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2 13:52최종 업데이트 21.01.12 13:52
  • 본문듣기
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10시 청와대 본관 1층 로비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부동산 투기는 불로소득의 존재 때문에 발생한다. 근본 원인이 부동산 불로소득이므로 대책의 초점도 당연히 불로소득 차단에 맞춰져야 한다.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토지보유세다. 양도소득세나 각종 규제도 부동산 불로소득 발생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토지보유세만큼은 아니며 매물 잠김 효과 등의 부작용을 수반하기도 한다. 토지보유세는 부동산 소유자가 차지할 지대소득을 줄여서 가격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부동산 소유자의 보유비용을 높여서 투기적 보유를 억제하고 가격을 안정시킨다. 

토지보유세는 세금으로서도 매우 우수하다는 사실이 익히 알려져 있다. 중립성, 경제성, 투명성, 공평성 등 조세원칙의 여러 기준으로 평가할 때 제대로 설계된 토지보유세는 모든 기준에서 A+의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세금으로서 매우 우수하고 부동산 투기 근절에도 강한 효력을 발휘하는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정책은 그냥 추진해 버리면 될 듯한데, 그게 그리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가 24번이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굳이 보유세 강화 정책만은 피하려고 애써온 것을 생각해보라.

필자는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보유세 강화 정책에 미온적임을 지적하며 이를 제대로 추진할 것을 촉구해 왔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에 이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워졌음을 고려해 보유세 강화의 장기 목표를 제시하고 정책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지난 3년 8개월 동안 최선의 부동산 투기 근절책을 의식적으로 외면해온 문재인 정부 정책 입안자들을 생각하면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최근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사실 정도는 그들도 다 알았을 텐데, 왜 보유세 강화를 안 하려고 그렇게 애를 쓴 걸까?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고(故) 김기원 교수가 역설했던 '세금의 정치학'이 마음에 떠올랐다. 생전에 진보 세력의 무능함을 질타했던 김 교수는 진보 세력이 증세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도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전략·전술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증세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인 것은 자기들만의 '세금의 정치학'이 작용한 탓이 아닐까? 

정면 돌파의 정치학 vs. 회피의 정치학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보유세를 대하는 태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보유세 강화 정책을 밀어붙였던 반면, 문재인 정부는 이를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근본 문제라는 인식을 깔고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했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2003년 11월 "강남이 불패라면 대통령도 불패로 간다"라고 하고, 2006년 4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완화되거나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직접 챙기겠다"라고 할 정도로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기득권층이 '세금폭탄론'을 동원해 보유세 강화 정책을 엄청나게 공격했고 그것이 마침내 일반 국민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음에도, 노무현 정부는 끝까지 정책의 기조를 지켜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전 굳이 기자회견을 열어 보유세를 올릴 계획이 없다고 천명하는가 하면, 출범 후에는 재정개혁특별위원회라는 이상한 조직을 만들어 보유세 정책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부동산 시장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진 2019년 말에 와서야 마지못해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어느 정도 올렸지만, 이는 3주택 이상 소유자 또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소유자에 한정되었다. 2주택 이하 소유자에 대해서는 약간의 세율 인상이 있었을 뿐이다. 

토지에 대해서는 나대지 등에 부과하는 종합합산 토지의 세율을 찔끔 인상했을 뿐, 빌딩 부속 토지 등에 부과하는 별도합산 토지의 세율은 이명박 정부 때와 똑같이 그대로 두었다. 게다가 지방 보유세인 재산세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 

2020년 들어서도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지 않자 마침내 문재인 정부는 7.10 대책을 발표해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4%에서 6%로 인상하기로 했다(이 세율은 과표 전체가 아니라 최고 과표 구간에만 적용하는 세율임에 유의하라). 언론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소유자에게 엄청난 세금폭탄을 퍼부으려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으나 그 세율을 적용받을 대상자는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유세 정책만을 놓고 보면, 노무현 정부는 '정면 돌파의 정치학'을, 문재인 정부는 '회피의 정치학' 구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정책 입안자들이 회피의 정치학에 빠진 데는 종부세 트라우마가 작용했다고도 하고, 재집권을 최고 목표로 지지율 유지에 방해가 되는 정책에는 손을 대지 않는 '지지율 집착증'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도 한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노무현 정부 때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서 부동산 정책의 기조를 잡은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보유세 강화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정책 추진 방법상에 오류가 있었다고 해서 아예 정책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다. 

