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5일 기상청은 "서울 종로구 송월동 서울기상관측소에 있는 벚꽃 기준 왕벚나무(표준목)에서 24일 벚꽃 개화가 관측됐다"고 발표하면서 1922년 이래 가장 일찍 벚꽃이 폈다고 한다. 지난 30년 평균보다 17일이나 일찍 피었다고 한다. 그만큼 봄이 길어졌다고 좋아해야할까.

봄꽃이 피어나는 데도 순서가 있다. 매화 피고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라일락, 철쭉 순으로 피는데, 언제부터인가 꽃 피는 조건이 들쑥날쑥해지면서 꽃들도 뒤숭숭한지 뒤죽박죽 피어난다. 지난해 12월 끄트머리부터 피던 매화(동해시 기준)는 제쳐두고라도 4월도 오기 전에 산수유, 살구꽃, 목련, 개나리, 진달래, 생강나무꽃, 벚꽃이 순서 없이 한꺼번에 다 피었다. 길가 조팝나무꽃도 하얗게 피었다.

이런저런 봄꽃이 많지만 내 마음의 봄꽃은 단연 '진달래'다. 어릴 적에는 '참꽃'이라고 했다. 참꽃을 '창꽃'이라고도 했다. 나이 더 들어 교과서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배웠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고 뿌리던 꽃. 영변 약산 진달래꽃... 교육을 받은 보람으로 우리는 말없이 고이 '참꽃'을 보내고 내남없이 '진달래꽃'을 썼다. 

양지 바른 산비알에서 잎보다 먼저 꽃을 내놓는 참꽃을 보면 따먹곤 했다. 꽃잎을 씹으면 단 듯 신 듯한, 싱거운 맛이지만 재미 삼아 따 먹었다. 어디 나뿐이랴. 우리는 오래전부터 봄이 오면 참꽃으로 꽃전을 부쳐 먹고 술(두견주)로 빚었다. 요즘에 와서는 효소를 내서 먹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동해 초록봉 무릅재에 피어난 참꽃
 동해 초록봉 무릅재에 피어난 참꽃
ⓒ 이무완

관련사진보기

 
철쭉을 일컫는 다른 이름: 개꽃, 연달래, 넌달래

참꽃을 꼭 닮은 꽃인데 먹지 못하는 꽃도 있다. 먹지 못하니 '개꽃'이라고 했다. 참꽃은 잎보다 먼저 진분홍으로 꽃을 먼저 내놓는데, 개꽃은 연분홍꽃이나 하얀 꽃을 이파리가 난 다음 내놓는다. 참꽃 이파리끝은 뾰족하지만 개꽃은 잎끝이 주걱 모양이다. 개꽃은 꽃빛이 연분홍이라서 '연달래'라고도 한다.

<우리말샘>에서는 경상남도 지역 말로 풀어놨다. 개꽃이다가 연달래이다가 경상도 안동 지역으로 가면 '넌달래'라고 한다. 권정생이 쓴 '경상도 아이 보리 문둥이가_광주의 조천호군에게'라는 시 한 대목을 보자.
 
여기 경상도에서는 /5월에 늦게 피는 철쭉꽃을 /넌달래 꽃이라 부른다//우리 어머니와 누나들이 /보리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산에 가서 송기와 산나물을 캐면서 /새빨간 넌달래 꽃 꺾어 귀밑머리에 꽂으며 /고달픈 5월을 견뎌 온 꽃 //천호야 늦게까지 늦게까지 남아서 피어나던 /넌달래는 /그 때 /1980년 5월에도 피었을텐데 /넌달래 꽃 한 가장이 꺾어 /너를 달래지 못한 바보 같은 동무 (뒤 줄임)
 
권정생은 안동 일직면 조탑리 빌뱅이 언덕 아래에 조그만 흙집을 짓고 살다가 2007년 세상을 떠났다. 넌달래는 안동 지역 말인 셈이다. 혼자 생각이지만, '넌달래'는 '연달래'가 소리가 달라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개꽃, 연달래, 넌달래의 표준말은 '철쭉'.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한다는 한자말 '척촉'(擲燭)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철쭉은 그라야노톡신(Grayanotoxin)이라는 독 성분이 있어서 잘못 먹으면 큰일을 치러야 한다. 토하고 배가 아픈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숨이 가빠지고 어지럼이나 부정맥을 일으키기도 한다.

꽃이 하도나 이뻐서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한 것인지 따먹지 못하는 꽃이라서 머뭇거리게 한 것인지 말밑은 또렷하지 않다. 흔히 참꽃은 먹어도 되는 꽃으로 알지만 참꽃 수술에도 아주 적은 양이지만 그라야노톡신 성분이 있어서 수술을 떼고 먹어야 한다.
 
