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9 19:15최종 업데이트 20.01.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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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복지는 개인이 써야 할 보건 비용을 줄여주고, 사회적으로는 의료비 지출을 줄여준다. ⓒ pexel.com


주중에 수영하려면 강습권을 끊어라?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 종로인데, 수영장 가기가 좀 어렵다. 전에는 송파구에 살았는데, 그 때는 지금보다 형편이 훨씬 나았다. 그 지역 민주당 구청장이 다른 건 몰라도 수영장 확보 만큼은 진짜 열심히 했었다.

전에는 걸어다녔는데, 지금은 차를 타고 좀 먼 데로 다닌다. 그나마 다니던 수영장이 리모델링으로 장기간 공사에 들어가서 다른 수영장을 찾으려다 보니 좀 이상한 일을 만나게 되었다. 일반인이 수영장에 갈 수 있는 소위 '자유 수영'이 주말에만 있는 게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이 좀 큰 시설이지만, 이름과는 달리 주중에는 일반인 개방이 없다. 거의 1년 가까이 리모델링을 하고 다시 연 종로주민체육센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엄청나게 비싼 연간 회원권을 받는 사설을 제외하면 종로에서는 주중 자유 수영을 못 찾았다.

은평구에는 새로 연 곳 한 군데에 주중 자유수영이 있다. 성북구에는 그래도 좀 있기는 한데, 일상적으로 가기에는 너무 멀다. 이게 좀 이상한 건, 수영 강습을 하는 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도와주는 건데, 주중에는 강습만 한다는 얘기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평생 강습만 받는 건 아니지 않은가?
 
체육과 관련해서 가장 흥미로운 통계는 1989년부터 시행하는 국민체력실태조사다. 3년에 한 번 하다가 2009년부터는 2년 주기로 한다. 가장 최근 통계는 2017년 조사다. 5,200명 표준이다. 이 조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수치는 20대 후반 남성의 표준 신장인데 175.1cm가 된다. 우와! 이 추세로 가면 20대 평균 남성은 10년 내 180cm를 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 모두 평균키가 일본인보다 많이 크고, 여성 20대의 경우는 신장도 체중도 꽤 많은 차이가 났다. 그런데 일본 혹은 중국과 비교해서 좋은 데는 여기까지다.

체격 좋아졌는데 체력은 뒤처진 이유
 
20미터 왕복 달리기, 제자리 멀리뛰기 등 거의 대부분의 항목에서 우리는 일본보다 체력이 떨어진다. 심지어는 악력도 약하다. 노인들의 경우는 더 하다.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6분 걷기' 같은 데서도 일본인과의 차이가 꽤 난다. 남녀 모두 일본인에 비해서 한국인이 좋은 수치를 보여주는 유일한 종목은 윗몸일으키기다. 아마 죽어라고 우리는 윗몸일으키기만 한 거 아닌가 싶다.
 
신장은 커졌지만 남녀 거의 전 연령에서 일본인보다 체력적으로 열악하다. 한국 대중 스포츠 정책의 실패가 아닌가 한다. 일본은 21세기 들어오면서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광풍을 줄이기 위해서 나름 노력을 했다. 사회 체육에서 그들이 만든 성과가 국민체력실태조사에 잡힌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사실 이게 맞는 방향이다. 올림픽 메달에 열광하는 것은 잠시지만, 보건 의학과 예방 의학 그리고 사회 체육을 강화해서 병이 덜 나게 하는 것이 보건 경제학에서의 공공성이다. 이게 사회적으로는 싸다. 우리는 사회 체육을 말로만 하다 보니, 과잉 진료 심지어는 의료 쇼핑 그리고 그걸 뒷받침하기 위한 실손보험의 과잉 등 예방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왕에 보고서들 보는 김에 체육백서도 마저 읽었다. 박근혜 시절의 국정 과제명이 끝내준다. "스포츠로 국격을 바꾸다", 진짜 국격스러운 제목이었다. 문재인 공약은 '스포츠 복지 국가 구현'으로 되어 있다.

문광부 자료에 의하면, 초등학교 생존 수영 의무화가 공약이었고, 청년들이 결정적으로 정부에 등 돌리기 한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참여추진도 대선 공약이었다. 뭐, 그 시절에는 이 공약을 진짜로 이행하는 마지막 순간에 공동 대표팀 추진과 함께 공정 문제가 그렇게 터져 나올지 상상도 못했을 것 같다.
 
하여간 어떤 식으로 통계나 자료를 살펴보더라도 주로 구청에서 운영을 맡는 실내 수영장에서 주말에만 자유수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장기적 보건 정책이나 대선 공약 정신에도 안 맞는다. '문재인 케어'라고 건강 관리의 마지막 단계인 병원에만 다들 돈 넣을 생각을 하지만, 예방적 보건이라는 점에서는 겨울에도 운동할 수 있고, 미세먼지 계절에도 운동할 수 있는 실내 수영장 같은 시설 체육이 지금보다는 몇 배 더 적극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 같다.
 
국민건강의 출발은 사회체육에서부터

국민체력실태조사 연구진이 매우 조심스럽게 제시한 결론은 두 가지다.
 
먼저 20대에 관한 얘기.
 
"성인기 조사결과 2000년대 이후 체격은 커졌으나 체력은 저하된 상태가 지속되었다. 2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까지의 체력이 이전 세대에 비해 저하되어 이에 대한 대안이 시급한 것으로 사료된다."
 
부모들이 20대이던 예전 조사와 비교하면 유연성은 39.8%(남자), 근력은 15.9%(여자), 순발력은 8.1%(여자)가 저하되었다는 거다. 도대체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사회 체육에서 뭘 한 건가.
 
그리고 노인성 질환에 관해서 한 마디 더.
 
"하지만 외국과의 비교 결과 한국은 일본에 비해 거의 모든 체력이 낮게 나타났다. 특히 심혈관질환,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의 위험을 현저하게 낮추는 심폐체력과 근력, 순발력이 낮아 질병에 대한 위험이 일본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있다."
 
주중 자유수영이 없는 공공 수영장에 대한 인식은 이 문제에 대한 입구 같은 거다. 더 많은 노인과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여기에 돈을 좀 들이는 게 사회 체육의 출발점일 것이다.

이게 문화의 일환이나 여가의 일환이 아니다. 필요하면 건강보험 등 보건의료 쪽과 스포츠 정책 쪽이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좀 더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예방성 의학에 대해서 생각도 나누고 돈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처럼 적당히 지원금만 좀 주고 구청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 그건 아닌 듯싶다. 어쨌든 스포츠 복지와 문재인 케어, 공약 사항이었다.
 
100세 시대, 국민 건강의 출발은 사회 체육이고 일상 스포츠다. 스포츠 복지는 개인이 써야 할 보건 비용을 줄여주고, 사회적으로는 건보 부담 경감 등 의료비 총액 지출을 줄여준다. 수영하고 싶으면 강습 끊으라고 말하는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이나 종로주민체육센터, 이런 건 대통령 공약에 맞춰보면 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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