정권 출범 초기에 보유세 정책의 기조를 소수의 다주택자에 한정한 핀셋 증세로 잡고는 그 정책으로 부동산 투기가 잡히지 않자 정부는 핀셋 증세의 강도를 점점 높여가는 행태를 보였다. 이를 정당화하려고 '1주택자 = 실수요자, 다주택자 = 투기꾼'이라는 거짓 프레임을 만들어 정책 발표 때마다 설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동산값이 잡히기는커녕 전국 곳곳이 '풍선효과'로 들썩이는 참담한 결과가 초래됐을 뿐이다. 24번의 부동산 대책이 실패로 돌아갔음이 명백해지자, 최근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주요 정책 담당자들이 주택공급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투기 열풍의 와중에서 추진하는 공급 확대 정책은 부동산값을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투기를 유발하기가 쉽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또한 번지수를 잘못 잡은 경우라고 해야 한다. 

시계추를 왼쪽 끝까지 당겼다가 놓으면 가운데 가서 서지 않고 오른쪽으로 한참 가버리는 현상을 생각하면, 정면 돌파의 정치학을 반성하다가 회피의 정치학에 빠져버린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정면 돌파의 정치학과 회피의 정치학 사이에 숨은 샛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놓쳐버렸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래에서는 보유세 강화라는 오래된 숙제를 해결하면서 조세저항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숨은 샛길, 즉 '개혁적 현실주의의 정치학'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계기로 관심 있는 지식인 사이에 세금의 정치학에 관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숨은 길: 개혁적 현실주의의 정치학
 

10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당국에 따르면 올해 6월부터 적용되는 조정대상지역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정책을 완화하는 방안이 당정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다. 사진은 10일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 연합뉴스


첫째,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를 옥죄는 최대 질곡이며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토지보유세를 의미 있게 강화해야 함을 명확히 한 뒤에, 그 목표와 달성 방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보유세 강화의 장기 목표로는 노무현 정부가 제시했던 '실효세율 0.61% 실현' 정도면 적당할 듯하다. 주지하듯이 보유세 실효세율이란 '세액/부동산 가액'의 비율을 뜻한다.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수십 년 동안 겨우 0.1%대(2018년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6%였다)에 머무는 반면, 영미권 선진국에서는 이 비율이 약 1%에 달한다. 영미권 선진국의 보유세가 한국보다 6~7배 무겁다는 뜻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일각에서는 선진국의 경우 부동산 보유세를 GDP의 2% 이상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는데, 2019년 한국 통계로 계산할 경우 GDP 2%는 실효세율 0.42%에 해당한다. 

둘째, 사실 보유세 부담을 현재보다 평균적으로 3~4배 무겁게 만든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이 정책을 추진할 경우 엄청난 조세저항이 따라올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이는 이상향이 건너편에 빤히 보이는데 낭떠러지가 놓여 있어서 건너갈 길이 없는 상황에 비유할 만하다.

하지만 조세저항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필자는 낭떠러지를 안심하고 건너갈 튼튼한 다리가 두 개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는 보유세를 강화하는 대신 다른 세금을 감면해 주는 패키지형 세제개편이고, 다른 하나는 토지보유세를 모든 부동산 소유자에게 부과하되 그 세수 순증분을 전액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 도입이다. 

