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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병원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곳, 어지간하면 안 가고 싶은 곳이다.
 나에게 병원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곳, 어지간하면 안 가고 싶은 곳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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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다 보면, 이따금 사람의 온기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무엇보다 몸이 아플 때, 밤새 열이 펄펄 끓어도 찬물 수건 하나 이마에 올려줄 사람이 없는 처지라면 자연스레 그 서러움은 배가 되기 마련이다. 물론 혼자 살든 둘이 살든 내 한 몸 아픈 것이 성가시고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겠지만, 나처럼 병원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타고난 엄살쟁이라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까닥하다간 '약이나 사 먹고 말지'라는 허술한 생각으로 괜스레 병만 더 키우기 일쑤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병원이라면 유독 질색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학교도 아니고 치과에서 부모님 모셔오라는 소리를 들은 환자는 세상천지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날 나는 진료용 의자에 앉자마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을 꾹 다물어 버렸고,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한참 바라보던 의사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게는 다음날 부모님과 함께 다시 오라는 극약처방이 내려졌다.

그 철없던 중학생 시절로부터 어느덧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병원이 참 싫다.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곳, 어지간하면 안 가고 싶은 곳, 딱 그 선에서 한 뼘도 가까워지지 않은 것이다.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병실의 싸늘한 공기, 희미하게 풍기는 매캐한 소독약 냄새, 그리고 긴 밤 내내 누군가 고통스럽게 끙끙 앓는 소리까지, 내가 '병원' 하면 떠올리게 되는 몇몇 단편적인 이미지들 역시 하나같이 음울하고 무겁기 짝이 없다. 유쾌하고 상큼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 병원도, 슈퍼마켓이나 도서관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공간일 텐데 왜 그곳에선 도통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걸까. 최근에 나의 오래된 이 의문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하는 책을 한 권 만났다. 라이너 융트의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이다.

수술 과정에서 환자가 죽자 의사가 보인 행동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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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는 글쓴이인 라이너 융트가 독일 뮌헨의 대학 병원에서 인턴부터 전문의 과정을 공부하며 겪었던 환자와의 일화를 중심으로 병원 시스템과의 마찰, 사내 정치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기 고뇌의 과정을 간결하고도 담백한 문체로 솔직하게 그려낸 에세이다.
 
"사건 후 교수는 주임전문의 앞에서 자기가 한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그땐 아무 이상도 없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책임은 고사하고 우리 중 그 누구도 유족과의 대화에 개입하지 않았다. 아마 스테이션에서 알아서 수련의 중 하나에게 설명을 맡겼을 것이다. 우리는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P.73
  
수술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환자가 죽었다. 그러나 그 수술과 관련된 그 어떤 의료진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환자가 죽었으니 유감이다.' 그것이 병원 측이 밝힌 입장의 전부다.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진실을 알고자 하지만 병원의 그 누구도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진실은 묻힌다.

여기서 만약 누구보다 정의로운 글쓴이가 먼저 발 벗고 나서 그 수술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명명백백 밝히고 유족의 편에 서 함께 싸우는 쪽을 택했다면 이 이야기가 이렇게 내 마음에 먹먹하게 와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글쓴이는 침묵을 택한 의료진 중 하나였다. 물론 그도 한때는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과 선한 의지를 가슴에 품고, 약하고 아픈 이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다짐으로 의사라는 직업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과도한 업무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던 치열한 사내 정치에 치이는 동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차츰 냉정해져 갔다. 그것은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의사도, 결국은 '사람'이기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옹졸해지거나 편협해질 수도 있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는 위로와 치유의 공간이어야 할 '병원'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환자와 그 보호자들의 믿음을 배반해왔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또 동시에 여전히 환자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소임을 다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의료진들이 존재한다는 희망적인 사실 또한 글쓴이의 뼈아픈 자기반성과 함께 분명하게 전해진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 말해주지 않는 이야기
 
"경동맥은 심장이 뛸 때마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혈액을 머리로 보내는 관이다. 그 중요한 관을 보호하는 조직의 두께는 1밀리미터에 불과하다. 그리고 내 칼질은 너무 깊었다. 골막 박리기를 한 번만 더 휘둘렀다간 얕은 조직막뿐 아니라 동맥벽까지 제거될 뻔했다. 내 이마에서 땀방울이 연신 흘러내렸다." -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P.142
  
자신의 메스가 지나치게 깊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환자를 죽일 뻔했다는 자괴감과 의사로서의 경력에 큰 흠집이 날 뻔한 사고를 피했다는 안도감 중 어떤 마음이 더 크게 그를 흔들었을까? 평범한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날 이후 그는 수술용 메스를 쥘 때마다 조금 더 신중해졌으리라는 사실이다. 타인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 찰나가 자신의 손끝에 놓여있음을 무겁게 받아들인 그때, 그는 비로서 진짜 의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렇게 찌는듯한 무더위 속에서 방호복 차림으로 일선에서 고군분투 중인 의료진을 생각하면 고맙고 또 존경스럽다. 그러나 한편 여전히 빈번하게 일어나는 의료과실과 그에 따른 병원 측의 무책임한 대응방식, 환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대리 수술, 마취 중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진의 성추행 등등 병원을 둘러싼 각종 사건 사고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병원이 지금보다 조금 더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그것이 긍정적이든 아니든-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 말해주지 않았던 진짜 병원, 진짜 의사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 이 책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가 적격이다.

죽음이 삶에 스며들 때 - 젊은 의사가 수술실에서 만난 기적의 순간들

라이너 융트 (지은이), 이지윤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21)


태그:#병원, #의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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