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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지식인의 과제: 홍수처럼 밀려드는 지식과 정보의 범람을 다스려라!

지식과 정보가 희소한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를 많이 저장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했다. 특히,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는 문자를 통해 저장된 지식을 습득하고, 다시 문자로 저장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저장매체인 책이 희귀한 시절에는 책의 내용을 통째로 외우는 능력이 천재의 징표였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인쇄된 산업화된 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근대산업혁명 시기에 들어서자,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습득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 책자와 잡지의 제목조차 다 읽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담은 인쇄물의 범람 속에서 근대 지식인들은 어떤 해결책을 마련했을까? 홍수처럼 밀려오는 지식과 정보에 빠져 죽지 않고, 그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방향과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이제 구조화된 머리를 갖고 싶다!"는 볼테르의 탄식은 지식을 전통적인 방식처럼 암송하고 기억하는 방법으로는 더 이상 학습과 연구를 수행할 수 없게 된 현실 속에서, 그것들을 체계화하고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욕망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근대 과학자, 철학자들은 근대적 학습방법을 만들어 냈고 그것을 제도화했는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백과)사전과 도서관이 바로 그것이다.

근대 지식인들은 지식과 정보를 그 형식과 내용에 따라 구조화하고 체계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만들어냈는데, 형식에 따라 지식과 정보를 체계화한 것이 (백과)사전이고, 내용에 따라 구조화한 것이 도서관이다. 백과사전은 모든 지식을 일정한 형식, 예를 들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정리함으로써 엄청난 분량의 지식과 정보 속에서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형식에 따른 분류는 인접한 항목 간의 연관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어 학습자가 끊임없이 전후좌우로 옮겨 다녀야 하는 비능률을 초래하는 단점이 있다. 형식적 분류의 한계를 극복한 구조화 방법이 지식과 정보의 내용에 따라 분류한 도서관의 문헌분류법이다. 도서관은 인접한 내용의 지식과 정보를 가까운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학습자가 관련된 정보를 효율적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지원했다.

(백과)사전과 도서관은 전통적인 필사본 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와 분량으로 밀려드는 근대 산업사회의 지식정보 환경에 대응하여 근대적 학습법, 연구방법을 탄생시킨 인프라스트럭처가 되었다. (백과)사전과 도서관의 인프라 위에서 근대 과학기술 혁명과 대중교육 혁명은 가능했다.

근대사회에서 모든 교육, 학습, 연구, 지식활동은 (백과)사전과 도서관의 분류법에 기초해서 이루어졌다. 지금도 우리는 대학의 학과 설치, 전공 선택, 각종 연구개발 사업의 분야 구분 등을 도서관의 분류법에 기초하여 수행하고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 속에 도서관 건설을 꿈꾸었던 야후의 몰락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류는 컴퓨터를 발명하여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지식과 정보를 디지털 매체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고, 곧이어 개발된 인터넷은 모든 디지털 정보가 빛의 속도로 유통될 수 있는 시대로 급속히 전환시켰다.

손으로 옮겨 쓰고 외워서 전달하는 암송과 필사 지식시대가 수천 년간 지속되었는데, 기계식 인쇄지식의 시대는 500년을 넘지 않았고, 디지털 지식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데는 불과 50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침내, 인류는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 지식 스트리밍 시대라는 토끼 굴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

역사적으로 비교해보면,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시대, 지식 스트리밍 시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도래했고, 순식간에 모두를 덮친 쓰나미와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지식시대에 적합한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방식, 새로운 교육과 학습 방법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런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여전히 지식을 저장해야 할 그 무엇으로 여기고, 열심히 더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넣기 위해서 학습하고, 학습자가 더 효율적인 기억과 인출 체계를 갖추도록 교육하는데 대부분의 시간과 자원을 허비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은 학습자에게 기억과 인출을 위한 노력이나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면, 디지털 네트워크의 지식과 정보 저장능력은 거의 무한대이고, 인공지능과 결합한 검색엔진의 정보 탐색과 인출 능력은 모든 인간의 역량을 합쳐도 대적하지 못할 만큼 빠르고 정확하다.

게다가 인공지능과 결합한 검색엔진은 완전히 개인화된 탐색과 인출, 그 결과를 스트리밍으로 학습자에게 전달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으니, 마치 학습자가 검색할 때마다 검색 키워드를 중심으로 재정렬된 도서관을 한 개씩 만들어 검색자에게 스트리밍해 주는 것과 같다.