패키지형 세제개편은 현행 보유세 체계를 활용해서 추진한다. 공시가격 현실화와 공정시장가액 비율 인상 그리고 세율·과표체계 조정 등을 통해 재산세와 종부세를 꾸준히 강화하면서 추가 세수를 전액 양도소득세나 부가가치세 등의 감면에 사용함으로써 세수 중립성을 유지한다. 이 방법은 보유세를 강화하는 대신 다른 세금을 감면하므로 어느 정도 조세저항을 완화하겠지만, 개인별 추가 부담과 감세 혜택이 일치하지 않아서 조세저항 완화 효과가 별로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는 현행 종부세를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국세 보유세로 국토보유세를 도입하는 방식이다. 국토보유세는 종부세와는 달리 모든 부동산 소유자에게 부과하는데, 그 세수 순증분은 전액 모든 국민에게 1/n 씩 기본소득(토지배당)으로 분배한다.

필자가 최근 비례세 방식으로 국토보유세를 부과해서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을 0.43%로 만들 때, 국토보유세를 내고도 토지배당 수급으로 이익을 보게 되는 순 수혜 가구의 비율을 계산해보니 83% 이상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토보유세를 누진세 방식으로 설계할 경우 순 수혜 가구의 비율은 90%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소수에 의한 조세저항이 일어나겠지만 제도 도입으로 혜택을 얻는 절대다수의 가구가 저항을 막는 강력한 방파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세수를 전액 1/n 씩 분배한다는 데 대해 이데올로기적 혐오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세련된 방법도 있다. 우선, 먼저 국토보유세를 걷은 다음에 그 세수를 1/n씩 나누어 토지배당으로 배분하지 않고 가구별로 국토보유세 납부액과 토지배당의 차액을 계산해서 그 금액을 지급하거나 징수하는 방법이다. 이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주창한 마이너스 소득세의 원리를 원용하는 것으로, 이때 국토보유세 납부와 토지배당 수급은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고 고지서상에 표기될 뿐이다. 

일정 가액 이하의 토지를 소유한 경우, 마이너스 국토보유세를 납부(즉, 보조금을 수령)하게 될 텐데,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새로운 세금을 더 낸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로부터 새로운 지원을 받게 됐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세대가 90% 이상에 달하게 될 것이므로 플러스 국토보유세를 내는 소수의 격렬한 조세저항은 이들 앞에서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토지배당을 매년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연금보험에 보험료로 대납해주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 공적 연금보험을 새로 하나 만드는데, 이름은 '기본소득연금보험' 정도로 붙이면 좋겠다. 모든 국민은 스스로 보험료를 내지 않음에도 일정 기간이 지난 후부터 연금을 받게 된다. 보험료 납입 기간과 연금 수급 기간은 제도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국토보유세 세수를 푼돈으로 나눠주고 끝낸다는 비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토지 소유자들은 새로운 세금을 더 내게 되지만 새로운 연금을 수급할 자격을 얻어 장차 기본소득연금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인지할 터이므로 조세저항의 충동은 그만큼 줄어든다.

공평한 사회 바라는 여론의 중요성

셋째, 보유세 강화의 장기 목표와 조세저항 극복 방법이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정책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국민 다수가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한다. 설사 자신에게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더라도, 한국이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부동산 부자들과 토건족의 이해를 반영하는 수구 언론의 여론몰이를 이길 수 있다. 일찍이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진보와 빈곤>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움직이려면 무엇에 호소하는가? 돈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애국심에 호소한다.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심에 호소한다. 이기심은 강력하며 매우 큰 결과를 낳을 수 있기는 하지만, 비유하자면 기계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는 화학적인 힘과 같이 녹이고 융합하고 감싸면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인간은 목숨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친다'고 할 때는 사익(私益)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차원 높은 동기에 충실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

올바른 목표, 효과적인 정책 대안에 국민 다수의 애국심과 이해심이 결합할 때 도저히 건널 수 없을 것 같았던 낭떠러지도 쉽게 건너갈 수 있다. 다리 건너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불로소득과 투기가 사라진 공정한 나라, 땀과 노력이 대접받는 공평한 사회, 헨리 조지가 말한 "들에 핀 백합처럼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세상이다. 그러니 어찌 주저할 수 있겠는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