학교 울타리에 핀 개나리
 학교 울타리에 핀 개나리
ⓒ 이무완

관련사진보기

   
'참'이 붙은 말, '개'가 붙은 말

참꽃처럼 앞가지 '참-'이 붙은 말들이 여럿 있다. 참가자미, 참개구리, 참게, 참나리, 참깨 같은. 동물이나 식물 이름 앞에 붙은 경우엔 대개 기본 품종임을 나타낸다. 참흙, 참젖 할 때는 품질이 뛰어나다는 뜻을 더하고, '진짜'라는 뜻을 보태기도 한다.

한편 앞가지 '개-'는 '산에 들에 저절로 자라난, 질이 떨어지는, 비슷하지만 다른'이란 뜻을 보탠다. 개살구, 개양귀비, 개복숭아, 개두릅, 개머루, 개비름, 개꽃, 개다래, 개떡, 개먹, 개나리를 생각해 보면 한결 쉽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밝혀둘 것은 참나리의 상대말인 '개나리'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나무가 아니라 나리과(백합과)에 드는 풀이다. 이때 개나리에 붙은 '개-'는 산에 들에 저절로 자라났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리나리ㅡ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 종 종 봄나들이 갑니다"(윤석중 작사)에 나오는 개나리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영문 이름도 'Gaenari'(개나리)다. 달리 '코리안골든벨트리'(Korean goldenbell tree)라고도 한다. 꽃이 나리꽃을 닮고 흔해서 '개나리'가 되었을지 몰라도 오랜 세월 씨앗 없이 줄기나 가지를 꺾어 이곳저곳 옮겨 꽂아 뿌리 내리게 한 탓에 열매가 없단다.
 
참꽃과 개꽃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
 참꽃과 개꽃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
ⓒ 국립국어원

관련사진보기

   
말을 잃으면 문화도 사라진다

'참꽃'은 우리 곁에서 알게 모르게 사라지는 말 가운데 하나다. 표준어 교육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참꽃, 개꽃, 연달래, 넌달래'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은 해가 더할수록 사라져 이제는 너나없이 '진달래, 철쭉'으로만 쓰는 세상이 되었다. 교육의 이름으로 지역 말을 금 밖이 아니라 아예 벼랑 끝으로 몰아왔다.

물론 참꽃, 개꽃도 사전 올림말이긴 하다. 그러나 풀이를 보라. "먹는 꽃이라는 뜻으로 '진달래'를 개꽃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만 적어놨다. '진달래'를 찾고 '개꽃'을 다시 찾아야만 뜻을 온전히 알 수 있다. 말을 잃으면 그 말로 일구어낸 문화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만다. 
 
철쭉 <훈몽자회>
 철쭉 <훈몽자회>
ⓒ 최세진

관련사진보기

 
군말 한 마디: 진달래의 말밑

말난 김에 '진달래'의 말밑을 한번 찾아본다. <훈몽자회>(1572)에서는 '躅'(머리에 艹가 있는 한자, 텩툑 툑)을 다음과 같이 풀었다.

 一名羊蹢躅又謂진ᄃᆞᆯ의曰山蹢躅 (일명양척촉우위진ᄃᆞᆯ의왈산척촉)
(풀이: '텩툑'(철쭉)은 양척촉'이라고 하고, '진ᄃᆞᆯ위'는 '산척촉'을 말한다)

말하자면 '텩툑'(철쭉)은 '양척촉'이라고 하고 '진ᄃᆞᆯ의'(진달래)는 '산철쭉'을 말한다고 풀어놓은 셈이다. 이때 진ᄃᆞᆯ의는 '진+ᄃᆞᆯ의' 꼴로, 'ᄃᆞᆯ의'는 고려가요인 <동동>에서 볼 수 있다. "3월(三月) 나며 개(開)ᄒᆞᆫ 아으 만춘(滿春) ᄃᆞᆯ욋고지여 ᄂᆞᄆᆡ 브롤 즈ᅀᅳᆯ 디뎌 나샷다. 아으 動動다리"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때 'ᄃᆞᆯ욋곶'을 학자들은 진달래로 본다. 진ᄃᆞᆯ의는 'ᄃᆞᆯ욋곶' 가운데 '진짜 돌욋곶'이란 뜻이 아닐까. '곶'은 '꽃'의 옛말이다.

태그:#참꽃, #개꽃, #강원도말, #진달래, #연달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