인간은 새로운 현상을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여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을 처음 접한 인류는 기존의 인쇄지식을 다루던 방식으로 다루려고 했고 처절하게 실패했다. 1990년대 중반에 검색엔진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독자는 아마 라이코스, 야후, 알타비스타와 같은 검색엔진을 기억할 것이다. 초기 검색엔진의 특징은 검색결과를 카테고리별로 모아서 보여주었고, 카테고리는 대부분 도서관의 도서 분류 기준과 일치했다.

초기 검색엔진은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과 정보를 인쇄물에 기반한 근대 지식체계와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고자 했고, 검색자에게도 검색 결과를 도서관 분류법과 비슷한 방식으로 폴더를 만들어서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하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과거의 방식으로 다루려는 시도가 성공할 리가 없다.

새로운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은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어야한다는 점을 보여준 검색엔진이 곧 등장했으니, 그것이 바로 구글이었다. 너무도 단순했지만, 구글은 근대 산업사회의 도서관이 중시했던 내용 중심 분류도 무시하고, 형식 중심 정렬도 상관하지 않고, 바로 무한대의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서 검색자를 중심으로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는 전략을 활용했고, 그 이후의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검색엔진의 세계는 구글의 독무대가 되었다.

지식 스트리밍 시대의 산파이자 주인공 구글

구글은 뭐가 다른가? 나는 처음 구글을 접했을 때,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라이코스, 야후 등의 초기 화면은 다양한 콘텐츠가 전시된 화려한 페이지였다. 하지만, 구글은 Google이라는 영문명과 한 줄의 입력창 밖에는 없었다. '뭐 이런 것이 있나?' 하는 생각으로 가끔 들러 검색을 하곤 했지만, 여전히 야후나 라이코스를 더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나의 손은 자꾸 구글로 갔다. 나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인터넷 사용자가 마찬가지로 구글에 홀려들고 있었다. 뭐가 달랐을까? 그때는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구글의 결과는 간명하게 제시되었고, 무엇보다 내가 찾고 있을 것 같은 항목을 맨 위에 올려주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두세 페이지를 넘지 않은 곳에서 내가 찾고 있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구글은 인덱스와 랭킹을 검색자를 중심으로 점수화해서 검색자의 의도에 가장 가까운 것을 중심으로 보여주었다면, 야후나 라이코스는 지식과 정보의 객관적인 성격과 내용에 따라 인덱스를 붙이고 랭킹을 달아 분류한 결과를 도서관의 학문 분야 분류법처럼 디렉토리 형식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구글의 검색엔진이 야후와 라이코스 방식의 검색을 이기는 과정은 객관적인 지식과 정보의 구조와 체계에 묶여 있던 인쇄지식형 인간에게, 자신의 관심과 욕망을 중심으로 지식과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 시대를 열어준 대전환적 혁명이었다.

인쇄지식은 유한하다. 공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은 무한하다. 무한한 지식과 정보를 아무리 잘 분류해서 객관적인 지식의 구조와 체계에 따라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무한하다. 무한대는 나눠도 무한대이다. 결국 야후, 라이코스, 알타비스타 등등은 무의미한 검색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구글의 검색과 결과 제시 방식은 무한한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과 정보는 검색자, 학습자의 관심과 욕망에 기초하여 적실성과 근접성에 따라 분류할 때만 유의미한 지식과 정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지식과 정보를 학습자의 관심과 욕망에 따라 분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스트리밍 될 수 있는 서비스인 지식과 정보가 탄생하는 것이다.

구글은 검색엔진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을 기존의 인쇄지식 방식과 달리 정의하고, 그것을 스트리밍 될 수 있는 유량(flow)의 지식과 정보로 탄생시킨 것이다. 구글은 지식 스트리밍 시대의 산파이자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야후는 구글에 참패당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의해 제거되었다!"

태그:#인쇄지식, #디지털 네트워크 지식, #미래교육, #포노사피엔스, #탈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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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 중. 플로리다주립대 정책학 박사: 「차터스쿨이 공립학교의 학업성취도 및 인종분리에 미치는 영향 분석」 (2012) 강의: 순천대 객원교수(2015), 숙명여대 및 광주교대 등 강의 저서: 《교육을 교육답게》(2018), 《포노사피엔스 학교의 탄생》(2020), 공역서 《교육은 어떻게 사회를 지배하는가》(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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