지 그나마 다른 곳들에 비해서는 괜찮은 노동조건을 제공한다. 최저임금보다 무려(?) 700원 가까이 많은 7000원의 임금과 노동절도 유급휴일이며, 근무시간은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다. 여섯시를 넘겨서까지 일하게 되면 1.5배의 임금도 꼬박꼬박 쳐준다. 최저임금조차도 안 주는 사업자들이 많은 현실에서 알바노동자 중에서는 나은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만족할 수는 없다.

이번 달에는 휴일이 유난히 많았다. 5월 첫째 주 내내 연휴였다. 이곳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즐거운 연휴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알바의 급여는 시급으로 계산되니까, 쉬는 날이 많은 만큼 다음 달에 받을 급여가 줄어드니까. 그래서 쉬는 날에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알바를 구하지 못한 날은 그만큼 못 버는 금액과 생활비 등을 계산하며 밤잠을 설치고 불안한 내 처지를 생각하며 낮아지는 자존감에 괴로워했다. 최저임금이 만 원이라면 어땠을까. 일주일 동안의 연휴라고 해도 급여 걱정을 크게 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좀 빠듯할 경우 하루 이틀 정도 일일알바를 하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과 같은 전일제 알바는 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여유 있게 자기소개서를 쓰고 평일에 부담 없이 면접을 보러 다닐 수 있도록 노동시간이 더 짧은 자리를 구해 일할 것이다.

정규직으로 취업하면 내 삶은 최저임금과 상관없게 될까. 다들 원하는 대기업이나 괜찮다 싶은 공공기기관은 들어가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결국 나는 고만고만한 곳들 중에서 개중 나은 곳에 들어가겠지. 그래서 취업을 하더라도 생활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월급에서 꽤 큰 비중의 금액을 매달 오로지 방세에 쏟아부으며 얼마 안 되는 남은 돈으로 학자금대출을 갚고 교통비와 통신비를 내야 하겠지. 그리고 남은 돈을 아끼고 아껴가며 여가를 즐기고 친구들을 만나야 할 것이다. 원룸으로 이사하는 것은 당분간 꿈도 못 꾸고 말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만 원으로 오른다면, 이 모든 것이 달라지겠지.

최저임금은 나 뿐만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을 다니던 아빠도 퇴직 후에 알바를 하고 있다. 아빠의 수입은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원래는 가사노동만 하던 엄마도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대학생인 동생도 자기 용돈과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최저임금은 나만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내 가족 전체의 일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의 대통령선거 기간 대선후보들은 저마다 개혁정책들을 내세웠다. 최저임금에 대한 공약도 있었다.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는 2020년, 안철수 후보는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공약이 잘 이행되더라도 최소 2년 반, 길면 4년 반가량의 기간 후에야 1만 원 달성이다.

물론 준비 기간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긴 시간이 걸려야 하는 일인가 의문이다. 그동안 나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의 삶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특히 진보를 외치는 심상정 후보조차 보수정당의 후보들과 똑같이 2020년을 공약했다는 것이 절망스럽다. 그래도 지난 대선과는 달리 주요후보들이 최저임금을 공약에 포함시켰다는 것에서 변화의 기운을 느끼지만 당장 내 삶을 생각하면 이 변화는 너무 느리다.

이번 대통령선거 날에 문재인 당시 후보 선대위의 일자리위원회에서는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임기 내 달성으로 수정하자고 청와대에 건의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하는 기사를 봤다. 그 문건에는 '자영업 소득향상과 함께 최저임금 1만 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공약을 수정하자고 주장하는 보수정당의 기만에 화가 났다. 물론 많은 자영업자들의 형편이 좋지 않은 점이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 때문인가. 장사가 잘 안 되기 때문이고 장사가 잘되더라도 높은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가맹점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지불하는 대가가 과하게 높은 현실을 바꿔야지 왜 약자에게 주는 얼마 되지도 않는 임금을 더 오래 유지시키자 하는 것인가. 그들은 결국 기업가와 부동산임대업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며칠 동안 개혁 행보를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 현 정부의 개혁 행보가 분명 잘하는 것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부족하다. 어느 정도의 개혁이야 이루어지겠지만 그런다고 내 삶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의문이다.

내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에서 내 편을 들지 않고 있는데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많은 문재인 지지자들이 SNS에서 '내 삶을 바꾸는 대통령 문재인'을 외치고 있는데 그것을 보는 나는 너무나 힘들다. 나의 비명은 그들의 환호 속에 파묻혀 들리지 않고 있다.

아까 내 가족들 역시 최저임금 노동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가족 모두가 최저임금을 받는 경우는 내가 그동안 가정 형편 덕분에 직접 겪지 못해서 생각해보지 못했을 뿐이지 의외로 많을 것이다. 결국, 내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일인 것이다. 그래서 최저임금은 만 원이 되어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한국 사회 무수한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 이 글 '나와 내 가족을 넘어 다수 노동자들의 삶을 위한 최저임금 1만원'은 알바들의 대변인, 고 권문석 4주기 추모 알바노동자 수기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백색왜성 님의 글입니다.
고 권문석(알바연대 대변인)은 2013년 6월 2일 최저임금 1만원과 기본소득을 알리는데 헌신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뜻을 이어 최저임금 1만원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한 수기공모전은 2016년부터 시작하여 올해로 2회차를 맞았습니다.



#최저임금#노동자#아르바이트#최저임금1만원#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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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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