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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탓인지 요즘 따라 언저리에서 궂긴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그때마다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젖기 일쑤다.

얼마 전, 꼭 일 년 전에 나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공들이고 힘들여 쓴 전작 장편 소설 <전쟁과 사랑>을 펴내준 출판사로 재고 문의 전화를 했다. 그러자 출판사 대표가 다소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초판 가운데 그동안 판매는 절반을 조금 넘긴 듯합니다."
"네?!"


나의 실의에 가득 찬 답변에 그가 말했다.

"그래도 선생님 작품은 양호한 편입니다."
      
사실 이번 작품 <전쟁과 사랑>은 마음 속으로 자신만만하게 펴냈다. 문청시절부터 벼려 왔던 6.25전쟁 소설로, 전후 나의 고향마을에 정착을 하게 된 어느 어린 인민군 병사의 아픈 사랑 이야기다. 이 작품을 쓰기 전에 6.25전쟁사 공부도 많이 했다. 작품을 쓰기 위한 답사도 한국전쟁 자료가 많이 남아있는 미국뿐 아니라, 작품 배경지 북한도 평양, 압록강, 백두산, 묘향산, 청천강 등을 두루 돌아보았다. 국내 6.25 전적지도 빠짐없이 답사하는 등 엄청 고생하면서 썼다.

하지만 출간 1년이 지나도록 초판도 다 나가지 않았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 모든 게 내 탓이다.
 
<전쟁과 사랑>의 배경지인 평안북도 향산군 소재 보현사에서 바라본 묘향산
 <전쟁과 사랑>의 배경지인 평안북도 향산군 소재 보현사에서 바라본 묘향산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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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후배 작가는 공들여 쓴 소설을 힘들게 펴낸 뒤 인세 한 푼 못 받았다. 내가 만나자는 말에도 그는 약속을 미뤘다. 그러다가 그의 궃긴 소식을 들었고, 끝내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후배의 아린 소식을 듣고도 나는 평생 익힌 일이 글을 쓰는 일이어서 그런지 습관처럼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았다. 하지만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자지러진 그의 죽음 탓인지 한동안 도무지 글이 쓰이지 않았다.

다행히 마침 한 출판사와 어린이용으로 어느 전직 대통령 이야기를 계약해 요즘 그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중간중간 음악을 듣곤 한다. 그러면 기분전환도 되고 영감도 잘 떠오른다.

여느 때처럼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는데 노사연 가수의 '바램'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순간 내 귀가 쫑긋 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그 노랫말에 축 쳐진 내 어깨가 확 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집필을 중단하고 참고도서를 대출받고자 곧장 원주시립 중앙도서관으로 갔다. 낯익은 사서가 반갑게 맞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문광부가 주최하고, 원주시와 저희 도서관이 후원하는 '도서대전'에 강사로 모시기로 결정했습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곧 3층 도서관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강연 주제와 일시, 그리고 장소를 정했다. 주제는 '전쟁과 사랑'으로 정했다. 강연 일시는 오는 23일 오후 3시, 장소는 원주시립중앙도서관 1층 102호실이다. 그 강연이 끝나면 유튜브로도 방송된다니 그날 이후 전국 어디서나 다른 독자들도 시청할 수 있다.

'그래 늙어가는 것은 그대로 시들거나 자지러지는 게 아니라, 더욱 원숙, 완숙해 지는 것이야. 조금씩 더욱 익어가는 것이야. 행복과 불행도, 용기와 좌절도 생각하기 나름이야.'

나는 혼잣말을 되뇌면서 이야기 속의 소년처럼 원주시립 중앙도서관을 벗어났다.  

태그:#독서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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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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