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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의 삶에 가장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앞으로 5년간 우리 삶을 좌우할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민이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 지금 각 분야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대신 전달하려고 합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도 환영합니다. '2022 대선 정책오픈마켓',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하겠습니다.[편집자말]
서울지역 공립초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이 시작된 지난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주초등학교에서 예비 초등학생과 학부모가 입학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서울지역 공립초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이 시작된 지난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주초등학교에서 예비 초등학생과 학부모가 입학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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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맞벌이 부부다.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고 있다. 하루 일과는 대강 이렇다. 오전 6시쯤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먹인 뒤 등교 준비를 시킨다. 학원 스케줄을 조정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 아이들이 뭐 해야 할지 정해놓는다. 퇴근 후엔 밀린 설거지와 빨랫감을 처리하고 난장판이 된 집을 정리한다. '아이들 숙제를 봐줘야 하는데...'라고 생각만 하고 침대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픽, 하고 쓰러진다. 그리고 다시 아침. 그렇게 여차저차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헐렁하고 삐걱대는 일상을 이어간다. 

그리고 방학을 맞았다. 아이들은 방학이라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우리 부부는 비명을 질렀다. 가장 큰 문제는 밥. 입이 짧은 아이들이라 아침 한 끼 차리는 것도 힘든데 점심 준비까지 해야 한다. 아이들이 많이 컸다 싶어도 아직 초등학생. 혼자서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불을 사용하는 게 염려스러워 국을 데워 보온 통에 넣고, 아침 메뉴와 중복되지 않는 반찬을 찬합에 담아둔다. 메뉴 구성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날은 인스턴트 음식으로 조합해 대충 구색만 맞춰 놓는다. 최대한 꺼내서 먹기만 하면 되도록 세팅해 놓아야 아이들은 겨우 챙겨 먹는다.

아이들 밥 챙기지 못한 날, 밀려드는 자괴감

친구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더니 반찬배달 서비스를 이용해보라며 해당 링크를 보내줬다. 자신도 이것을 신청한 뒤 밥 고민에서 조금 해방됐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해방이라는 말에 혹해서 바로 결제버튼을 눌렀다. 국 1개, 반찬 세 개를 일주일에 두 번, 매주 선택해서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처음 몇 번은 좋다고 먹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물린다며 점점 안 먹기 시작했다. 돈 주고 산 음식인데... 쌓여가는 반찬을 결국 나만 먹는다. 종국엔 나도 질려서 안 먹게 된다. 반찬 배달 서비스 종료.

늦잠을 잔 날은 죄스럽기 그지없다. 편의점에서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라고 식탁에 카드를 올려두고 회사에 간다. 일하는 내내 마음에 걸린다. 아이들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해서 괜찮냐고, 오늘만 그런 거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계속 혼자서 떠든다. 그런 날은 자괴감이라는 옷을 입고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꼴랑 얼마 번다고 애들을 고생시키나, 무슨 대단한 사람이 될 것도 아닌데, 일은 일대로 안 되고 집은 집대로 엉망이고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걸까... 삶의 근원적인 문제까지 되짚어보게 된다.   

곧 자책이 뼈를 때리기 시작한다. 결혼을 한 게 잘못인가? 애를 낳은 게 잘못인가? 일을 하는 게 잘못인가? 밥을 스스로 챙겨 먹지 못하는 아이의 잘못인가?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시집온 잘못인가? 내일은 알람을 좀 더 일찍 맞춰놓자고 맘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한다.  

'밥' 걱정 없는 세상, 무리일까?
 
첫 등교수업. 칸막이 급식소.
 첫 등교수업. 칸막이 급식소.
ⓒ 경남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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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가면 밥걱정이라도 면할 수 있지만 방학은 여러모로 워킹맘들에게 괴로운 시간이다. 회사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TV에서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 작대기가 피노키오 코처럼 쭉쭉 늘어났다 줄었다 한다. 한쪽이 늘어나면 또 한쪽이 줄어든다. 내 앞에 앉은 남자 동료가 이번 대선에 생각해 둔 후보가 있냐고 묻는다. 

다 됐고, 부모들이 애들 밥걱정 없이 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 엄마들의 부엌데기 삶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죄책감 가지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사람을 뽑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동료가 "에이, 요즘 여자들 많이 편해지지 않았나? 육아휴직 쓰는 아빠도 많고, 윗 층에 김 주임도 육아휴직 1년 쓰고 왔잖아. 요즘 남자들 대단해"라고 말한다. 김 주임도 맞벌이 부부라고 들었는데... 그의 아내가 육아노동을 할 때도 대단하다고 다들 인정해주었을까? 목이 캑 막히는 것 같아 물을 벌컥 들이켠다. TV 속 앵커가 저출산 문제가 어쩌고 저쩌고를 논한다. 밥 맛이 뚝 떨어졌다. 

정책은 멀고, 내 엄마는 가깝다. 쉬는 시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요즘 촌에 일 없지? 와서 우리 애들 밥 좀 챙겨줘... 방학 동안만."
"야야~ 우짜노...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엄마 그 짝으로는 못 간다."


믿었던 엄마마저... 그럼 이게 다 코로나 탓인 건가... 이젠 누굴 탓할 시간도 없다. 빨리 퇴근해서 장을 보고, 식단을 정하고, 요리를 하고, 도시락을 싸서 식탁에 가지런히 올려놓아야 한다. 중간중간 먹을 수 있는 방학 간식을 검색해서 주문해야 한다. 밥의 쳇바퀴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열심히 열심히 돌려야 한다.

이 놈의 밥 걱정은 언제쯤 끝나나... 아이들이 크면 끝이 날까? 그렇다면 내 후배는, 내 딸은, 내 미래의 손녀는... 이런 동동거림을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단순히 밥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밥을 둘러싸고 있는 노동의 불균형, 워킹맘들이 처한 현실, 모성을 강요하는 사회인식 등... 이 모든 것을 개인이 떠안고 괴로워하며 고민하고 있는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밥 행정'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해결의 출발선상인지도 모른다. 학교에 있을 동안만이 아니라 학교에 가지 않는 방학, 갑작스런 휴교에도 아이들의 밥을 책임져 주는 시스템, 예컨대 신청자에 한해 방학동안에도 학교 급식소를 운영한다거나, 여건상 급식을 먹으러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밀키트 제공, 이런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들의 밥걱정을 덜고, 아이들은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으며, 엄마들은 직장에선 맘편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구조.

이것은 정말 나의 허황된 '꿈'일 뿐인 것일까? 
대통령 후보님들, 현 2022년 대한민국에선 무리인 걸까요?

태그:#워킹맘, #방학, #밥, #점심, #초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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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꿉니다 글을 씁니다 행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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